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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현승 Oct 30. 2021

바람 부는 날 / 김종해_(아내와 함께)

가족과 함께 시를 낭송합니다 02 _ 아내의 목소리

바람 부는 날  / 김종해


사랑하지 않는 일보다
사랑하는 일이 더욱 괴로운 날,
나는 지하철을 타고 당신에게로 갑니다.
 
날마다 가고 또 갑니다.
어둠뿐인 외줄기 지하통로로
손전등을 비추며 나는 당신에게로 갑니다.
 
밀감보다 더 작은 불빛 하나
갖고서 당신을 향해 갑니다.


가서는 오지 않아도 좋을
일방통행의 외길, 당신을
향해서만 가고 있는 지하철을 타고


아무도 내리지 않는 숨은 역으로
작은 불빛 비추며 나는 갑니다.
 
가랑잎이라도 떨어져서
마음마저 더욱 여린 날,


사랑하는 일보다 사랑하지
않는 일이 더욱 괴로운 날,  


그래서 바람이 부는 날은
지하철을 타고 당신에게로 갑니다.



아내와 함께 시를 낭송해 보았어요. 아내에게 한번 시를 낭송해 보자고 하니 쑥스러워하더라고요. 며칠 전에 딸과 함께 시를 읽어보았다고 하니 '어? 정말?' 하면서 조금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래도 자신은 오글거리는 게 싫다면서 손사래를 치기에 "여보오오오옹~~" 하니 약간 선심 쓰듯 해 주었습니다.


아내에게 시를 마지막으로 낭송해 본 때가 언제였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시는 눈으로 읽는 것이지 왜 소리 내어 읽냐고 해서, 저는 낭송하면 시가 주는 느낌이 더 잘 다가온다고 했어요. 다들 그랬습니다. 학창 시절 친근하게 시와 만나는 경험이 없었습니다. 정답을 외워야 하는 시 공부였죠. 어쩌면 지금도 학교에서 아이들이 저희 세대가 만났던 방식대로 시를 배우지 않을까 하네요.


아내가 드디어 시를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저는 아내가 빠르게 시를 읽을 줄 알았어요. 제 예상을 깨고 아내는 맑은 소리로 천천히 낭송하였습니다. 오글거려 싫다고 하면서도 시를 낭송한 모습이 참 예뻤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괜찮았습니다. 시를 읽는 소리가 따듯했습니다. 아내가 시를 또 읽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느끼하고 오글거리는 느낌을 못 견뎌해서요. 아내가 시를 읽는 시간을 그래도 기다리고 싶습니다. 시를 시답게 만나는 연습을 하면 아내가 시를 만날 때 조금은 덜 어색하지 않을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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