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여름방학이 끝났다. 8월 31일 매사추세츠 코로나 신규 확진자 수 4,081, 사망자 0명. 아이들은 쉬는 시간, 점심시간, 간식 시간 말고는 학교에서 마스크를 벗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은 무지하고 순진한 바람에서 비롯되었거나 현실을 직면할 용기 없는 마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마음 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나는 모른다. 그저 이제는 아이들과 매일 아침 신나게 헤어지고 싶을 뿐, 사랑하기 때문에.
스쿨버스를 타러 가는 아스팔트 길은 이끼로 뒤덮여 초록색이다. 나무 아래 길이 그늘지고 습해서 그런 거겠지만 초록색 카펫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이 나쁘지 않다. 우리는 가을에도, 겨울에도 매일 아침 이렇게 초록빛 길을 함께 걷게 되는 걸까. 지붕 위에서 자라던 이끼에 약을 뿌려 새까맣게 죽인 내가 이럴 수 있나. 아니, 이 땅에 오래 머무르고 싶었으면 있어도 되는 자리, 제대로 된 자리를 잡았어야지, Not in my backyard. 그렇지만 나는 하루에 한 번씩은 온 마음을 다해 인류의 평화를 기원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껄껄껄
아저씨 하나가 자기 집 앞을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물어보나 마나 늑장 부리는 애들을 대신해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거겠지. 새로 이사 왔냐며 우리를 반기는 아저씨가 지나치게 활짝 웃어서 내 입이 다 아플 지경이었다. 어디서 왔니? 뉴저지. 2013년에 이 동네로 이사 온 아저씨에게는 네 명의 자녀가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자신의 아이들을 빼고 가까운 이웃집에는 아이들이 살지 않았다고. 중학생 딸은 먼저 학교에 갔다고 말하고 집 쪽으로 몸을 돌린 아저씨의 등 뒤로 쌍둥이 자매와 남자아이 하나가 엄마와 함께 집에서 걸어 나온다. 5학년이라던 아저씨의 딸들은 알고 보니 4학년이었다.
오후 세 시 반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 다가와 나는 아이들을 데리러 이끼 깔린 길을 다시 한번 걸었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동안 내 어디 숨어 있었는지 산울림의 노래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자기 집 앞을 서성이는 아저씨가 점점 크게 보인다. 아이들은 학교에 나가고 어른들은 집에 있다. 우리의 방황과 탐험이 벌써 이대로 끝나버린 것일까. 아니지. 가만히 한 자리에 머물수록 몸속에서 시공간을 초월해 날뛰는 마음을 바로잡는 게 우리의 새로운 모험이잖니. 아저씨네 아이들 셋이 우르르 스쿨버스에서 내리고 우리 딸아이가 그 뒤를 따라 내렸다. 버스는 길을 떠나고 둘째 어딨어? 아저씨가 소리치고 뛰면서 버스를 뒤쫓았다. 길 한가운데서 멈춘 스쿨버스에서 당황한 눈빛으로 내린 둘째에게 괜찮냐고 묻고, 이게 바로 개학 첫날이야, 하는 아저씨를 이제 나는 아빠라고 부르겠어요.
아이들의 두 번째 등굣길, 남편은 빨갛고 낡은 모교 티셔츠를 입었다. 아저씨가 남편을 보더니 제대로 된 티셔츠를 입었다며 자신의 아빠와 여동생이 그 대학을 나왔다고 말했다. 나 몬트리올에서 자랐어. 정말? 세상 좁다. 나는 가나에서 자랐고, 영국에서도 살았어. 아빠는 몬트리올에 있고, 아빠가 몬트리올에서 만난 새엄마는 일본 사람이야. 남편이 나를 한 번 쳐다보면서 우린 몬트리올에서 만났어. 아저씨는 집 쪽을 향해 여보, 얘네 몬트리올에서 살았대. 몬트리올은 정말 아름다운 도시야. 우리는 서로 멀찍이 떨어져 서로를 향해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스쿨버스가 약속된 시간에 맞춰 도착하고 아이들은 우리가 모르는 세계로 뒤돌아보지 않고 떠난다. 아이들을 보내고 각자의 하루 속에 흩어지는 우리는 자꾸 뒤돌아 서로에게 손을 흔든다.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멀리 떠난 사람들이 계속 다시 태어나서 사는 곳은 말 안 해도 알 것 같은, 나 아닌 사람의 어떤 마음인가. 그 마음이 우리를 몬트리올에 가서 베이글을 사 온 다음 아저씨네랑 나눠 먹고 싶게 만들고.
준혜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