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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현 Oct 12. 2017

세계수 이그드라실과 북유럽 산림

숲과 빛이 연출하는 비경의 땅에 가다

밤새 몸을 편히 누이지 못하고 들척였다. 깊이 잠들다 열차 출발시간에 대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 탓이다. 정해진 시간에 대한 내 강박이나 조바심이 그러하다. 새벽 4시 침대에서 빠져나와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에 자리한 한인민박집 '초원의 집'을 나섰다. 새벽 4시 20분 첫 전철을 타서 5시 전에 스톡홀름 중앙역에 도착했다. 새벽녘 스톡홀름 중앙역은 한산했다. 배낭족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사람이 붐비는 곳은 커피와 패스트리를 파는 카페였다. 초콜릿과 설탕으로 잰 빵과 커피를 사들고 테이블에 앉아 먹고 마셨다. 


민박집 부부가 차리는 아침식사를 거른 게 못내 아쉬웠다. 남편은 독일 파견 간호사의 아들로 스웨덴에서 자라 한국말이 서툴지만 요리 솜씨는 훌륭했다. 그는 한때 요리사가 되려고 요리를 체계적으로 공부한 적 있다. 덕분에 스톡홀름에서 사흘간 아침마다 한국 가정식을 먹는 호사를 누렸다. 특히 전날부터 재료를 손질해 아침에 끓인 짬뽕의 맛은 기가 막혔다. 그러나 어쩌랴. 5시 40분 노르웨이 오슬로행 열차를 타야 하니.   

스웨덴 스톡홀름 트로트닝홀름 궁정 안에 자리한 숲과 호수

열차 좌석에 앉자마자 졸음이 쏟아졌다. 잠을 설친 데다 음식까지 들어갔으니 졸릴만했다. 곤히 자다가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 햇살에 깼다. 창밖 너머 비경이 펼쳐졌다. 잠결에 부신 눈을 비비고 얼핏 본 풍경만으로 아침 단잠은 사라졌다. 


기차는 빠르게 나아가고 열차 궤도 따라 이어지는 숲은 깊었고 들은 넓었다. 수목은 무성했고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은 눈부셨다. 나무들과 들판은 안개에 젖어 물이 올라 있었다. 가을걷이를 끝낸 밭은 누런 색으로 깔끔하고 가지런했다. 지난 8월 다녀온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가 떠올랐다. 비에이는 밀과 꽃과 풀을 미리 세운 계획에 맞춰 파종해 인위적으로 꾸몄다면 북유럽 들판은 삶의 공간 속에서 분방하게 자란 시골 소녀처럼 단장했다.   

스웨덴과 노르웨이 사이로 스칸디나비아 산맥이 가로지른다. 산맥을 경계로 스웨덴이 동쪽, 노르웨이가 서쪽에 있다. 덴마크는 발트해를 경계로 스칸디나비아 반도 남쪽에 자리한다. 스톡홀름에서 기차를 타고 5시간 30분가량 서쪽으로 가면 오슬로가 나온다. 가는 길에는 입이 넓은 활엽수 군락지보다 입이 뾰족한 침엽수림이 훨씬 많이 눈에 띈다. 자연 군락지는 침엽수림이 대부분이었다. 기온이 낮다 보니 침엽수가 활엽수와 벌이는 서식 경쟁에서 유리할 게다. 침엽수들은 삼각자를 땅에 대고 직각으로 그은 선처럼 위로 뻗고 가까이 붙어 밀집대형을 이뤘다. 다른 종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분명했다.


숲에서 나와 개활지에 이르면 낙엽활엽수들이 여기저기 나타난다. 집이나 밭 주변에는 낙엽활엽수가 어김없이 한두 그루 서있다. 마을 주민들이 부러 심었으리라. 아니면 밭을 조성할 때 침엽수는 베더라도 활엽수는 뒀을 게다. 낙엽활엽수는 마을 안팎에서 소규모 군락을 이루거나 집 근처나 밭 주변에 덩그러니 자란다.

