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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혜이 May 02. 2024

누구세요, 달리기

    동네 런크루 스트라바 앱에, 토요일 아침 7시, 고등학교 주차장에서 만나 같이 달리자는 글이 올라왔다. 여전히 읽자마자 선뜻 그러자고 대답할 수 없는 이른 시간이다. 이 날따라 남편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그에게 따로 메시지를 보내 두었다고 한다. 우린 내일 아침에 일어날 수 있으면 갈게. 이런 식으로 모든 가능성을 암시하는 대답을, 그리 친하지 않은 누군가로부터 내가 들었다고 가정한다면 나는 7시 10분까지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릴 것이다. 사실 우리 둘 중에 아침잠이 유독 깊은 사람은 나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아침을 울리는 알람소리에 단 한 번의 스누즈 없이 악착같이 일어나 옷만 겨우 갈아입는 수밖에.

    우리는 동네 고등학교 주차장에서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며 서로 반갑게 인사한다. 이리저리 몸을 꼬고 비트는 사람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가볍고 무해한 대화는 스트라바 앱에 글을 올린 이의 주도로 끊길 듯 말 듯 이어진다.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어쩌면 그의 자식들이 아직 어려 매번 이렇게 이른 시간에 달리기 약속을 정하게 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본다. 어느샌가 주말 아침 늦잠을 푹 즐기게 된 우리 집 애들과 그로 인해 우리가 누리게 된 피로하지 않은 몸과 쫓기지 않는 마음으로 흐른 세월을 충격적으로 실감하면서 말이다.

    쟤네들 왜 저렇게 빨라. 멀어져 가는 동네 주민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남편과 둘이 오붓하게 달릴 수밖에 없는 벅찬 상황이 계속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우리 등 뒤로 수상한 숨소리 하나가 따라붙은 걸 눈치챈다. 호기심에 뒤돌아보니 숱 많은 머리칼이 모조리 다 샌 할아버지가 뛰고 계신다. 이웃들은 우리 시야에서 벗어난 지 이미 오래. 주차장에서 그들이 우릴 너무 오래 기다릴까 봐 남편과 헤어져 달리기로 결심하고 그를, 너 먼저 가, 떠민다. 그러자 몇 발짝 뒤에 오던 할아버지가 남편이 사라진 내 옆자릴 지체 없이 채우는 게 아닌가. 우리 덕분에 생각 없이 달릴 수만 있어 좋았다고, 넌 얼마나 더 달릴 거니, 난 저기까지. 넌 나보다 한참이나 어려 보이는데, 젊은 건 좋은 거야, 달리면서 말씀하신다. 이 할아버지 말 안 하고 뛰면 더 빠를 텐데, 대단하시네, 란 생각 속에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다음 주에도 만나요, 그를 배웅한다. 그 할아버지 뭐야? 차 앞에서 남편이 묻는데, 아, 나를 기다리는 새로운 미래, 달리는 동네 백 살 오빠,라고 대답할까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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