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집으로 와 23화

날씨와 생활

by 준혜이

빗방울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나뭇잎을, 나뭇가지를 건드리면서 온 나무를 다 흔든다. 그렇게 움직이는 나무의 소리가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같아서 나는 눈을 감고 젖은 빨래가 되어보기로 한다. 허리케인 헨리가 온다지만 우리는 헨리의 영향권에 속하지 않는다. 우리를 아는 사람들의 걱정 어린 말에 잠시 정전이 되면 어떡하나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허리케인을 직접 경험해 본 적 없는 나는, 여태까지 그래 온 것처럼 이번에도 괜찮을 거야, 혹시라도 예상 못한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으로 그 순간에 맞는 대처를 하게 되겠지.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오른손에 들고 우리가 헨리의 영향권 밖에 있다는 뉴스를 두 눈으로 거듭 확인하면서 말이다.


외출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옆집 아저씨가 우리 집에 찾아왔다. 가만히 있어도 놀란 사람처럼 보이는 얼굴의 아저씨. 눈썹과 눈의 조화가 그렇다. 그래서 나는 잘못한 일도 없이 당황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아저씨는 남편과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남편 옆에서 우리 집과 옆집 사이 커다란 소나무들의 기울기를 가늠해보는 아저씨의 두 팔을 나는 현관문 앞에 서서 지켜보았다. 두 집 사이의 경계를 서로가 분명히 알고 있지 않으면 헨리가 초래할지 모를 피해에 제대로 대비할 수 없다는 것이 아저씨의 입장이었다. 이 동네로 이사 온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은 아저씨는 불안한 모양이었다. 남편은 집으로 뛰어들어가 집과 땅에 관한 문서를 찾아보다 포기하고 옆집 아저씨와 구글맵을 보면서 어디까지가 각자의 땅인지를 연구했다. 그러다 옆집 아저씨가 구글맵을 온전히 신뢰할 수는 없다고, 어차피 허리케인 헨리는 우리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고 지나갈 거라고 얘기했다.


인도 사람인 줄 알았던 옆집 아저씨는 네팔 사람이었다. 아저씨가 우리한테 나무 의사의 진단을 받아서 벌목을 결정한 거냐고 물어봐서 그동안 나무를 자르고 꺼림칙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우리가 벌목을 결정하기 전에 먼저 나무의 상태를 살피고 나무가 우리 집에 피해를 입힐 건가 아닌가 판단해 줄 사람의 말을 들어볼 수도 있었다는 것. 그런데 나무 의사가 나무는 건강하고 세상을 멸망시킬 자연재해가 오지 않는 이상 우리 집에 피해를 입히지 않을 거라는 말을 했다 한들 눈길을 가로막는 나무를 잘라 없애고 싶다는 우리의 마음이 달라졌을까. 옆집 할머니로부터 나무 잘 잘랐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기분을 떠올려보면, 글쎄.


헨리는 우리 동네에 조용히 오래 비를 뿌리며 지나갔다. 그렇게 며칠 동안 비가 내려 빨래를 건조기에다가 만 말린 것이 그가 나에게 미친 영향이었다. 젖은 빨래를 모조리 건조기 안에 집어넣는 내가 이국적이네. 한국 집에는 빨래 건조기가 없었고, 텔레비전 뉴스의 날씨와 생활에서는 날이 좋으면 늘 오늘은 빨래 널기 좋은 날씨입니다, 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무뿌리가 뽑힐 만한 허리케인이 온다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허리케인보다 빨리 나무를 제거하면 되나. 집 주변에 나무가 많아서 좋은 건 날씨가 평화로울 때뿐이라는 걸 깨달았고, 날씨는 주로 우리 편이지만 단 한 번의 변심으로 우리의 모든 것을 순간 뒤바꿔 놓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겠다. 그래서 우리가 집 안에서 살고 있지만 바깥에서 사는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데 나중에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우리는 아파트로 이사를 가야겠어. 자연과의 단절이,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그 생활이 주는 표면적인 안락함을 우린 잘 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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