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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모자 Dec 14. 2022

관심과 호감 사이

예민함은 잠시 내려놓고

성격이 예민하다고 받아들여지는 사람들은 주변 환경 변화를 잘 알아차리는 편이다. 남들과는 달리 약간의 변화에 대해서도 인식할 수 있기에 인생을 살아가는 데 편한 면이 있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정보를 얻게 되기도 하고, 변화의 순간을 캐치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순발력있게 잡기도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적당할 때의 이야기이다. 예민함이 지나치다보면 머리로 들어오는 정보의 양이 너무 많다보니, 만성 편두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성격도 날카로워져서 누군가에게 예기치 못한 폐를 끼치기도 한다. 어디까지나 이것들은 지나친 예민함이 가져다주는 단점들의 일부일 뿐이다.


나는 예민한 성격 때문에 평소 높은 경쟁력을 얻을 수 있었다. 남이 알지 못하는, 발견하지 못하는 미세한 정보는 회사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데 있어 좀 더 높은 디테일을 실현할 수 있게 했다. 대화하거나 교류하는 다른 사람의 감정 변화를 잘 읽기도 해서 눈치를 잘 볼 수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큰 불화 없이 여러 사람들과 그럭저럭 잘 지내며 평온한 인간관계를 구축해나갈 수도 있었다. 남들이 바람직하다고 말하곤 하는, 높은 역량을 발휘하며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예민한 성격은 양날의 검인 만큼, 적지 않은 단점들을 나에게 안겨주기도 했다. 환경변화에 예민하다보니, 조금의 부정적인 상황에도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기 일쑤였다. 누가 조금 쓴소리를 해도 큰 문제인 것처럼 받아들이곤 했다. 여러모로 작은 일에도 쉽게 정신력을 탕진하면서 살다보니, 삶의 질이 많이 떨어진다.


또한, 타인의 감정변화에 일희일비해서 쉽게 마음이 변하곤 했다. 내 말과 행동에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면 다가가기를 멈추었다. 그래서 친해지고 마음을 여는 일에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상대방의 반응에 너무 맞추다보니 내 진짜 성격은 묻히고, 나의 가식적인 페르소나(가면)만 발현되곤 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본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대부분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래서 적당한 관계로는 지낼 수 있어도 더 깊은 관계로는 나아가지 못한 적이 정말 많았다.


상대방이 나에게 갖는 감정이 어떤지 마음으로는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 작은 관심만 있는 건지, 호감을 느끼고 있는 건지 꽤 정확하게 구별할 수는 있었는데, 내 감각에 강한 믿음을 가지진 않았다. 호감을 느끼더라도 그렇지 않은 것처럼 행동할 수도 있는 게 사람인데, 눈 앞에 보이는 상대방의 피상적인 반응에만 집중했었다. 


내가 오랫동안 연예를 못했던 이유였다고 본다. 내 본모습을 보여주며 나만의 결을 상대방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성격이 예민한 탓에 뚝심이 부족했다. 상대방의 표정, 행동 등에 조금 무심할 필요도 있는데, 나에게 돌아오는 반응에 너무 예민했던 것이다. 


수많은 기회들을 놓쳤던 기억이 난다. 학교를 오고가며 버스정류장에서 마주칠 뿐이었지만, 서로가 서로의 첫인상에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말을 걸기가 참 어려웠다. 갑자기 느닷없이 말을 걸면 상대방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 사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을까 싶어 말걸기를 주저하고, 결국 내 직감마저 의심해서 기회를 날리기도 했었다.


또 최근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서로가 친해지고 싶어한다는 걸 느끼고는 있었지만, 선뜻 먼저 다가가지를 못했다. 상대방에게 다가가려면 뭔가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병이라도 있는 건지, 어떻게 친해질지, 어떻게 먼저 다가갈지 그럴싸한 방법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집착했다. 괜히 엉뚱하게 다가갔다가 상대방이 이상하게 반응하지 않을지 걱정되기도 하고, 그 사람의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괜히 신경쓰여서 더욱 주저했던 것 같다.


상대방의 반응에 예민하게 신경쓰며, 괜히 갈팡질팡하며 호감 표현을 주저하는 사람의 모습은 나를 거쳐간, 또한 거쳐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이지 못한 모습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러한 예민함은 조금씩 약해지고 있다.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내 마음을 온전히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상대방의 결을 기민하게 파악하며 내 마음의 결을 뚝심있게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 나 같은 경우라면, 여리고 예민하며 사려깊은 사람이니 나와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다면 나에게 다가오라는 메세지를 전달하는 게 필요할 것이다.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호감을 가지게끔 하는 데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관심과 호감 사이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과정인 것이다.


요즘은 그런 과정을 연습하고 있다. 맥락에 맞지 않다고 상대방이 생각하든, 어색하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든, 그런 걸 신경쓰지 않고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상황이 어떻든 서로의 관계를 발전시키고 싶다는 진심이 전달될 수만 있다면, 예민함은 조금 내려놓아도 좋다고 본다. 전전긍긍하는 모습보다는 그래도 당차고 소신이 뚜렷한 사람을 좀더 좋아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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