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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아리 Oct 20. 2023

9. 내 소비 관한 실험과 관찰

말레이시아

돈을 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그 돈을 쓰는 사람의 소비 패턴이나 가치관 혹은 습관 그리고 취향을 아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어떤 이에게는 500만 원은 가방 하나의 값일 수도 있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3개월치 생활비일 수도 있으니 사실 더 중요한 건 후자인 것 같다.


그래서 마지막 월급을 받는 몇 달 동안 나를 대상으로 실험하고 관찰을 해보았다.

내 라이프스타일에서 포기할 수 없는 소비는 무엇이고, 꼭 사지 않아도 되는 건 어떤 건지,

나의 소유욕을 자극하는 건은 무엇이며, 반대로 금방 초연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게 있는지 - 뭐 이런 것들.


실험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음식

나는 과일은 사야 한다. 바나나, 수박, 망고, 두리안, 복숭아, 자두, 귤, 포도, 파인애플 등등 웬만한 과일은 다 좋아하고, 내 먹거리 생활에 과일이 들어가야 기분이 좋다. 하지만 고기는 무조건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채식주의자도 아니고 고기를 맛있게 먹지만, 굳이 안 먹어도 상관은 없는 사람인이다. 한식을 좋아하긴 하지만 무조건 한식만 챙겨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밥 - 빵 - 면을 번갈아가며 먹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하지만 그 중 한가지로만 세끼를 먹는건 조금 힘들다)


2. 취미

요가 수업 등록은 해야 한다. 혼자서 유튜브를 보며 따라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직접 옆에서 들으며 다른 요기들과 함께 에너지를 느끼며 요가 수련을 하는 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좋다. 하지만 지금은 이곳저곳 여행을 가는 건 별로 내키지 않는다. 대신 새로운 곳에서 지긋이 머무르며 시간 부자의 일상을 만끽하고 싶다.


3. 물건

화장품에는 돈을 많이 쓸 필요가 없다. 얼마나 다행인지. 나는 홍조가 있는 볼을 커버하기 위해 아주 소량의 파운데이션을 사용하고, 립틴트를 한 두 가지 번갈아가며 쓰는 게 전부이므로 마스카라나 아이쉐도우, 볼터치 등 다른 화장품을 사는 데 돈을 쓰지 않는다. 손톱 발톱은 항상 짧게 깎는 것을 좋아하고 아무것도 바르지 않는걸 가장 좋아한다. 그래서 작은 손톱깎이 하나면 충분하다.


옷이나 신발도 많이 필요하지 않다. 사실 회사에 가지 않으면 지금 있는 옷들의 절반으로도 정말 충분하다. 다만 땀이 잘 마르고, 세탁을 자주 해도 괜찮은 편한 운동복은 더 사고 싶다.


큰 백팩 하나는 필요하다. 내 물건들을 다 정리하고, 백팩 하나를 매고 다음 목적지로 떠날 생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외에는 지금 가지고 있는 가방들로 충분하다.


장식품이나 기념품은 1 도시 (혹은 1 나라) / 1 냉장고 자석 빼고는 사지 않는다. 떠돌이 생활을 7년 넘게 해 보니, 물건은 곧 짐이며 내 어깨를 무겁게 하고, 더 나아가 내 마음도 무겁게 하는 요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가볍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 그래서 많은 짐을 소유하는 것을 최대한 경계하는 이 마음을 오랫동안 지켜나가고 싶다.


광고 회사를 다니면서 '이 물건 사세요!'라는 마케팅에 어느 정도 초연해질 수 있다는 게 그동안의 수확 중 하나일까?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매번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크게 하나씩 지르던' 내가 떠오르는 걸 보니 여전히 변수가 많은 실험대상이 아닐 수 없다.




퇴사를 앞두고 나니 확실히 돈에 조금 더 예민해진 것이 사실이나 또 막상 내 소비패턴을 살펴보고 계획을 대략 짜보니 엄청나게 걱정할 일도 아니었다.  


돈은 다시 벌면 되니까. (라고 말하지만, 물론 걱정 10%씩은 함께 가는 거다.)


엄마의 무심한 한 마디도 내게는 뭔가 힘이 되었다.  

" 엄마, 나 퇴사하고 놀 때 - 예산을 이백정도 더 잡을까 하는데 엄마 생각은 어때?"

(돈 좀 아껴 써라. 돈이 썩어빠졌냐!!라고 말할 줄 알았다.)


" 놀 때 확실히 놀아. 나중에 한 달 치 더 벌면 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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