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보스턴, 시카고, 런던, 베를린, 도쿄. 이 모든 도시에서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한 동네 아저씨를 안다. 나이를 쉽게 짐작해 볼 수 없는 얼굴과 몸으로 그는, 앗, 나보다 나이 많이 많으시구나, 할 수밖에 없는 얘길 가끔 한다. 내 눈에 그는 인도 사람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알고 보면 파키스탄이나 네팔 혹은 아직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나라 출신일지도 모른다. 토요일 이른 아침 동네 고등학교 주차장에 모여 달리기 전 그는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우리와 인증샷을 남긴다. 예전 같았으면 사진이 찍히는 찰나에 옷소매로 얼굴을 가리거나 고개를 옆으로 돌려 촬영을 거부했겠지만 이젠 누군가 소중하게 여기는 순간의 목격자로, 참여자로, 공동체로 존재하는 것에 나는 치아를 드러내며 감동한다.
자, 가자. 우리는 같은 시간에 달리기를 시작해서 점점 서로 간의 사이를 벌려나간다. 가본 적 없는 도시를 달리고, 살아본 적 없는 나이를 지나온 인증샷 아저씨의 다부진 등 뒤로 바짝 따라붙어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달리기란 내게 여전히 불가능한 속도. 하지만 내 앞으로 서서히 속력을 높여 빠르게 사라져 가는 그의 눈부신 형광 노랑 등짝을 아쉬워하면서도 기대하는 것이다, 꾸준한 달리기로 다다를 나의 나이 든 모습이요.
지난주 어느 해 질 녘, 중학생을 태권도장에 내려주고 지는 해와 경쟁하며 달리는 길, 형광빛으로 반짝이는 조끼가 밤길을 껐다켰다하며 내게로 뛰어 오는데, 오 , 하이! 이 찰나의 찰나의 찰나와 같은 마주침만으로도 날 완전히 알아보고 인사하는 인증샷 아저씨의 초능력이라니. 그날 저녁 스트라바 앱에서 우린 It was great running into you와 Next time, let’s do a high-five! 란 문장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 다시 만난 아저씨는 달리다가 소스라치게 악, 사진 찍는 거 잊어버렸어, 를 외침과 동시에 반바지 뒷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달리는 우리를 달리면서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