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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Oct 31. 2024

Lost Paradise

낭만적-인상주의, 블루 발렌타인의 시

조금 늦은 시간이었다. 사람의 발길이 길지 않은 곳이었지만 유독, 한적했다. 어둡고, 고요를 넘어 시간이 정지된 듯한 적막이었다. 

아마 눈이 쌓였기 때문이겠지. 

아니, 마치 두껍게 쌓인 눈 아래에 존재하는 세계 같았다. 

모든 것이 눈이라는 거대한 산에 꺾여 메아리처럼 되돌아 오는, 규칙적인 벽 아래에 잠들어 있는 균열 없는 세계. 어쩌면 중력의 영향도 받지 않는, 고요만이 차분히 내려앉는 그런 곳. 


혼자 그 길을 걸었다. 

앞에 펼쳐진 길은 끝도 없이 길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은 맑았고 그 자체로 보호해야 할 존재 같았고, 소중해서 만지기도 아까운 솜털 같았다.  


저 깨끗함은 보는 사람을 숙연하게 만들기도, 초조하게 만들기도 하는구나. 발자국을 새기는 것조차 죄책감이 든다. 이런 생각에 서둘러 길을 벗어날까 하다가도, 아무도 없는 돌담길에 쌓이는 눈과 양옆으로 늘어선 가로등 불빛과, 저만치 앞에 걸어가던 너를 보는 그날의 내가 떠올라, 


나는 혼자 걸어가던 너를 뒤 따라가고 있었다. 




'낭만적-인상주의, 블루 발렌타인의 시'에 실린 글 중 일부분만을 적었습니다. 책은 전국 독립서점, 인디펍, 예스24, 알라딘 등 온라인 서점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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