북유럽인들은 침엽수보다 낙엽활엽수를 좋아하는 듯하다. 스톡홀름, 오슬로, 코펜하겐 등 북유럽 국가 도심 공원은 낙엽활엽수 천지다. 느릅나무, 참나무, 너도밤나무 등 낙엽수가 곳곳에 심어져 있다. 도심 공원이나 왕궁 숲에는 인공적으로 조성한 활엽수림이 황홀경을 이룬다. 두툼하면서 길게 쭉 뻗은 낙엽수들이 양쪽으로 줄 맞춰 선 길을 걷다 보면 그 아름다움에 넋을 놓는다. 시민들이 끌고 나온 개들이 여기저기 출몰하는 탓에 금방 제정신으로 돌아오지만.


스톡홀름에서 머무는 마지막 날 오후 외스테르말름 내 흄레공원에 갔다. 외스테르말름은 서울 명동에 해당하는 스톡홀름 최고 번화가다. 흄레공원은 그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다. 공원에는 낙엽활엽수와 침엽수가 섞여 장관을 이룬다. 나무들은 늘씬하게 뻗어 올라갔고 잔디가 여러해살이풀과 섞여 바닥에 깔렸다. 스톡홀름에서 가장 비싼 땅에 이리 멋진 숲이라니. 공원 안에 국립도서관이 있었다. 들어가 자리에 앉아 <총, 균, 쇠>를 폈다. 어김없이 졸았다. 북유럽 최고 시설이라 자랑하는 도서관에서 1시간가량 숙면을 취하고 나왔다.


시 외곽에 있는 드로트닝홀름 궁전의 숲은 비경을 간직하고 있었다. 드로트닝홀름 궁전에는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칼 16세와 실비아 공주가 살고 있다. 궁정 정원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그것과 너무 비슷해 실망했다. 두 정원을 같은 정원사가 설계했으니 그럴만하다. 나뭇가지를 다듬고 손질해 네모나 세모 모양으로 만든 뒤 줄지어 세운 나무들을 보면 우리에 갇혀 길들여진 야생동물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오슬로에서 뮈르달로 가는 길 옆 낙엽활엽수림

실망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인공 정원에서 벗어나자 제멋대로 군락을 이룬 낙엽활엽수들이 여행객을 맞았다. 넓게 펼쳐진 잔디밭 위에 푸르고 노랗고 붉은 잎으로 치장한 납엽수들이 빼곡히 서 있었다. 햇살이 구름을 뚫고 나와 숲이 구름 그림자에서 벗어나면 나뭇잎들은 자기 색깔의 빛을 내뿜는다. 햇살을 받지 못한 잎들이 여전히 어둡고 짙은 색을 띠어 햇살이 닿는 나무들이 훨씬 환해 보였다. 그 밑에 깔린 잔디와 여러해살이 풀들은 물기를 잔뜩 머금어 햇살을 튕겨냈다. 나무 내음은 찬 바람에 섞여 숲을 가득 채웠다. 3시간가량 숲에서 나오지 못하고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건너 다녔다.


하늘이 열리고 햇살이 숲 전체에 내리자 숲은 빛과 나무들이 만드는 잔치로 들떴다. 넓디넓은 잔디밭 위에 덩그러니 자리한 호수 옆 작은 벤치에 앉았다. 벤치 앞 쪽으로 산책 나온 아버지와 아들이 지나갔다. 아버지가 말없이 앞서 걷고 아들은 두세발 뒤에서 쫓아왔다. 앞선 아버지가 뒤를 돌아보며 아들을 챙기고 뒤처젼 아들이 아버지 등만 보고 따르는 모습에서 부자간에 흐르는 존경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리 살가워 보이지는 않았다. 부자 사이는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그러하나 보다. 


