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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인연보다 깊은 인연이 그리운 나이

by 황상열

“자, 우리의 우정은 영원하다. 변치 말고 오래 만나자! 건배!”


술잔 부딪히며 건배하는 친구들 목소리가 우렁차다. 나의 20대 시절은 매일 밤 사람들과 술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고등학교 친구, 초등학교 동창, 대학교 동기나 선후배들, 모임 등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많은 사람을 사귀고 알고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자부심이었다. 내가 죽을 때까지 그들과 함께 잘 지내길 원했다. 그게 인생을 잘 살고 성공하는 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변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것들이 흔들렸다. 언젠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내 곁을 떠나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그렇다. 젊은 날엔 수많은 인연이 스쳐 갔고, 그 모든 만남이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와의 약속이 비어 있으면 허전했고, 휴대전화 연락처가 빼곡해야 안심이 되었다.


마흔 후반이 된 지금은 다르다. 어느새 나는 많은 인연보다 깊은 인연이 그리운 나이가 되었다.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으로 남기고 간 허망함, 쉽게 스쳐 가는 인연이 남긴 공허함을 반복해서 겪다 보니 이제는 내 마음이 닿는 누군가와 오랜 시간을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과 웃고 떠드는 것보다 마음이 통하는 단 몇 사람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더 값지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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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추억 속 얼굴들이 떠오른다. 수없이 함께 웃었던 사람들, 쉽게 약속을 잡고 밤새 이야기하던 친구들. 그때는 함께한 시간이 영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각자의 삶이 바빠지면서 연락이 뜸해지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애써 붙잡지 않았던 건, 붙잡을 힘이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흐르는 시간을 받아들이기로 해서였을까. 아마 둘 다 아니었을까?


지금 내 곁에는 손에 꼽을 만큼의 사람만 남았다. 그들은 자주 만나지 않아도 서로의 안부를 가끔 궁금해한다. 오랜만에 마주해도 어제 본 것처럼 편안하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면 세상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지고, 숨이 트이는 느낌이 든다.


많은 인연을 맺었던 날들은 그 나름대로 의미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 깊이 다가올 단 몇 사람, 나를 이해해주고 내가 아껴줄 수 있는 누군가만 있으면 된다. 혼자서도 괜찮다며 애써 내 마음을 다잡던 날들이 있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깊은 인연을 원하고 있었다.


깊은 인연이란 서로의 결점을 받아들이고, 함께 성장하며, 때로는 아무 말 없이 곁을 지켜주는 것이다. 화려한 말보다는 진심 어린 한마디가 더 소중한 그런 관계.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사람.

많은 인연 속에서 진짜를 찾기 위해 수없이 넘어지고 상처받아야 했지만, 그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이에서 깊은 인연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더 이상 많은 사람 속에서 지치고 싶지 않다. 내 마음을 알아줄 몇 사람, 그 소수의 사람만으로 충분하다.


이제 70대 후반이 된 장인어른도 얼마 전 같은 이야기를 했다. 나이가 들면 인간관계는 자의든 타의든 줄어드는 게 당연하다고. 어차피 죽으면 그 인연 다 쌓지도 못하는데, 남아있는 소수의 지인이나 가족에게 더 깊은 인연을 유지하라고.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나는 많은 인연을 정리했다. 이제는 많은 인연보다 깊은 인연이 그리운 이 나이, 나는 이제야 진짜 인연을 고르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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