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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주인공이다. 초판과는 다르게 화자의 말투를 존댓말로 바꾸었다는 후기가 있다. 이전 번역본을 읽었더라면 느낌이 달랐을 것 같다. 어쨌든 "이런 게 진짜 잘 만든 소설이구나."라고 느꼈다. 경험은 최고의 글감이지만 한 번뿐인 인생의 경험은 한계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하퍼 리는 타고난 상상력의 소유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평생 단 두권만 집필했으며 나머지 한 권인 <파수꾼>도 비슷한 시기에 쓰였지만 사망 직전에 출판되었다. 소설은 재능이라는 말에 무게를 두면서도 '나만의 스토리'는 명작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나의 인생은 반드시 오리지널 스토리이며 타인이 창작할 수 없다. 아쉬운 점은 목차에 포함된 한국어판 해설의 제목이 스포일러였다. 이게 왜 열받냐면, 하퍼 리는 머리말에서 "작가는 말을 아낀다."며 어떠한 단서도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다면 목차를 건너뛰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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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 유행하던 10여 년 전에 인기가 많았던 책이라고 한다. 2012년 뉴스를 보면 미국은 10만 부, 한국은 130만 부가 팔렸다고 적혀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작가의 내한 활동이 많았다. 이 책이 시대의 운을 타고났다는 의미는 아니다. 많은 생각을 가져다준 책 <바른 마음>만큼이나 배울 점이 많았다.
"사회는 '그들의 정의'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정의는 도덕에 의해 형성된다." 도덕의 밑바탕에는 정치와 종교 그리고 문학과 역사가 있다. 문학, 역사, 철학을 '문사철'이라고 부르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듯싶다. '인문학 붐'이라는 표현이 존재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인문학은 유행에 좌우되어선 안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과거의 나를 떠올리면 너무나 위선이어서 움츠려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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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던 책이 없어서 즉흥적으로 골랐다. 걷기는 내가 하는 활동 중 유일하게 자랑스러운 것이다. 동기부여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만족을 예상한 선택이었다. 서울대 합격 통지서를 받은 후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를 읽는 기분과 닮았을까? 가끔 이런 독서도 좋은 것 같다. 결혼을 해버렸다면, <슬기로운 부부생활>도 좋지만 <결혼을 망설이는 그대에게>도 읽어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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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초보는 수준에 맞는 책을 알아보는 능력이 부족하다. 끝까지 읽겠다는 고집이 있으면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때문에 나는 이상한 읽기 능력이 생겼다. 능력이라고 말해도 괜찮은 걸까? 능력의 정체는 그냥 읽기다. 이해가 안 가도 읽어 나간다. 읽다 보면 새로운 어휘를 경험한다. 책을 읽는 안구의 피지컬이라도 얻겠다는 각오다. 운이 좋으면 한 문장 또는 한 단락에서도 배움을 경험한다. 그나마 위안이었던 점은 이 책의 서평들에서도 읽기가 불편했다는 언급이 많다. 원작자의 문제인지 번역의 문제인지는 모르겠다. 그동안 '그냥 읽기'를 시전 한 책은 <종의 기원>과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가 있다. 35번 책 <천년의 그림여행>도 포함이다. 당분간은 수준에 맞는 도서 선정에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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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었다."라고 말하는 것조차 양심에 찔린다. 그림의 역사를 나열한 백과사전에 가깝다. <한 권의 심리학>과 비슷한 구성이다. 두 책은 컬러 용지를 사용했기 때문에 스탠드 빛이 반사되어 눈이 피로했다. 문제집도 이런 내지를 무척 싫어했는데, 만족스럽지 못한 독서여서 단점만 보이는 것 같다. 이름과 지명은 왜 그렇게 어려운 건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환상의 콜라보였다. 이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는 지인은 나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했다. 짧은 독서 경력 탓일까? 나도 이런 책을 찾아서 보게 될 날이 올까? 이 부분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최근 흥미롭게 읽었던 책 대부분은 얼마 전까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들이었으니까 말이다.
유익하고 험난했던 독서 기간이었다. <앵무새 죽이기>는 역대급 소설이었고 <정의란 무엇인가>도 훌륭한 비소설이었다. 문제의 책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천년의 그림여행>이다. 두 책은 명백히 검증된 도서다. 하지만 독서 초보인 나에게는 당황과 좌절만 있었다. "포기도 편독이다."라는 마음가짐이 없었다면 3분의 1도 못 참고 덮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