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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호사 J Oct 26. 2020

1. 판사면 뭐해 마음도 몰라

성취는 했지만 마음을 몰라서 불행했던 나

내 어릴 적의 부정적 경험을 주제로 글을 쓰겠다고 작가신청을 하고 고맙게도 바로 작가승인(?)이 되었지만 막상 쓰려니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수십번째 내 상처에 관한 글을 쓰다 말다 하고 있다.

꼭 써야 할 거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시작했는데 오래 동안 억압되고 봉인된 내 상처가 아직은 조심스러운가보다.


그렇다면 일단 내 마음 가는 얘기부터 쓰지 뭐.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나 스스로 인정해 주고 받아줘야 한다.


그러고 보니 몇년 전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가기로 결심했을 때도 이런 마음이었다. 마음이 힘들 때 동네 심리상담소에서 상담을 받았는데 상담샘은 나에게 혼자 하는 여행을 권했다. 며칠 고민 끝에 가겠노라고 결심했었다.


사실 나는 오직 공부, 시험, 합격, 빨리가 강조되는 환경에서 부모님의 불안과 걱정을 고스란히 전가받으며 내 마음은 소외시킨 채 살아왔다. 고작해야 연애 정도가 내가 마음가는 데로 결정한 사안이었고, 인생의 다른 문제들에 있어 내 자신이 뭘 원하는지도 잘 몰랐다.


30대 초반까지도 그렇게 살았다. 겉으로는 농담도 잘 하고 활발하고 잘 웃고 행복한 듯 보였으나 사실 내가 뭘 원하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몰라서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다.


사실 나 뿐 아니라 한국사회의 아이들이 넘 안쓰러운 건,

"넌 뭘 하고 싶은데?" 란 질문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이 "넌 이래야지" "공부해야지" "학원가야지"라는 당위적인 조언을 주로 듣고 자라니, 어른이 되었다고 갑자기 자기 마음을 잘 알리 없다.


마음을 잘 알지 못하면 매 선택은 사회적 인정, 가족의 인정 등 타인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끌려가는 듯한 느낌으로 살게 되는데 그걸 많은 부모들이 여전히 모른다.


암튼 나의 경우, 어른이 되고 안정된 생활로 들어갈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모른다는 것이 나를 적시에 잘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 힘들게 다가왔다.


특히 뿌연 안개 속에서 운전을 하듯 두렵고 답답했던 마음증상(?)들이 꽤 있었다.


-20대때 영화관에서 살인의 추억을 보고 난 후 왜 그렇게 공포로 밤새 떨었는지,

-왜 판사가 되고도 행복하지 않은지,

-열심히 야근하고 어둑해진 밤 퇴근길에 혼자 운전을 하노라면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한여름에 반바지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는 남자를 보는 순간 남편은 시원하겠다 하는데 나는 왜 사고로 허벅지가 찢어져 피투성이가 되는 영상이 머리를 스치는지,

-스트레스가 많은 시기엔 왜 꼭 더러운 화장실을 헤매다 시체 같은 것을 보는 끔찍한 꿈을 꾸곤 하는지,

-판사일 때, 술취한 아저씨로부터 강간미수를 당한 중학생이 법정에서 증언한 모습을 본 날 밤, 내가 왜 그렇게 오열했는지,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른 날은 왜 그렇게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운지,

- 왜 유독 남편에게 화를 잘 내는지, 그리고 사실 그럴 마음도 없으면서 극단적인 이혼이라는 단어만 떠오르는지.


나는 이런 의문이 쌓이고 우울한 마음이 들때면 주말마다 서점에 가서 책을 읽었고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내면의 어린아이" 등 많은 책들을 만났다.


이 책들은 나의내면아이가 품은 상처를 돌아보는 데 정말 크게 도움이 되었다. 내면아이 관련 책은 보면서 너무 울어서 한장을 넘기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지만 이후 10년 이상이 걸린 길고 느린 치유의 길에서 첫발을 그 때 뗀 거 같다.


다만 책으로 이해한 지식은 시작은 될 수 있지만 한계가 뚜렷했다. 어떻게 해야 내 마음을 알 수 있고 상처를 온전히 치유한 느낌으로 홀가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여전히 잘 알지 못했다.


몇년 전 받은 상담도 비슷했다(일반화할 순 없다. 치유자, 상담자에 따라 완전히 다르다. 지금 받고 있는 상담으로 나는 확실히 가벼워졌다). 동네상담소의 상담샘은 친절했고 상담을 받고 나면 좀 후련한 마음이 되었지만 2~3일만 지나도 나는 그대로 회귀했다.


그때 상담샘은 내 직업을 듣더니 똑똑한 사람(?)은 다 극복 가능하다며 아무 문제 아니라고 했는데 아무 문제 아니라는 그 위로의 말이 이상하게 상처가 되었다. 또 내 말을 듣기보다 자기 얘기를 하며 자꾸 조언을 하려고 해서 더 이상 가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그분의 조언들 중 실천해 본 것은 혼자 여행가기였고 꽤 좋았다. 여행가기 전 내 이성은 또 수많은 걱정과 의문을 제기했지만 마음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혼자 가는 여행에 이미 너무 설레고 있었으니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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