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험해 봐야 알거든'의 초안을 쓴 건 4년 전인 2019년 후반, 시간 부자 생활을 잠시 매듭짓고 다시 일을 시작한 직후였다. 백만 원을 들고 한국을 떠나 두바이, 남아공, 말레이시아, 태국을 거쳐 다시 싱가포르까지 흘러온 8년을 한번 가볍게 담아보고 싶었다. 가만히 두면 기억이 증발해 버릴 것 같은 희미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어떤 의미로든 한 챕터가 마무리됐다는 걸.
하지만 생각과 다르게 워드에 적어둔 긴 글을다듬어브런치에 올리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엄청난 작업을 하는 것도 아닌데 시간이 왜 이렇게 많이 걸리던지. 당연히내 게으름이 한 몫했다. 또한 타지에서 혼자 코로나 라이프(?)에 적응하는 건 생각 이상으로 고독했기에 이곳저곳 이동하던 이야기를 다시 읽는 것이 영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마음 한 구석서랍에 보관하다가 드디어 정리할 마음을 냈다. (연말의 힘인가!)
결코 끝이 보이지 않던 시간들도 지나가고, 벌써 싱가포르에 온 지도 벌써 여러 해가 흘렀다.
'낯섦'을 동경하여 그것을 쫓아 대륙을 떠돌던 첫 번째 챕터를 정리하고 나니 '익숙함'은 오히려 농도 진한 즐거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사실 그 시간이야말로 내 몸과 친해지고 돌볼 수 있는 시간임을 많이 느꼈다. 실제로 싱가포르에 온 후로는 일상의 의식들을 하나 둘 만들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근데 나는 그걸 모르는 게 좋다. 미지의 세계를 만나는 게 재밌는 거니까.뭐, 혹시 잘못 들어선 길이면 어떻게 하냐고? 돌아가거나 옆길로 새서 다시 걸어가면 될 뿐이다. 잘못된 길을 새로운 길이라고 생각을 바꿀 수도 있겠지. 한 가지 일이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추구하는 방향, 좋아하는 것, 먹고 싶은 음식, 살고 싶은 방식, 걷고 싶은 길은 변한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