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저지에 다녀왔다. 이사하고 5개월 만에 찾아간 것이었다. 구글맵에 주소를 입력하면 우리 집에서 언니네까지 대략 4시간 30분이 걸릴 예정이라고 나온다. 하지만 고속도로 위의 그 시간은 우리가 만나지 못한 다섯 달보다 더 길게 느껴질 거란 걸 우리는 안다. 그래서 애들이 어두운 차 뒷좌석에서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화장실에 가야 한다고 떠드는 순간마다, 내가, 그렇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마녀 같은 엄마로 순식간에 변신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던 것입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전학을 하고, 전학 간 학교 개교기념일에 예전 학교로 찾아간 적이 있다. 나는 더 이상 그 학교 학생이 아니니까 새 학교 교복을 입고 간 건지, 새로운 교복을 입은 나를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혼자 친구들과 다른 교복을 입고 내가 없어졌는데도 변함없는 그 세계의 모든 것을, 친구들의 자연스러움 속에서 예민하게 감지하며 소외감을 느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떠난 자리로 되돌아가 보는 건 스스로를 고문하는 짓이라고까지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오로지 내가 떠난 자리를 파괴하고, 나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을 이 세계로부터 추방시키며 그리워하고 기다리면서 살아왔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이건 신도시에서 자란 수많은 아이들이 겪어온 사춘기라는 걸 그때 알 수 있었더라면, 이라고 하기엔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이사를 자주 다녔는데, 그렇다면 과연 이건 지구 시민이 겪는 불안인가, 하면 저는 잘 지냅니다, 당신은 잘 지내시나요?
오랜만에 만난 언니들과 아저씨들 앞에서 반가움에 미친 강아지처럼 꼬리 치며 배를 까뒤집어 보이고 싶었지만 나는 평소 나의 예상과 달리 사람이길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사람들에게 잘 왔다는 말과 우리가 떠난 빈자리가 그동안 비어있지 않고 계속 우리로 채워져 있었던 것만 같다는 말을 듣고 말았다. 그 말을 핥아먹을 수 없어 내가 사람인 걸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나는 뉴저지를 떠나 불꽃 아래서 마흔이 되었다. 불혹, 중년, 퇴폐에 어울리게 나는 내가 남자의 육체를 온몸으로 탐하고, 여자의 정신과는 말로, 눈물로 연결되길 갈망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다. 새해를 맞이하는, 새로운 10년을 기대하는 닳고 닳은 전문가가 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