물가에서 노닐던 오리 가족들이 벤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덩치가 제법 큰 어미 오리를 따라 새끼들이 줄지어 내 주위를 돌았다. 햇살에 눈부셔 선글라스를 쓰자 활엽수림 너머로 옅은 황토색 드로트닝홀름 궁전이 멀리 보였다. 햇살이 선사한 나른함에 취할 즈음 느닷없이 비가 들이치고 찬 바람이 불었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게 스톡홀름 날씨다.


노르웨이 숲은 스웨덴 숲과 다르다. 스웨덴 숲이 서사적이고 목가적이라면 노르웨이는 서정적이면서도 신비롭다. 오슬로 도심 서쪽에 치우친 뵈그되이 섬에서 본 낙엽활엽수림은 극치의 아름다움을 뽐냈다. 오슬로 시청 앞에서 버스나 페리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거리를 걸었다. 한 시간 남짓 주택가를 가로지르고 차로를 따라 걷자 도심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울창한 숲 속에서 목장, 고급 주택가, 페리 정착장, 박물관 등이 군데군데 자리했다. 뵈그되이 섬도 침엽수보다 낙엽활엽수가 훨씬 많았다. 이제 갓 물들기 시작한 단풍에 이끌려 섬 가운데로 빨려 들어갔다. 


뵈그되이 섬 동쪽 끝에 이르자 오슬로 앞바다 넘어 토르 항구가 보였다. 관광객들을 태운 페리가 토르 항구를 떠나 오슬로 피오르 곳곳을 돌다 뵈그되이 섬으로 다가왔다. 섬 동쪽 해안을 따라 세워진 박물관들과 민속촌에는 바이킹족 고유의 전통가옥과 유물들이 가득했다. 바이킹 족이 오딘과 토르를 믿고 있던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 많다. 기독교 신앙의 베일에 가려지지 않은 바이킹 족의 속살을 볼 수 있어 좋았다. 특히 바이킹호 박물관은 900년 전후 땅 속에 묻혔던 바이킹 배들을 발굴∙재조립해 전시하고 있었다. 최고 신 오딘과 뱃사람의 신 뇨도르에게 무사항해를 빌며 토르의 망치와 발키리 여신의 방패를 들고 전함에 승선해 북해와 발트해를 오가는 바이킹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뵈그되이 섬 숲속 길

오슬로에서 뮈르달로 가는 열차 안에서 본 노르웨이 숲은 신비로웠다. 창 너머로 끝도 없이 펼쳐진 숲에는 침엽수 못지않게 낙엽활엽수가 많이 서식했다. 숲 사이로 흐르는 강은 짙푸르렀다. 가끔씩 나오는 호숫가 주위에 침엽수와 낙엽활엽수 군락이 안개랑 섞였다. 마을 근처에 오면 초록색 밀밭이 펼쳐졌다. 강은 숲을 고스란히 반사해 수면을 기준선 삼아 데칼코마니를 연출했다. 


안개는 강 위를 낮게 흐르다 숲을 감싸 울긋불긋한 숲의 풍경화를 흰색 물감을 풀어 덧칠한 느낌을 줬다. 가끔씩 마을 샛길 옆에 갈색이나 검은색 지붕을 덧댄 가옥이 옹기종기 모여 나타났다. 초지에는 양들이 풀을 뜯었다. 추수를 끝낸 밀밭 뒤로 강물이 짙게 흐르고 그 너머 숲은 난하지 않은 색으로 치장하고 누웠다.


노르웨이 숲은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창작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나 보다. 비틀스는 노르웨이 숲을 노래했고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노르웨이 숲>을 썼다. 하루키는 얼마 전 출판한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의 주인공도 ‘절규(Scream)’으로 유명한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를 떠오르게 한다. 소설 주인공 ‘나’는 한 살 터울 여동생의 죽음을 평생의 상처로 안고 사는 화가다. 뭉크도 한 살 터울 여동생을 어렸을 때 잃고 죽음을 평생의 소재로 삼았다. 뭉크의 기념비적 작품이 투병 중인 여동생을 그린 병상의 소녀다.

