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뜰에 수선화 구근 10개를 심었다. 봄에 피는 꽃은 가을에 심고 가을에 피는 꽃은 봄에 심는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오, 사랑. 루시드폴의 노래를 나지막이 불러보았다. 고요하게 어둠이 찾아오는 이 가을 끝에 봄의 첫날을 꿈꾸네. 만리 너머 멀리 있는 그대가 볼 수 없어도 나는 꽃밭을 일구네. (루시드폴, 오, 사랑) 우리는 아무 꽃도 피어나지 않는 계절에 살아본 적이 없다. 호미를 들고 빈 땅을 바라보며 봄이 되면 봄, 하고 여름이 오면 여름, 가을에는 가을, 겨울이면 겨울. 그렇게 모든 온도에 꽃을 피우는 계절의 지휘자가 한 번 되어볼까 싶다가도 우선 수선화 먼저 심고.
해본 적도 없고,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은 일이 하고 싶어 견디지 못하는 마음은 일요일 오후 어느 식료품점에 진열된 여러 가지 종류와 색을 가진 꽃의 구근으로부터 생겨났다. 그런 마음의 발생 자체가 식물을 향한 나의 잠재력이 온 땅을 뒤흔들며 깨어난 것이라 해석해도 되나. 나는 튤립 구근을 사고 싶었지만 딸아이가 수선화를 원하여 우리는 수선화 구근 20개를 샀다. 내년 봄 수선화가 보이지 않는 우리 집 앞뜰에 국화 한 송이를 들고 서서, 나는 사실 튤립을 원했어, 여기는 이제 지난가을 수선화의 개화 가능성의 무덤이 되었구나. 저 멀리 봄이 사는 곳 오, 사랑. (루시드폴, 오, 사랑) 그런데 이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꽃 아니야? 맞아. 나르시스, 나르시스.
수선화 구근 포장지에는 구근 심는 방법이 글로 그림으로 적혀 있고, 그려져 있다. 집에 모종삽이 없네. 그래서 나는 호미와 국자로 아이들과 함께 땅을 팠다. 구근 하나 크기의 세 배 만 한 깊이로 구근을 심으라는 말을 몇 번이나 읽었지만 우리는 이 정도면 됐어,라고 느껴질 때쯤 땅파기를 멈추고 양파같이 생긴 수선화 구근을 그 속에 묻었다. 수선화야, 너는 아름다운 너와 사랑에 빠져 죽어 수선화가 되었지. 그러니까 너는 죽음 이후의 생명. 세상의 모든 규칙과 지시를 어느 정도 따르지 않아도 이 땅에 태어날 수 있다고. 가을부터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마음이 마음이 마음이 우리를 시간에, 시간에 시간에 시간에 병들지 않게 할 것만 같아, 아 아 아.
아이들과 쭈그려 앉아 땅을 파면서 지렁이 몇 마리를 호미로 쳐 죽였다. 바람에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와 향기를 듣고 맡으며 으악, 좋은 흙이야. 이렇게 바깥에 있는 동안 우리가 사람의 몸과 마음이 다 풀어헤쳐진 풍경 속에 들어가 있다고 느낀다. 수선화 구근의 등장으로 우리의 미래가 되어버린 앞뜰에 지는 해를 등진 채로 수돗물을 흠뻑 내렸다. 심다 남은 구근은 봉지에 따로 챙겨 넣었다. 호미는 현관 앞에 놓인 빈 화분 속에 던졌다. 땅을 파고, 국도 뜨고, 하늘의 별까지 잇는 국자를 손에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가면서 내일은 삽을 사러 나가야겠어, 마음속으로 외쳐본다. 네가 틔운 싹을 보렴. 오, 사랑 오,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루시드폴, 오, 사랑)
준혜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