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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혜이 May 08. 2024

벌써 일 년, 달리기

    해마다 오월이면 동네에서 달리기 대회가 열린다. 이젠 이 세상에 없는 아이를 추모하기 위해 남은 가족들이 주최하는 행사이기도 한 이 달리기는 올해로 세 살이 되었다. 달리 말해 수많은 사람들을 일 년에 하루, 한데 모으는 아이의 죽음과 그 가족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헤아려보는 내 시간도 대놓고 세 번째란 뜻이다. 하지만 출발선에 서서, 동네 사람들과 무리 지어 달릴 동안 얻게 될, 호숫가 한 바퀴만큼의 공존에 대한 기대와 기쁨이 작년보다 더욱 커졌단 사실만을 감지하며 (나는 겨우 내 일상 하나의 당사자일 뿐, 그래서 뭐 어쩌라고, 겪어본 적 없는 일에 공감하고 타인을 위로한다 건방 떨지 말자, 네가 뭔데) 호흡이 길어진다.

    할머니 세 분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란히 달려 나간다. 그들의 곧고 탄탄한 벽과 같은 뒷모습이 내 앞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을 두 눈으로 하염없이 뒤좇으며,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날씨도 춥고 그냥 이제 편안하게 걸어갈까. 이렇게 익숙한 일에 시작부터 최대치의 끈기를 발휘해야만 하는 나를, 달리는 몸으로 직면할 때, 지금 필요한 건 오로지 빠른 속력뿐이다,라고만 생각하고 싶진 않다. 다만 오롯이 나 하나에다만 주의를 기울이는 스스로가 이토록 거슬려 어쩔 줄 모르는 순간에도, 집에서 발톱 깎고 나올걸 후회할 줄 아는 내가 계속해서 다른 생각으로 급작스레 나타나고 이어져, 결국 이 달리기 또한 그와 같이 멈출 수 없는 불편한 연결이  것이다.      

    결승선을 앞두고 무리해서 있는 대로 속력을 더 높여보았다. 5마일을 뛰는 내내 나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위아래 모두 까만 옷차림의 한 남자가 간발의 차로 나를 앞서고 있어서 말이다. 그런데 이 새끼가, 아니 그분께서 씩씩대는 호흡을 내 등 뒤로 내뿜으며 다시 추월하려 드는 게 아닌가. 달리기는 주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지만, 길 위에서 나와 비슷한 속도의 누군가를 발견하면 그 즉시, 너는 나야, 서로의 뒷모습을 건 승부가 곧 나와의 전쟁이 되고 마는 것이다. 나는 끝내 추월당했고 평생 그 시커먼 뒷모습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는데 그와 내가 각자 출발선을 넘은 시점이 달라 기록상으론 나의 승리. 세 할머니보다 느리고 스물여섯 그 청년보다 1초 빠른 마흔 아줌마란 오, 얼마나 값진 타이틀인가.

    자, 그럼 이만 안녕. 우리 내년에 또 같이 모여 달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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