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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Apr 06. 2021

시작, 나의 고백

나는 상담을 받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 된걸까."


정신없이 달리다가 불현듯 아주 깊은 수렁으로 빨려들어가는것 처럼 느껴질때가 있다.

아마도 이 이야기는 2년전 가을로 거슬러 돌아간다. 2019년, 한여름의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처럼 나의 모든 열정을 쏟았던 날들과, 지독히도 추운 겨울처럼 영혼의 결핍을 동시에 존재했던 해.


하나의 육체임을 잊고 지내던 날들 끝에 나를 반기는것은 '번아웃 증후군' 이었다. 일 욕심이 많던 내가 자주 겪는 번아웃이었지만, 이번에는 그 강도가 지금껏 느껴왔던 것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언제나 그렇듯 몸은 마음을 따라가고, 마음은 몸을 따라간다. 눈에 띄는 이상 징후들의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면 장애, 무기력, 대인 기피, 불안감, 체력 저하, 알 수 없는 신체 통증, 제어하기 힘든 충동성 등 일상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급격한 변화가 찾아왔다.  


평소에 잠이 없던 나는 불면증 늘상 달고 살았지만 이미 그런 패턴에 익숙해질때로 익숙해진 나에게 불면증따위는 더이상 고민의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가 나에겐 더 큰 문제였다. 갑자기 미친듯이 잠이 쏟아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싶지 않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아무렇지 않던 일들이 귀찮게 느껴지면서 매일이 무기력으로 가득했다. 가장 하고싶은 것은 그저 침대에 누워 잠을 자는 일이었다. 애써 몸을 움직여보려해도 아주 잠깐일뿐, 잠에 들어있는 시간 외에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고, 의무감에 해내야 하는 일들만 겨우 해냈다. 희망보단 절망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날들이 이어졌고, 매일밤 나는 어둠과 싸웠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느껴지는 어깨와 허리 통증에 움직임이 더뎌졌으며, 세상에 홀로있는 듯한 외로움에 허덕였다. 이런 외로움은 또다른 악순환을 낳았다. 그 와중에 실패한 몇번의 짧은 연애, 외로움과 공허, 그리고 결핍을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 사람을 만났다. 마음이 온전치 않은 상태에서의 사랑이 해피엔딩 일 수 없듯이 이런 관계들은 되려 나를 옥죄었다. 어쩌면 예정되어있던 결말이었을지도 모른다.


단순한 번아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쉬면 괜찮아지겠지' 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하루 이틀, 1주, 2주 어느덧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고나서야  깨달았다. 


매번 하고 싶은게 많았던 나에게 하고싶은 일이 없어졌다는 것은 삶의 의미를 잃는 것과도 같았다. 그 상실은 그 어떤 상실감보다 크게 다가왔다. 지금까지 느껴왔던 일시적인 우울한 감정과는 차원이 다른 상태였다. 어떤 의지나 의욕없이 흘러가는대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갑자기 눈물을 흘렸고, 두시간 이고 세시간이고 멈추지 않는 눈물을 쏟아냈다. 두통에 시달렸다.  그렇게 한 달. 나의 생각과 의지대로 일상을 컨트롤 할 수 없는 수준을 넘어산 상태임을 느낀 순간, 나는 아차 싶었다. 


몇 번에 걸쳐 다양한 검사를 받고 나에게 내려진 결과는, 생각했던것보다 더 심각하다는 거였다.  우울증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 앓는다는 그 마음의 병에 꽤나 크게 찾아온 것이다.  


견고하고 강하던 모습 뒤에 감추어두었던 연약함. 엄청난 죄책감이 밀려왔다.  남들에게 좋은 일을 한다는 사람이, 누군가의 꿈을 찾아 도와준다는 사람이, 인문학이니 글쓰기니 하는 것들을 가르친다는 사람이, 스스로에게 솔직해져야한다고 그렇게나 열심히 말하던 사람이. 정작 스스로는 아무렇지 않은척 괜찮은 얼굴을 하고 있는척, 뭐라도 되는척 지내면서 생을 버텨왔다. 뒤에서는 남들 모르게 우울과 싸우며 겨우겨우 생을 버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죄책감은 날이 갈수록 무겁게 짖눌렀다. 나는 나의 우울을 사랑했지만, 때때로 아주 강하게 잡아먹히곤했다.


실상은 전혀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꽁꽁 숨겨야 했던 현실이 고통스러웠다. 누가 숨기라고 한것은 아니었지만 스스로의 연약함을 죽도록 인정하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무던히도 애썼다.  순간 순간 찾아오는 위험한 생각에 사로잡히는 기분이 얼마나 두려운지. 사실 그것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이러한 모든 일상에 무뎌지고 있는 자신이었다. 더이상 무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의지 자체가 사라졌다. 매일 죽음을 생각하던 날들 가운데 무서운 생각에 사로잡혀 생의 끝을 마주보고서야 삶에 대한 간절함이 생겨났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가는 그 네모반듯한 공간만이 나의 발거벗은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느끼게 해주던 유일한 숨통이었다.


이제야 이제야 고백하는 아주 부끄러운 사실, 

여전히 두려움으로 똘똘뭉친 고백. 

나의 나약함을 고백하는 연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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