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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 Oct 27. 2020

드디어 화방도 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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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을 오래 그려온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그림 초보들은 오프라인 화방에 가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잘 모르기 때문에 위축되는 기분, 무시당할 것 같은 착각, 여러 가지 이유와 괜한 망상으로 화방에 가는 게 꺼려졌다. 나도 이런 이유로 그림 유튜버의 화방 Vlog와 같은 영상을 찾아봤다. 마음의 준비가 덜 됐기 때문에 재료가 필요하면 인터넷을 열심히 서칭한 뒤 온라인 쇼핑만 했다. 그러다 큰 사이즈의 수채화 종이를 사자고 마음먹었을 때 화방에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그림 오래 그려온 분들이 하나같이 수채화 종이는 큰 낱장으로 사서 잘라 쓰는 것이 저렴하다고 했다. 가격대를 검색해보니 차이가 심했다. 종이를 좋은 것으로 쓰고 싶어진 나는, 언니와 오프라인 화방을 가기로 했다. 이것 역시 별 것 아닌 일인데도 작은 용기가 필요했다.     


  얼마 후 홍대에 있는 화방에 가기 위해 공방을 나섰다.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됐다. 과연 내가 원하는 종이를 사 올 수 있을까? 실수하지는 않을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길 찾기를 활용해서 어려움 없이 화방으로 갔다. 대학생 때 많이 왕래했던 길가에 있는 화방. 그때는 화방이 뭔지도 몰랐고 여기에 이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 나이부터 내가 이곳에 들락날락했으면 지금은 또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화방에 들어섰다.     


  생각보다 큰 규모에 기가 죽었다. 직원들도 여러 명이었고 물건이 아주 많아서 어딜 어떻게 봐야 할지 몰랐다. 찬찬히 화방 안을 구경했다. 직원분들이 친절하게 도움 줄 것이 있느냐고 물어보셨는데 괜히 혼자 어색해져 알아서 본다고 말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 분위기에 적응하니 구경할 재료들이 엄청났다. 물감, 붓, 색연필, 연필, 스케치북 등등 사실 이 중에서 제대로 본 건 물감과 수채화 종이밖에 없다. 다른 건 제대로 보지 못할 만큼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원래 목적이었던 지류를 보기 위해 직원에게 문의해 2층으로 올라갔다. 2층도 굉장한 규모의 공간이었고 수많은 종류의 지류와 캔버스, 이젤이 가득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 없었기에 수채화 종이 샘플을 찾아봤다.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어 자유롭게 볼 수 있었다. 여러 수채화지 중에 적당한 가격이면서 사람들이 추천해준 종이를 골랐다. 내가 직접 골라서 사는 게 아니라 직원에게 고른 종이를 이야기하면 해당 종이를 가져다가 동그랗게 말아준다. 영수증을 끊은 뒤 1층에 가서 결제하면 되기 때문에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수채화 종이를 고르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제야 물감을 고르기 시작했다. 각종 튜브 및 고체 물감들을 구경하며 고르는데 몇십 분을 쓴 것 같다. 색도 잘 몰라서 다른 사람이 추천한 컬러를 구매했다. 사실 사서 써보지 않으면 정확한 발색을 알 수 없다. 이런 합리화가 잘 된 핑계로 물감을 함께 구매했다. 그때 산 물감은 잘 산 것도 별로인 물감도 있다. 경험이 답인 듯하다. 하지만 어떤 색이든 섞어서 쓰면 쓰임새가 있다.     


  재료를 구매하고 화방 문을 나섰을 때 뭔가 조금 자신감이 붙은 느낌이 들었다. 너무 소소하고 소심한 성격인가 싶어 움츠러들었다가 이만하면 잘한 거다 싶어서 기분이 좋아졌다. 돌돌 말아둔 종이가 커서 불편했지만, 이제 수채화 종이를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진짜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뿌듯했다. 매일매일 그림으로 인해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작지만 용기 내며 한 걸음씩 내디디고 있다. 이런 작은 경험들이 모여 나만의 색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싶다. 조금 더 반짝반짝한 내일의 나를 위해 오늘도 작은 용기를 내고 있다.




[그림 위를 걷는 고양이처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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