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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모자 Nov 14. 2021

챙겨주지 못하고 있었다

챙겨주는 것조차 불편한 문화

내가 회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 직원들이 신입을 업무적으로 잘 챙겨주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나와 같은 업무를 했던 선임 직원은 나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고, 알아서 공부하고 알아서 하라는 얘기만 했었다. 부서 내에서 막내였던 직원도 기본적인 것만 알려줬다. 업무를 하며, 회사생활을 하며 세부적으로 파고들수록 내가 알아서 찾아보고 알아봐야 했다. 내가 물어보면 알려줬었지, 먼저 알려주지는 않는 편이었다. 안 그래도 처음 회사에 들어가면 막막한데,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공부하고 판단해야 했으니 회사가 정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달이 지나며, 그나마 회사 생활에 적응하게 되었다. 누군가가 도와줘서, 이끌어줘서 적응한 게 아니라 순수하게 내가 혼자서 생존한 것이었다. 마치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것처럼 끊임없이 지식을 흡수하고, 눈치를 보고, 업무를 쳐내었다. 그러면서 이게 사회생활이구나, 이렇게 매정한 게 사회이구나를 깨달아갔다. 성격은 점점 더 단단해졌고, 눈빛에는 힘이 들어갔다. 기(氣)가 세지고 있다는 걸 내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나는 변해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부서에 새로운 분이 오셨다. 새로 왔으니 이것저것 챙겨줄 것이 많았다. 자리 세팅도 하고, 사무용품도 챙겨주고, 업무도 가르쳐야 했다. 물론 회사 문화와 상사 성격에 관해서도 알려줘야 했다. 나는 내 선배들이 안 챙겨준 것처럼 행동하기는 싫었다. 조직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손님이 온 것처럼 환영해주고 챙겨줘야 하는 게 사람으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새로 들어온 분이 이 회사는 사람 안 챙긴다, 참 경직되어있고 삭막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내 세심한 성격을 십분 활용해서 제대로 챙기려고 다짐했다.


하지만 막상 마음처럼 되질 않았다. 사무용품 하나 더 챙겨주고, 옆에 붙어 업무적으로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었지만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누군가를 챙기는 것조차 눈치가 보이는 조직문화가 문제였다. 사무용품 하나 더 챙겨주려 해도 마음이 조급했다. 바깥에서 너무 시간을 보내면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한 소리 들을까 봐 걱정이 되어서 집중이 되질 않았다. 어디로 화가 튈지 모르는 호랑이 같은 성격인 상사였기에 늘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진심을 다해 챙기고 싶어도, 내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어려웠던 것이었다. 


게다가 시키는 일만 해야 하고, 내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환경 속에서 업무를 많이 가르쳐줄 수가 없었다. 내가 내 일 하기도 벅찼고, 같은 공간 안에서 귀를 쫑긋하고 있는 상사의 눈치가 보여서 업무 하나 가르쳐주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더 알려주고 싶어도 내 머릿속에서 떠오르질 않았다. 항상 긴장하고 있으니 생각이 짧아졌던 탓이다. 신입이 운전이 서툴러서 시골 현장에 나갈 때 동석하고 싶었는데 그마저도 거절당할까 봐 눈치가 보여서 포기했다. 세심하게 챙기질 못하니 신입도 나처럼 세부적인 것은 알아서 찾아보고 공부해야 했다. 그렇게 반복되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하나의 문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상사의 눈치를 계속 봐야 할 때 우리는 생각을 멈추게 된다. 시키는 일만 해야 할 때 우리는 기계처럼 무념무상으로 살아가게 된다. 긴장한 탓에, 여유가 없는 탓에 업무적으로 깊게 파고들기 힘들고, 주변을 넓게 살펴볼 수도 없다. 그래서 같은 부서 동료를 챙기는 일조차 하기 어렵게 된다. 기본적으로 현대인들은 여유가 너무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마음의 여유.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의 자율권을 빼앗아 간다. 약자들은 생각할 힘을 빼앗기고, 주변을 살필 여유를 잃게 된다.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회사 문화를 보며, 역시 탈출만이 정답인 것인가 평소에 한탄을 하곤 한다. 옷 단추를 전부 잠그고 다니는 것 같아 하루하루가 답답하다. 주변 사람 챙기는 것 하나 버거워하는 나 자신이 답답하기도 하다. 최소한 맨 윗 단추 하나는 풀어도 되는 여유 정도는 만들어줘야 되는 것 아닐까. 그래야 서로 챙기며 살지, 안 그래도 힘든 사회생활, 서로서로 주변을 챙기며 살아가야 조금이나마 살 만한 삶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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