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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모자 Oct 04. 2021

관둘 거면 미리 얘기를 좀 해줘

평균 근속년수를 늘리기 위해 필요한 심리적 안전감

관둘 때 회사에 미리 얘기를 좀 해달라는 말을 회사 내에서 때때로 듣곤 했었다. 처음에는 얘기 없이 갑자기 관두는 젊은 직원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했었다. 하지만 몇 달 정도 다녀보니, 왜 그런 말을 선배들이 자주 했었는지 이제는 이해가 된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조직문화는 엄청 고리타분하지는 않으면서 그렇다고 세련된 편도 아닌 그저 그런 보수적인 문화이다. 일반적인 공공기관의 분위기라고 생각하면 될 듯한 문화이다. 마치 몇십 년 전, 삼촌이 신입으로 입사했을 때의 분위기와 비슷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오래된 조직문화이지 않을까 싶다.


여러 단점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고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의사소통의 부재'이다. 업무를 배우고, 처리하면서 늘 했던 생각은 '왜 말을 안 해주냐'였다. 업무에 관해서 미리 알려주는 것도 없고, 물어볼 때 자세히 알려주지도 않는다. 도리어 여기가 학교냐며 물어보며 배우지 말고 혼자 부딪혀보며 배우라고 하는 직원들도 간혹 있었다. 가르쳐줄 것이 있으면 가르쳐주면 되고, 물어볼 것이 있으면 물어보면 되는데, 왜 말을 안 하고 알아서 하길 바라며 입을 다물고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소통이 안 되면 괜히 일을 두 번 하게 된다. 미리 말해주는 것도 아니고, 물어보고 싶지만 눈치가 보여 쉽게 물어보질 못하다 보니 어설프게 일처리를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문제가 생겨서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거나, 대대적인 수정을 해야 하는 경우가 불가피하게 생기게 된다. 업무에 관해서 소통이 잘 되면 서로가 힘들 일이 없다. 하지만 일은 혼자 배우는 거라며 물어보지도 못하게 하고, 먼저 얘기해주는 것도 아니다 보니 직원은 직원대로 힘들고, 관리자는 관리자대로 신경이 쓰이게 된다. 단지 신경 좀 써서 업무에 관해 직원과 대화를 좀 하고, 궁금한 점이나 확인해야 될 점이 있으면 언제든 관리자에게 물어볼 수 있는 분위기만 만들어주면 된다. 하지만 그런 방식의 교육법은 잘못되었다는 이상한 문화가 '소통하는 조직문화'의 싹을 지속적으로 잘라버리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소통은 예측 가능한 회사생활을 가능하게 한다. 내가 하고 있는 업무는 왜 하는 건지, 이 업무가 끝나면 그다음 업무는 무엇인지, 언제까지 끝내면 될지 등에 관해 전달받으면 업무가 예측이 가능해진다. 다음 주까지 끝내면 되는 일이란 걸 알면 주말에 출근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금요일 저녁에 일을 다 끝내지 못했다고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 내 업무를 왜 하는 건지를 알고, 그다음 업무가 무엇인지 알면 전체적인 일정이 가늠이 된다. 그래서 회사생활을 좀 더 계획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심리적으로 안전감을 가지고 업무를 할 수 있게 된다. 이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다음 업무는 뭔지,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를 알아야 내가 하고 있는 업무에 관한 분명한 나의 판단이 존재할 수 있고, 그로인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소통이 되질 않으니, 내 바로 앞에 닥친 일이 뭔지 몰라서 항상 불안에 떨어야 한다. 내일은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어떤 고통이 나에게 닥칠지 매일 걱정하며 회사를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활은 정신적으로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충분히 소통을 하면 안정적인 마음으로 회사를 다닐 수 있다. 스트레스를 덜 받으니 상사와의 관계가 덜 나빠지고, 실수를 덜 하게 된다. 피로감을 덜 느낄 수 있어서 만족도가 올라가고, 다니고 있는 회사를 더 오래 다닐 수 있게 되기도 하다. 물론 업무에 관한 소통을 함에 따라 업무 효율이 올라가고, 효과적인 목표 달성이 가능한 건 당연하다. 하지만 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심리적 안전감이라고 생각한다. 회사생활이 심리적으로 편안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삶의 질 저하 등의 개인적인 문제는 물론이고, 업무 효율 저하, 사기 저하 등의 조직 차원의 문제도 발생할 것이다. 여러 조직원이 이런 문제들을 겪는다면 그 회사는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인간사회 내에서는 어떤 일이든 사람이 먼저다. 사람을 먼저 챙기기 위해 우리는 소통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서로 말을 안 하는 소통의 부재 때문에 젊은 직원들이 회사에 실망을 하는 건 아닐까 싶다. 연봉도 중요하고, 복지도 중요하지만 조직문화도 중요하다. 그리고 나는 조직문화가 다른 어떤 요소들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회사생활이 불안함의 연속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연봉이 적고 복지가 적어도 문화가 좋으면 이직을 하기 전까지 회사를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다. 하지만 문화가 거지 같으면 연봉을 아무리 많이 줘도 이직하기도 전에 뛰쳐나가게 된다. 현대사회에서 정신 건강은 육체 건강만큼 상당히 중요하다. 복잡하고 고단한 세상을 살아가며 많은 이들이 여러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만큼, 평균 근속연수를 올리고 싶다면 조직에서도 심리적 안전감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우리 회사도 소통이 안 되는 모습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당장 내가 속해있는 부서에서도 소통 문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지금 회사 내에서 소통을 줄이는 것이 그나마 회사생활을 버틸 수 있는 비결이란 것을 젊은 직원들이 잘 배운 나머지, 미리 말도 없이 갑자기 관두겠다고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윗사람들이 업무에 관해 소통을 잘 안 하는 것처럼 젊은 직원들도 보고 배워서, 퇴사에 관해 소통을 잘 안 하는 건 아닐까. 미리 얘기를 해달라는 말을 하기 전에 본인들은 소통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세심하게 살피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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