덴마크 코페하겐 내 로센보르 공원

북유럽인에게 나무는 각별하다. 신화 속에서 나무는 세상의 중심이고 생명의 근원이다. 앵글로색슨 족이 신화 <엑스칼리버>에서 아더왕이 뽑을 칼을 돌에 꽂았다면 북유럽 영웅 지그문트가 뽑는 칼은 나무에 꽂는 식이다. 지그문트는 뵐룽 집안 궁정 한가운데서 자라는 바른스토라는 나무에 오딘이 꽂은 칼을 뽑아 신이 선택한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그 탓에 죽임을 당했지만.  


북유럽인들은 우주 규모의 어마어마하게 큰 물푸레나무가 세계를 지탱하고 연결하고 있다고 믿었다. 세계수 이그드라실은 하늘을 뚫고 솟고 땅 속에 뿌리를 뻗어 자라며 9개 세상을 묶는다. 가지는 신들의 세계 아스가르드를 뒤덮고 세 줄기 뿌리는 반인반귀의 신 헬이 통치하는 지옥과 얼음에 덮인 거인의 땅과 신들의 땅 아스가드르에 닿는다.


오딘과 그 형제들은 강 위에 떠내려 오는 물푸레나무와 느릅나무 통나무로 최초의 남녀 아스크와 엠블라를 만들었다. 오딘이 통나무에 숨을 불어넣고 회니르가 영혼을, 로두르가 피를 주었다. <산문 에다(Prose Edda)> 길파이 편에서 스노리 스툴루손은 “첫째(오딘)는 그들에게 숨과 생명을, 둘째(회니르)는 지성과 움직임을, 셋째( 로두르)는 얼굴과 듣고 말하고 볼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름과 옷도 선사했다”라고 적었다.

북유럽신화 속 세상의 상상도 한가운데에는 세계수 이그드라실에 자리한다

캐롤린 라링턴는 저서 노르세 신화(The Norse Myths)에서 북유럽 전통 구전가요와 시를 인용해 노르만족에게 나무가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한다. 북유럽 음유시인들은 사람을 ‘무기의 나무(tree of weapons)’나 ‘전투의 나무(tree of battle)’라고 표현한다. 오딘이 거느리는 발키리 여신 시그드라파는 북유럽 최고의 영웅 시구르드(지크프리트)를 ‘전투의 사과나무(apple tree of battle)’라 칭했다. 신화 속 젊은 왕자 헬기는 ‘호화롭게 피어난 느릅나무(splendidly-born elm)’라 불렸다.


북유럽 신화에서 음유시인들은 여성을 ‘황금 기둥’이나 ‘황금 자작나무’, ‘포도주 오크나무’ 등에 비유한다. 시구드르 부인 구드룬은 남편이 살해되자 자기를 나무에 비유하며 다음과 같이 읊었다. “난 숲 속에서 있는 한그루 사시나무처럼 홀로 서있다. 피붙이들은 전나무 가지처럼 떨어져 나갔다. 나는 어느 따뜻한 날 나타난 침입자에게 무성한 잎을 빼앗기는 나무처럼 행복을 빼앗겼다.”


북유럽인들은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며 장수하고 질병, 화재, 벌목으로 최후를 맞는 나무의 삶이 인간과 닮았다고 보고 삶을 나무에 비유하곤 한다. 또 아름답고 근엄하고 강인하며 참고 버티는 나무에게서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북유럽인 신화에서 나무의 최후는 세상의 끝이다. 최후의 전쟁 라그나로크에서 불지옥의 거인 스루트가 던진 횃불에 이그드라실이 불길에 휩싸여 바닷속에 잠기면서 세계는 멸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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