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알리기라도 하듯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 단추를 여미고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거리가 아팠다. 바람에 얼룩진 마음의 구멍은 옷을 아무리 여미어도 추웠다.
주말의 아침은 왜 이렇게도 빨리 오는지, 그날은 유난히 눈을 뜨기 힘든 아침이었다. 샤워를 하고 쓰러지듯 다시 침대로 향했다. 이 생이 너무나도 벅차고 힘에 겨워 무언가의 온기라도 있어야 할 것 같아 머리 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몸을 한껏 웅크렸다. 오늘은 더 춥기를 바랐다. 그래야 춥다는 핑계로나마 마음을 더 단단히 할 수 있었으니까.
카페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 창문을 바라봤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너무 따뜻해서 이질적이기까지 했다. 눈부신 햇살에 말라비틀어져 그렇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림자들이 위태롭게 바람에 휘청였다.
톡. 톡 어깨를 두 번 두드리는 누군가의 손길에 스위치가 눌러지듯 그녀는 기계적으로 말했다.
“오늘은 날씨가 참 좋네요..”
영혼 없는 목소리는 담백하기 그지없었고, 더 이상 걸러 낼 감정 따위는 남아있지 않는 듯했다.
“기분이 좋은 건 아니고?”
“기분은...... 날씨 같지 않아요...”
그녀는 문득 던져진 물음에 왈칵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파도 가치 있는 사랑이라 믿었던 시간은 압축되다 못해 곪고 곪아 마음을 찔렀다. 그녀의 온기 없이 퍽퍽한 가슴에 그렇게도 갑자기 외로움의 가면을 쓴 괴로움이 밀려왔다.
지금 당장이라도 ‘보고싶어’라는 그 말 한마디면 주저앉아버릴 것만 같았다. 이미, 너에게 달려가고 있는 나를 한참 뒤에야 알아차릴 것만 같았다.
오늘은 다행히... 기억에 기억을 덮어, 바람으로 날려 보낼 수 있는 유일한 계절, 가을이었다.
“애쓰지 않아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