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번째 편지, 솔직함에 대하여
결에게,
결아 안녕, 민경이야.
이번 주는 평일보다 주말 기상 시간이 더 빠를 정도로 부지런한 휴일을 보냈어. 오늘도 아침 일찍부터 서울 끄트머리에 갔다가 오후 3시를 넘겨 집으로 돌아왔어. 하루 종일 해가 가득 들었던 방이 더워서, 피아노 학원에 피신하듯 다녀왔고, 다시 집에 돌아와서는 낮잠을 한숨 푹 잤어. (일어난 시간이 오후 8시라 낮잠이라는 말은 안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제 써둔 편지 앞에 지금 이 문장들을 붙이고 있어. 급히 전해야 할 마음이 있어 미처 인사를 건네지도 못하고 쓴 편지거든. 내가 어떤 마음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이제부터 천천히 들여다 봐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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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투명한 유리구슬처럼 흠 없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틈이나 흠을 발견할 때마다 왜 이토록 당혹스럽고 흔들리는 걸까?
지난 몇 달 동안 아무런 저항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또 열린 누군가의 문 너머를 겁 없이 들여다보았어. ‘너무 재미있네, 나 이런 거 너무 좋아하네.’ 하면서도 한편으론 두려웠어.
집에서는 잠만 자고, 내내 밖에서 먹고, 놀고, 누군가를 만나는 일상을 보내다 보면 방 안에는 빨래와 자잘한 쓰레기들이 쌓이곤 하잖아, 공과금이 밀리기도 하고 이부자리도 뱀 허물처럼 엉망이 되어버리지. 마음도 비슷한 것 같아. 내도록 열어두고 비워두었던 마음의 공간에 바람이 들어 무언가를 상하게 하기도, 자라면 안 될 곳에 잡초 같은 것들이 자라기도 했어.
어떤 관계에 빠져들 때 내 우선순위는 아래와 같아.
1. 관계
2. 상대
3. 나
대충 보아도 건강한 모양새는 아니지. 관계를 가장 위에 두는 이유는 결국 그 관계가 주는 즐거움이 나를 행복하게 하기 때문이야. 그런데도 ‘나’를 세 번째 자리에 둔 건, 그 행복을 얻기 위해 나를 돌보는 일에 소홀해지기 때문이지.
사람들과 있을 때, 사람들과 나 사이에 피어나는 관계가 매력적이고 희귀하거나 아주 익숙할수록 나는 새로운 방식으로, 또는 습관처럼 나를 쉬이 버리곤 해. 요즘도 범람하는 관계 속에서 자주 그런 선택을 해. 내가 좋아서 그러는 거라 탓할 사람도, 상황도 없지.
그래서 오늘은 그런 나를 좀 돌봐보려고, 나와의 시간을 좀 가져보려고 매번 남들에게 하던 질문을 나에게 던져보기로 했어. 나랑 인터뷰를 해보기로 한 거야.
먼저 스무 개 남짓한 테마 중 네 가지를 골랐어. 당신, 자람, 감각, 난제 테마가 눈에 들어왔어. 그리고 각 테마 당 일곱 개의 질문들을 차례로 뽑아 흥미가 느껴지거나 지금 나에게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질문을 골라보았지. 그리고 그중에서 다시 한 가지를 골랐어. 내가 고른 질문은 바로 <‘나 살아있어’라는 감각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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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좋아하고, 또 곁에 있고 싶어 하지만 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나를 완전히 살아있는 상태로 두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아. ‘이 사람이 나랑 있는 걸 기뻐한다’, ‘이 사람은 나를 좋아한다’라는 확신이 드는 순간들에 나는 항상 중독되어 있었던 것 같아. 그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 치명적인 게 아니라면 내 어느 한 부분을 끄거나 지운 상태, 즉 죽인 상태로 사람들을 대해왔던 것 같아. 아주 친밀하고 편한 사람들 앞에서도 나는 종종 그러곤 해. 그게 가끔은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처음에는 상대를 탓하거나 나를 비난했어. 미움을 받더라도 솔직해야 하는 게 맞다며, 그 의미를 담아 비밀번호들을 설정하기도 했지. 매일 로그인할 때마다 입력하면 좀 바뀔까 싶어서. 그런데 결과적으로 말아야, 실패했어.
