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저희 추수감사절에 또 와도 돼요? 하프 마라톤을 마치자마자 집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길이 아쉬워 쩔쩔매며 외친 문자. 그래, 와, 안 그래도 가족 없는 사람들끼리 같이 모이기로 했어. 이 대답으로 우리가 이룬 가정 말고 부모, 형제 모두가 가깝거나 멀거나 다른 나라에 사는 어른들의 가족 없음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자면, 역시 너무 오랜 세월, 앞으로도 오랫동안 어리광 부릴 데가 마땅치 않다는 결론만이 나를 더욱 미성숙하게 해. 우린 이번 추수감사절에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5K 달리기 대회에 참가하기로 한다.
추수 감사절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가는 비에서 굵은 비로 어느 순간 그 반대로 또다시 처음처럼 공중에 그어지는 빗금을 창가에 서서 바라보며 나가서 뛸까 말까를 고민하진 않는다. 아무리 비가 추적추적 내린대도 대회가 취소되지 않는다면 달린다, 는 게 우리의 굳은 결심이라기보다는 괜히서로에게 눈치가 좀 보인다는 편이, 아니, 사실은 각자의 아들과 함께 휴일 아침을 달리는 게 기꺼워 그런가. 아무튼 우리는 달리기에 미쳤네, 성취감에 중독되었네, 차를 타고 공원으로 떠난다.
물론 아직 어린 우리 아들은, 차에서 내릴 때가 되자 도대체 내가 왜 뛰겠다고 한 거야, 지난날 우리 물음에 무신경하게 오케이, 한 자신을 떠올리며 원망한다. 집에 빨리 가고 싶어? 그러면 더 빨리 뛰면 되겠네! 우린 소년을 놀린다. 그리고 이런 날씨에 뛰기를 포기한 사람 수가 적진 않을 테니 우리 다섯 전부 연령대별 기록 3위 안에는 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보는 찰나, 주차장을 벗어나 출발선으로 향하는 주자들의 모습이 눈부셔, 풀이 죽는다.
언니의 고등학생 아들은 모인 사람들 맨 앞에 서 있다 전속력으로 출발. 남은 우리는 그 중간쯤에 섞여 서서 출발선까지 슬슬 걷다 나름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 내리는 비는 도무지 그칠 줄을 모르고 우리가 달리는 내내 내리는데, 아니, 저 사람들 왜 저렇게 빨라.
우린 별 탈없이 결승선을 넘는다. 아빠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달린 소년은 뜻밖에도 9살 이하 남성 13명 중 1등을 차지해 달리기로 극성 피워 미안하던 우리 마음을 뻔뻔스러운 환호로 바꾸고. 우린 즉시 깨닫는다. 소년의 이 성취는 오늘 아니면 이루기 어려웠을 거란 사실을. 추수 감사절 다음날의 소년은 열 살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