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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혜이 Jan 27. 2024

누구나와 달리기

녹다 만 눈 위로 빠득빠득 남편 발자국을 따라 달린다. 그 옆에 찍힌, 사려 깊고 부지런한 주인과 이미 이른 아침 산책을 마쳤거나 진행 중일 개 발자국도 무수히 발견한다. 오늘 매일 새로운 이 계절의 온도와 습기와는 상관없이 달리기 시작하고 10분간 도로 집에 들어갈까 말까를 계속해서 고민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달리기 끝나기 10분 전쯤에 가까워져서야, 아, 도대체 집 언제 나와, 그 자리에 당장 멈춰 서고 싶어 진다고 그런다. 그래서 우리가 같이 달리는 날엔 처음과 마지막, 서로의 발소리를 재촉하는 무언의 멱살잡이로, 집을 나설 때 계획한 거리만큼 내내 두 사람의 숨이 공중을 하얗게 가르며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는 것이다.  


출발이 어려운 사람에게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로서의 도착과, 시작이 가벼운 사람의 성취를 점점 지연시키는 끝까지 다다르는 그 과정에, 누구의 마음에서나 아무 감정이 일어나지 않고, 숨을 몰아쉴 필요도 없이 몸이 자동적으로 움직여주는 구간을 마주한다. 어떻게 보면 일정시간 동안 같은 동작의 끊임없는 되풀이인 달리기는 강박과 중독의 발악이나 율동 같기도 해, 애써 이러한 평정 상태를 침 튀기고 땀 흘려 버는 우리 모습이 위태롭기도 하다. 하지만 함께 달리며 제각기 경험하는 그 텅 빈 지점이야말로 바로 독립, 단독이라 규칙적인 속도로 유지되는 교양이 흘러칠 테니, 과연 필연적인 부부싸움 장소로 걸맞지 아니한가. 불쾌함에 사로잡힌 순간 하나의 조각상 되어 두 발을 멈춰 세우면 스스로에게 마저 져버리고 마는 두 겹 전쟁.


달리기로 우리가 혼자서 헤쳐나가 볼 만한 최장 거리를, 그 한계만을 여태 시험해 보는 중이라면 홀로 서서히 늘려나가는 속도와 거리에 취해 인사불성 달리던 맨 처음 나와 멀어진 지금이, 이게, 내겐 다인 것 같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한 시간을 달리기 위해 운동복을 차려입은 채로 두 시간 넘게 집안을 공연히 서성거리거나 궂은 날씨에 조용히 환호하는 두 발이 되거나 하지 말고 되도록이면 남편을 따라 강아지 목줄 매듯 운동화를 발에 채워 집 밖을 나서는 게 이미 등록해 놓은 42.195km에 대한 예의, 그 거리를 온전히 감당할 4월의 신부, 아니 중년의 위기를 무사 완주로 축복할 격렬한 산책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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