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대로라면 지난주 토요일 우린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했어야 한다. 하지만 지난달 왼쪽 무릎 통증 탓에 밖으로 나가 달리지 못한 나날이 길고 달아, 온몸과 마음을 다한 고민 끝에 봄 말고 다른 계절을 여는 대회에 다시 참가하기로 주최 측에 양해 이메일을 보낸다. 이 마라톤 대회 이름은 무려 싸구려 마라톤, The Cheap Marathon으로 대회 몇 달 전 미리 등록해 참가비 할인까지 받아 우리에겐 더없이 싸진 달리기. 직설적인 대회 이름이 웃기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달리기 만큼 비용이 적게 드는 취미생활은 없을 거란 착각으로 달리기 시작한 주자들의 애환이 묻어나는 작명 아닌가 하여, 달리는 존재로서의 활기가 순간 제정신 안팎으로 모조리 다 숙연해진다.
달리기를 하면서 즐거움만을 위해 어떤 활동을 지속해 나가는 어려움을 알게 되었다. 이루어야 할 목표나 그 이후 얻게 될 성취감에 대한 기대 없이운동화끈을 풀었다 묶었다 하지 않으려는 나를 반복해서 발견하기 때문이다. 고통 없이 흥겹기만 한 취미 생활은 끝내 쾌락 아닌 권태를내게 선사하고. 혹시 소파에 편히 누워 근육 황무지로 오랜 시간 외면받아 온 나의 몸이 달리기로 인해 그 잠재력을 자극받아 무한 지구력 개척지로 탈바꿈되었나.아니면 일단달리기초보에서 벗어난 몸과 마음이,아픈티 팍팍 내며 이 시대를 지나가야만비로소 자랑스러운 나의 비관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달리기는출발과 도착 사이 그 훈련시간 동안 슬라임처럼, 손에 쥐고 아무 형태도 빚지 않으면서 주무를 수 있을만한 상태를 유지하며 견디는 감각이다. 그러니까 이미 경험해 봐 익히 아는 고통 속에 스스로를 준비 없이 밀어 넣고 벌을 내리고 싶다면 얼마든지 싸구려 달리기 대회에 나가 달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도착한 자리에서 출발선에 서 있던 나를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온몸의 통증으로 반기면서 말이다. 그러나 누구도 기대하지 않은 악천후 탓에 싸구려 달리기 대회는 2주 뒤로 미뤄졌다. 나갈까 말까 새로 고민을 시작하기엔 지난해 벌써 등록해 놓은 오타와 마라톤 대회가 7주밖에 남지 않았고 나에게는 어느 소설 제목처럼 나를 파괴할 권리만이 남았나 싶은 게 이게 다 내가 생명력 넘치게 살아간다는 증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