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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혜이 Feb 01. 2024

통증과 달리기

통증 부위에도 계급이 있다. 아픔이 비슷한 강도로 발가락, 발바닥, 발등, 발목, 무릎에서 느껴진다면, 단연 왕좌는 무릎님께. 며칠 전 잠에서 깨어나 침대 아래로 왼발을 내딛는 순간 무릎을 감도는 날카로운 통증에 즉시 나를 집어삼켜버린 이른 아침 불안의 농도가 그 높은 지위를 증명한다. 그리하여 집 밖으로 나가 달리지 않고, 집안에만 머물며 몸과 마음 안팎으로 끊임없이 무릎을 관찰하는 나날을 이어 나가는 중이다. 왼쪽 무릎의 불쾌한 존재감에 사로 잡혀 속으로만 쩔쩔매면서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는 건 정말이지 달리기가 간절한 정신적 고난이란 생각만을 반복하는지도 모르지만.


거실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두 다리를 소파 위에 걸쳐 놓은 채, 이 사태의 원인을 스트라바 앱을 켜서 곰곰이 들여다보며 추적해 본다. 작년 한 해 동안 달린 거리 약 1,700 km, 올해가 시작된 이후로 벌써 220여 킬로미터를 달린 것이 무릎에 무리가 되었을까, 묘한 자부심이 가미된 근심으로 스마트폰 화면에다 지어 보이는 미소. 그러다 생각이 운동화를 바꿀 때가 되어 무릎이 아픈 걸지도 모른다는 데로 이른다. 두 엄지가 이런저런 운동화 브랜드 이름을 검색창에 바쁘게 옮겨 적으면서 미세한 관절 통증을 내게 선사하려고 그런다.


아무래도 최근 만삭 이후 생애 최고 몸무게 달성을 가능케 한 식욕 변화가 무릎에 영향을 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내 몸의 이러한 수치 변동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아니므로 이렇게 무람없이 밝힐 수 있는 거지. 어쩌면 근육이란 것이 내 몸속에서 아기처럼 자라나고 있단 모성애적 환상을 하면서 말이다. 편히 누워 있는 만큼 마음도 편안할 수 있다면, 바라는 찰나 저 멀리 오랜만에 엄마에게서 카톡이 온다.


별 일 없이 잘 지낸다는 서로의 안부를 순식간에 묻고 답하고 본론은 아빠 친구 부부 이혼 소식이다. 그분들은 아픈데 없이, 특히 무릎이 무척 건강하신 모양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지만 그걸 문장으로 만들어 엄마에게 보내진 않는다. 익숙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서로를 나약한 몸으로 견뎌내기보다 미지한 자유와 고독을 향해 각자 오롯이 전진하시다니, 와 같은 생각도 들길래 지금 이 순간 내 몸 상태가 이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에 미치는 영향력이란 과연 이토록 놀라우니, 건강한 몸의 권력에 왼쪽은 아프니까 오른쪽 무릎만 살짝 꿇어 경배할까. 꽤 오랜 시간 누운 몸을 감당한 등짝이 쑤시기 시작하고 결국 나에게는 달리기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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