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비빔밥이 필요하다

by 작은우주인 김은주
사 학년 땐가,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은
도시락 반찬으로 아이들 집안의 빈부가 가늠질되는 게
보기 좋지 않았는지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밥하고 가져온 반찬하고 큰 양동이에 부어 같이 비벼먹자.”

모든 도시락을 내어놓았고 가지고 온 반찬도 함께 양동이에 부었다.
비벼서 서로 나누어 먹었다.


-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점심 비빔밥>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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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위암으로 안타깝게 생을 마친

허수경 시인의 산문집,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를 읽다가

옛 추억에 젖게 하는 글이 있어서 인용해 본다.

아마 급식 세대들은 모를 것이다.

한겨울 교실의 석탄 난로 위에 올려놓았던 양은 도시락.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시절만 해도 (너무 옛날 사람 같은 문구인가?)

당번이 아침마다 매일 석탄을 나르고 불을 피워야 했다.

도시락을 난로 중간 즈음 올려놓게 되면

그 날은 가장 적당히 따뜻한 밥을 먹는 행운을 얻게 되는 날이었다.

그땐 그랬다.

도시락 뚜껑을 열면 보이는 반찬에 꽤나 신경을 썼던 것 같다.

계란말이나 분홍색 소시지가 보이는 날에는

아이들이 많이 몰려들어 반찬이 간혹 모자라기도 했다.

나는 부끄럼이 많은 아이여서,

내 반찬을 가져가는 친구에게 뭐라 말도 못하면서

다른 아이들의 맛난 반찬을 슬쩍 먹기가 미안해서

밥만 꾸역 먹은 적도 많았었다.

허수경 시인의 선생님은 참 현명하신 분임에 틀림없다.

아이들의 반찬과 상관없이 비빔밥으로 먹으면

재료도 똑같고 맛도 똑같을테니

모든 아이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었지 않을까.

문득 사람의 감정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마음이 가라앉는 날에는

조금 수다스럽고 밝은 사람을 만나거나

유머 가득한 TV 프로그램이나 영화를 보거나

재밌는 책을 찾아 읽어보는 건 어떨까 싶다.

내 마음이 유쾌한 말과 재미있는 글과 밝은 대화와 비벼져서

조금 가벼워질 수 있을 테니까.

점심 비빔밥.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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