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일 월요일
연휴의 마지막 날, 비가 내렸다. 비가 내렸지만 산에 가고 싶어 졌다. 일반적으로는 비가 오면 산에 가지도, 밖에서 달리지도 않겠지만, 나에게는 최근에 산 방수 재킷과 방수 등산화가 있었다.
나름 따뜻하게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문만 열고 나가면 바깥이었는데, 생각보다 비가 많이 내렸다. 집에서 볼 때는 이슬비 정도인 줄 알았는데, 소리를 들으니 소나기 같았다.
처음엔 그냥 다시 집으로 갈까 망설였다. 아무리 방수 재킷이라고 해도, 등산 한 번 다녀온 새 옷을 비에 흠뻑 젖게 만드는 것도 꺼림칙했고, 하의는 방수가 아닌데 감기 걸리는 게 아닐까 걱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산에 오르니 생각보다 우중산행이 어렵진 않았다.
그러나 처음 비를 맞기 시작했을 때는 조금 추웠다. 공기도 차가웠지만, 레깅스가 발수 방풍이 되지 않아 다리가 바로 젖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추위를 물리치기 위해, 등산로 입구까지 뛰어갔다. 점점 몸에서 열이 났다. 아무리 고어텍스 재킷이 투습 기능이 있다고 해도, 지퍼를 열지 않으면 몸의 열이 배출되지 않으니 서서히 더워지기 시작했다. 벤틸레이션을 열고 싶었으나, 틈을 통해 들어올 빗물이 두려워, 등산로에 도착한 후에는 달리기를 멈췄다.
주말마다 걸었던 일상의 등산로가 이날만큼은 다르게 보였다. 비가 오니 등산객이 없어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고, 오직 빗소리만 들렸다. 신발에 진흙이 묻지 않게, 물에 젖은 돌을 밟아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돌은 비에 젖으면 미끄럽지만, 등산화가 비브람 아웃솔이라 접지력이 좋았다.
산길 산책이 마무리될 쯤에 정각사가 보였다. 비 내리는 정각사 풍경은 평소보다 더 운치 있었다. 그날 봤던 모든 풍경들이 다 아름다웠는데, 비에 젖을까 봐 스마트폰을 꺼내지 못해 사진을 한 장도 찍지 못한 게 아쉬웠다.
방수 재킷의 발수 기능 때문에, 빗방울이 재킷에 떨어지면 젖지 않고 또르르 굴러 떨어지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후드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마치 유리창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같았다. 빗소리를 들으며 산에 혼자만 있으니, 정말 오롯이 나 혼자만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신발은 방수인데, 하의와 양말이 방수가 아니라 다리와 발목이 젖으면서 체온이 내려가 30분 정도의 짧은 우중산행이었지만, 잊을 수 없는 독특한 경험이었다. 어머니는 세상이 험하니 다음부터는 절대 비 오는 날에 혼자 산에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고, 나도 만의 하나 불운을 피하고자 이번을 처음이자 마지막 우중산행으로 생각하지만, 그때의 기억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함께 할 일행만 있다면, 또다시 우중산행을 하고 싶다. 물론 그때는 방수가 되는 바지와 양말이 있어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