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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아리 Nov 06. 2023

17. 한국에서의 두 달 - 반가워, 봄

대한민국

한국에서 봄을 만났다.


"요즘 한국은 계절이 아니야. 계절이 두 개인 것 같아. 봄, 가을 없이 여름, 겨울만 느껴져."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학생 때는 중간고사가 끝나면 이미 봄은 저만치 지나가 있었고, 금방 더워졌다.


백수가 되어 4월 중순에 한국에 도착한 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가장 자주 느낀 것이 있다.  

'아- 봄이다. 봄 공기, 봄바람, 봄 냄새, 꽃, 연두색 풀잎들, 새싹....  봄이 내 옆에 있구나. 사실 빨리 지나가는 게 아니었구나. 단지 내가 잘 느끼지 못했던 것이구나.' 정말 봄은 가까이 있었다. 그리고 그 봄은 매일 조금씩 익어갔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온전한 봄이었다.


평일의 대구, 그것도 아파트 단지로 가득 찬 집 근처에는 젊은 사람 혼자서 걸어 다니는 것을 볼 일이 거의 없다. 아침 요가를 마치고, 산책을 하거나 카페에 가면 어르신들 혹은 유모차를 끌고 온 (아마도) 내 또래의 여성들을 본다. 그리고 나는 약간 낯설게 그 풍경의 일부가 되어 커피를 마시며 조용히 책을 읽는다.


한국에 왔고 부모님과 함께 집에서 지내고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가끔은 억지로 목욕탕에 따라가고, 산책을 가고, 친구들과 남자친구를 만나고 봄기운을 느끼며 시간은 흘러갔다. 엄마와 둘이서 처음으로 중국 장가계에 여행도 다녀왔다. 오랫동안 용돈 부치는 것으로 대신했던 딸 역할을 맛있는 밥을 얻어먹으면서 그제야 하고 있었다.

아마 그즈음, 거의 충전지수가 100 언저리에 왔다 갔다 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동시에 퇴사 초반과 비교하면 게으름 지수도 꽤 높아졌다. 다시 움직일 때라는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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