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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혜이 Jan 29. 2024

어디로 가야 하죠, 달리기

동네 아저씨들과 달리기는 꼴찌가 되어 멀리서  뒷모습을 쫓아가는 재미가 있다. 누군가와 같이 달린다는 사실이 서로 같은 속도와 보폭으로 한 풍경 안을 가로지르 활동일 때 느껴질 일체감과는 또 다른 존재감의 상호 교류. 어쩌면 이건 우리 모두에게 타인과 같이, 함께의 범위가 무한해지는 경험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토요일 아침 7시 동네 고등학교 주차장에서 만나 함께 달립시다. 러닝 메이트를 찾는 어떤 이가 스트라바 러닝 클럽에 이렇게 메시지를 남기면, 마음이 동한 사람들이 엄지 척을 눌러 그 자리에 미리 참석한다. 이런 식으로 여기 모인 사람들의 숫자와 차림새로 그날 날씨를 이 세상에 선보이는 달리기가 매번 불규칙적인 빈도일어나는 것이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주차장 입구에 원을 그리고 서서 스트레칭을 한다. 그러면서 그간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달리기를 얼마나 꾸준히 해왔는지 그러지 못했는지 또한 고백하다, 느닷없이 누군가의 깨끗한 운동화를 지적하며 오늘 달리기 끝나면 네 신발은 낄낄낄 놀린다. 이런 아저씨들 사이에서 나 홀로 아줌마라는 사실이 전혀 껄끄럽지 않고, 그 누구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않으면서 그 자리에 뻔뻔스럽게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내 궁극의 아줌마 됨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물론 남편이 그 아저씨들 중 한 명인 덕분에 가능한 투명인간 상태라고도 볼 수 있지만, 내가 혼자 와서 그렇게 어색하게 있었더라도 모두의 달리기는 별 무리 없이 진행되었을 것이다. 달리기는 결국 온전히 스스로에 대한 기대와 착각으로 시작되어 뿌듯하고 무참하게 끝날 단독 미래이므로.


우리는 여섯 명으로 달리기 시작해 다섯 명에서 었다가 잠깐 셋, 다시 넷이 되어 하나, 둘, 각자 차로 돌아가는 달리기를 이루었다. 바깥에서 보면 제각각 통제불능 드론쇼와 같아 보이겠지만 안에서는 매 순간이 의식적, 무의식적 선택인 발걸음. 그러니까 달리기 할 때만 쓰는 안경을 잃어버리고 맨 눈으로 달리던 내가 그만 길을 잘못 들고 말았다. 남편과 어이없어하며 전화통화를 한 다음, 서로를 향해 달려가는 그 짧은 시간은 뿌옇기만 하고. 무려 아저씨 세 명이 나란히, 모두에게 익숙한 호숫가 근처에서 미아 된 나를 찾아, 그 행방불명의 원인도 모른 채 내게로 달려오는데, 저들의 뒷모습이 어쩐지 더 존경스럽다 여겨지는 건, 달리기가 말이죠, 엉덩이 운동이기도 하니까요.


안경은 빨래 건조기 안에서 나왔다. 아마 언젠가 달리기를 마친 뒤, 안경을 벗어, 입고 있던 옷 주머니 속에 넣은 걸 그대로 빨래하고 말리고 그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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