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는 미피 신호등이 있다. 미피로 구글 검색을 했더니 미피를 그린 작가 Dick Bruna가 네덜란드 사람이다. 이건 뉴저지에서 친하게 지내던 언니네 가족이 한 달 전에 네덜란드로 이사를 간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이다. 언니 별 일없이 잘 도착했죠? 재미있는 표지판 보면 사진 찍어서 보내주세요 ㅋㅋ 언니와 같이 보낸 시간이 불규칙적으로 툭툭 떠올라 내 머릿속엔 온갖 찌질한 말들이 끝도 없이 지나가지만, 나는 언니가 네덜란드에 도착한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나기를 기다렸다 저렇게 추잡하지 않은 카톡을 보냈다. 그랬더니 띵! 사진. 언니가 빨간 미피가 초록 미피가 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내 생각이 난거지, 표지판이 아닌데도.
우리는 뉴저지 애들 태권도장에서 처음 만났다. 그 동네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는, 우리가 아닌 한국 사람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한국분이시네요. 언니가 나에게 건넨 이 한마디를 신호로 나는 말하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언니한테 했던 모든 말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저 남편이랑 주말부부예요. 큰 애는 다섯 살이고, 작은 애는 한 살인데 저 혼자 애 둘을 다 키우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저 진짜 힘들겠죠? 언니를 만나서 친정 엄마한테 틈만 나면 전화해 걱정 끼치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었고, 주말마다 남편한테 불평, 불만을 늘어놓으며 위로받지 않아도 살 수 있었다.
언니가 나에게 사진을 보내온 시간은 오후 5시 30분. 나는 여기 이사오자마자 등록한 애들 태권도 수업이 끝나기를 도장 밖 대기실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중이었다. 미국과 네덜란드의 시차가 얼마나 나는지 잘 몰라 언니 거기 지금 몇 시예요? 밤 11시 30분. 조용해요? 깜깜해요? 어. 요즘은 밤에 늦게 잔다고 웃는 언니의 문장에서 다른 세계의 등장, 또 다른 사람의 시작을 발견한다. 우리가 다시 만날 날이 기대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서로에게 자주 가볼 수 없고, 같은 밤과 낮이 아닌 데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우리, 우리를 아는 사람이 없는 시간, 우리가 모르는 도시, 나라, 지구.
언젠가는 언니랑 단 둘이 마주 앉아 두 손으로 뜨거운 커피잔을 감싸 쥐고 우리가 새로운 곳에서 어떤 어제를 보고 내일을 기대했는지, 익숙한 몸속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얼마나 자주 오늘 하루 무사히를 어떻게 외쳐댔는지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런 날이 쉽게 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세상 일 뭐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라도 있나요, 다 이해합니다. 그리고 가정 있는 여자에게 둘만의 시간은 사치 아니던가요. 이미 다 아시겠지만 저는 더 오래 기다릴 수 있습니다.
준혜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