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제대 후 생활비라도 내 손으로 벌고 싶어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다. 그중 하나가 고깃집 서빙 일이다. 거기서 만난 한 선배는 오래 만난 연인이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만나기 시작했고, 25살이던 나보다 2살이 더 많았으니 10년 넘게 애인과 만나고 있던 셈이다. 서빙 일을 알려주면서 처음 나에 대한 반감도 있었지만, 자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면서 친해졌다.
어느 날 바쁜 점심시간이 끝났다. 잠시 휴식 시간이 생겨 테이블에 앉았다. 건너 테이블에 선배가 한숨 쉬는 모습이 보인다. 표정이 어두웠다.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했다. 선배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으세요? 표정이 너무 좋지 않아 보여서요.”
“아니, 여자친구를 만나는 게 좀 부담스러워. 오래 만나다 보니까 자꾸 결혼 이야기도 나오고, 나는 이제 취업 준비하면서 아직도 아르바이트하고 있어서 준비된 게 없는데 말야.”
“아, 여자친구가 자꾸 결혼 이야기해요? 참 대기업에서 3년째 일한다고 하셨죠?”
“맞아. 같은 고등학교 친구로 만났는데, 나 군대 간 사이 먼저 대학 졸업하고 자리 잡았거든. 나는 좀 더 준비하고 그 친구와 결혼하고 싶은데 말야.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이제 그 친구가 너무 편해졌는지 좋아하는 마음보다는 의무감으로 더 만나는 것 같아.”
의무감으로 만난다? 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생각이 많아졌다. 그 당시 나도 누군가를 만날 때 의무감으로 만나고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20대 중반의 나는 매일 밤 누군가를 만났다. 친구, 선배, 지인 등 가리지 않고 약속 잡고 술 마시면서 이야기 나누었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방편이었지만, 사람을 만나 서로 이야기하고 듣고 하는 자체가 좋았다.
그렇게 만나다 보면 그중 좀 더 편한 사람과 가까워진다. 자주 만나게 된다. 솔직한 이야기가 오고 가면서 관계가 깊어진다. 가까워질수록 그 사람의 단점도 눈에 들어오게 된다. 그래도 자신과 맞는 장점만 보고 계속 만남을 이어간다. 연인이나 친구 사이 등 어떤 관계도 상관없다. 관계가 가까워지면 만남도 잦아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 사람의 장점보다 단점이 많이 보이게 되면 의무감으로 만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의무감을 가지고 만나게 되면 다음과 같은 효과가 발생한다.
첫째, 감정적 단절이 생긴다. 의무 때문에 단절감을 느끼기 쉽다. 감정적으로 서로에 대한 투자가 부족해진다. 한쪽에서 일방적인 감정만 전달되다 보니 서로 대화나 상호 작용에 대해 피상적이거나 성실하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
둘째, 서로 간의 유대 관계와 열정이 부족해진다. 점점 만남의 횟수가 줄어든다. 상대방에 대한 열의가 부족하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된다. 편안함보다 어색함이나 긴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셋째, 관계의 끝을 생각하게 된다. 의무감으로 만난다는 것 자체를 상대가 알게 되면 이제 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느낀다. 이 사람과 더 만나야 할지 관계를 끝내야 할지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의무감으로 만난다고 생각이 들면 서로 각자의 시간을 갖자. 아마도 처음 만나 호감을 가지고, 관계가 깊어지면서 느꼈던 마음을 다시 찾아야 한다. 관계는 끊지 말고, 자신만의 일상을 열심히 영위하면서 가끔 연락하면서 유지하는 게 좋다. 어느 시점이 되면 또 그만한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기가 온다. 결국 남는 사람은 시간에 상관없이 자신의 인생에 계속 남게 된다.
혹시 계속 의무감으로 만나는 사람이 있다면 단호하게 만남의 횟수를 줄이고, 자신만의 일상에 집중하자. 관계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오래갈 수 있고, 열정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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