누군가에게 내 솔직한 마음을 매 순간 남김없이 보여주는 건 아마 내겐 어려운 일일 것 같아. 그 일은 아가미가 없는 나에게 난데없이 이제부터 수중 호흡을 하라는 말과 같다는 걸 이제는 알겠어. 대신 다른 방안을 찾아볼 수는 있겠지.
그건 바로 혼자 있는 순간을 소중히 하고 또 그 비중을 늘려가는 거야. 혼자 있을 때, 의도가 없는 자극들. 그러니까 바람이나 나무나 햇빛이나 달빛, 파도 같은 자극들을 어떤 존재의 개입도 없이 온전히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자유롭게 살아있다고 느껴.
파악할 의도가 없으니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고, 나의 반응도 자연에는 아무 의도 없이 전해질 테니 걱정할 것도 없고 말이야.
편지를 쓰는 지금도 서향인 내 방에는 한여름, 오후 다섯시의 햇빛이 들어와 내 얼굴에 내려앉고 있어. 지는 해의 볕이라 그리 강하지 않아서 그 빛을 똑바로 쳐다보기도 하고, 눈을 감아보기도, 또 얼굴을 찡그려 보기도 해. 의도 없는 빛에 대한 의도 없는 반응. 온전히 나로 살아 있는 기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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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재미있는 일들은 의도 있는 자극과 반응들 사이에서 주로 일어난다고 생각해. 누군가 건넨 조각들을 하나둘 맞춰보는 거, 주고받는 손길 사이에서 빛나는 무언가를 잡아버리기도 하는 거, 어쩌면 영원까지 지속될 찰나를 만나게 되는 것. 그 모든 것이 일어나는 장소이기에 나의 일부를 꺼두어야 하더라도 떠나고 싶지 않은 어떤 세계. 함께인 세계.
그 세계에서 나는 매번 실수하고 또 무례를 저지르고, 누군가에게 상처 주기도 할 거야. 반대로 어떤 말에 완전히 무너지기도 하고, 겪지 않았으면 더 좋을 일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지. 그럼에도 내가 이 세계에 머물고픈 이유는 그 모든 상황에서의 ‘나’를 만나고 싶기 때문이야. 나 혼자서는 찾을 수 없는 나의 조각들을 나는 만져보고 싶어.
그리고 그 조각들을 맞춰보며 내가 이곳에 가장 나다우면서도 자연스럽게 포개질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어. 산허리에 걸린 구름처럼, 강물에 내려앉는 석양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처럼, 모래사장으로 밀려오는 파도처럼. 내가 이곳의 일부이면서도 죽지 않는 호흡법을 끝내 알아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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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대답을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분명 질문을 받고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는 나를 조금 죽이더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면 돼.’라고 대답하고 싶었는데 내 솔직한 마음은 그게 아니었나 봐. 나는 매순간 살아있고 싶나 봐.
그 시작은 아마도 아까 말했듯, 혼자 있는 시간에서부터 일 거야. 온전히 살아있는 나를 잘 지켜보고, 나를 죽이던 순간에 조금씩 숨을 불어넣고 싶어.
그런 상상을 하면 서운해하는 누군가의 표정이, 단념하는 손짓이, 멸시하는 눈빛이 떠오르기도 해. 누군가를 실망시키는 것,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거, 미움받는 건 경우에 따라 내게 죽음보다 무겁기도 하거든.
실망할, 상처받을, 미움을 품을 누군가를 염려하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사실 그 무서움의 가장 깊은 곳에는 ‘누군가를 아프게 한 나를 혐오하는 마음’이 크게 자리 잡고 있어. 하지만 나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아무도 아프지 않게 하면서 살 수는 없겠지. 나를 완전히 죽이지 않는다면 말이야.
결국 내가 해야 하는 건 불완전한 나를 받아들이는 일일 것 같아.
그 자연스러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내 평생의 숙제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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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아, 이 편지를 쓰면서는 너를 잠깐 잊었던 것 같아.
하지만 지금은 너를 생각하며 이 편지의 끝에, 너에게 무슨 질문을 건네면 좋을지 생각하고 있어.
오늘 나는, 네가 가장 너답게 살아있는 순간에 대해 묻고 싶어.
너는 언제 가장 자연스럽게 살아있다고 느껴? 그 순간에 너의 마음은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