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서류를 이따위로 밖에 못 만들어?”
“저희가 며칠 밤새워 연구하고 만든 서류입니다. 물론 처음 하다 보니 실수가 있지만, 팀장님 말씀하신 대로 포맷도 맞추고, 도면도 잘 그려 넣었습니다.”
“무슨 소리야? 내가 말한 대로 하나도 되어 있지 않은데. 검토할 필요도 없으니 내일 아침까지 다시 해와.”
“어디를 어떻게 고치라고 말씀을 해주셔야 다시 수정해서 내일 가져올 것 같은데요. 그냥 두루뭉술하게 다 고치라고 하시면 어떻게 고쳐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보고 다 고쳐. 빨리 나가봐, 바빠 죽겠는데! 진짜!”
2010년 서울 00동 재정비촉진계획 변경(뉴타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시절이다. 인허가 도서 작성을 지자체 담당이 서둘러서 접수하라는 연락이 갑자기 왔다. 일주일 동안 나와 부하직원 1명이 야근과 밤샘 근무를 하면서 겨우 도서를 만들 수 있었다. 총 100페이지가 넘는 서류와 10장이 넘는 도면이 들어간 분량의 도서였다.
내용도 자세하게 써야 했지만, 서류 디자인도 눈에 잘 띌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 하지만 접수 전 사전 검토 협의를 위해 만났던 지자체 공무원 팀장에게 온갖 갑질을 당했다. 물론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도서를 엉망진창으로 만든 게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누가 봐도 충실한 도서를 만들었다고 자신할 수 있다. 조금 수정하고 바로 접수하면 끝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였다. 구청을 나오면서 쓴웃음이 나왔다. 내 속은 천불이 나는데, 그것을 겉으로 표현할 수 없었다. 철저하게 공무원(갑)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을의 입장이라 제약사항이 많았다. 아마 그때부터 누가 뭐라고 하면 그냥 가만히 참는 게 습관이 되었다. 내 자존심은 이미 무너진지 오래였다. 한 번쯤 부딪혀서 한 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그러다간 내 밥그릇을 뺏길 것 같아 두려웠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몇 번이나 소리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어떡하랴.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부하직원에게 내일 아침까지 다시 수정해야 할 것 같은데, 오늘 야근할 수 있겠냐고 먼저 물어본다. 그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진다.
작업이 다 끝난 줄 알고 여자친구와 저녁을 먹기로 약속했다고 먼저 이야기한다. 그래도 일이 먼저니 약속을 미루면 좀 안되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1초도 안되서 안된다고 대답한다. 라떼 이야기는 하기 싫지만, 나 같았으면 약속을 미루고 일처리부터 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1시간만 하고 가겠다는 부하직원에게 오히려 감사해야 했다. 공무원에게 치이고, 부하직원을 달래지도 못하는 내 신세가 처량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그 감정을 고스란히 타인에게 보여줄 수 없었다. 진짜 나를 만나는 순간은 그 시절 술을 마시면서 감정이 풀릴 때였다. 취할 때까지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마셨다. 눈 떠 보면 집인데 지난 밤에 일어났던 사건이나 사람들 간의 대화는 반 이상은 날라갔다. 내가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도 크다.
그 후로도 계속 술로 내 진짜 모습을 찾았다. 당연히 그런 모습을 좋아해 주는 사람보다 그 반대 성향의 사람도 더 많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나서 한동안 술을 멀리했다가 지금 다니는 회사로 이직하면서 예전보다 마시는 횟수가 늘었다. 술로 내 진짜 가면이 벗어지더라도 그 모습조차 감당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그러다가 위와 같은 일상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답답했다.
그러다가 글쓰기를 만났다. 글을 쓰면서 내가 생각한 의견을 그대로 썼다. 일상에서 일어났던 일을 바탕으로 거기서 느낀 감정도 솔직하게 기록했다. 지금까지 계속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순간 가면을 벗고 솔직한 나 자신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술집에 갔다가 많이 취했다. 글을 제법 많이 쓴 것 같은데, 여전히 진짜 나를 만나는 횟수는 많지 않았다. 나에게는 성찰과 수양의 도구이기도 한 글쓰기로 하루에 한 번 정도 진짜 내가 누구인지 다시 한번 살펴봐야겠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진짜 나를 마주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글쓰기를 시작하자.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오롯이 나를 만날 수 있는 도구가 바로 글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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