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셰이프 시프터다
영화나 책에서 줄곧 등장하는 존재가 있다. 마음대로 모습을 바꾸는 존재들.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해서 매혹하기도 하고, 무시무시한 괴물로 변해 위협하기도 한다. 일명 셰이프 시프터라고 부르는 존재.
불안도 그렇다. 불안은 우리가 상상하는 대로 모습을 바꾸는 셰이프 시프터다.
상상해 본다. 어둡고 깊은 동굴에 들어왔다. 파란 이끼 냄새가 난다. 젖은 땅 위에 자라 덜 마른빨래처럼 축축한 냄새가 난다. 이렇게 깊이 들어올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깊이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혼자라 더 무섭다. 갈래 길이 많지 않아서, 금세 길을 찾아서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멀리서 심장을 긁는 것 같은 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서워서 허겁지겁 헤매다 보니,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기괴한 울음소리가 가까워진다. 울음소리와 다르게 둔중한 발자국 소리도 들린다. 크고, 흉측한 모습을 한 괴물일 것이다. 걸리면 죽을 것이다. 잡아 먹힐 것이다. 도망만이 답이다. 이 굴이 어디까지 계속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살기 위해서 일단 도망 다녀야 한다. 맞닥뜨리는 순간, 죽는다. 죽지 않기 위해 도망 다녀야 한다. 괴물의 이름은 불안이다.
상상해 본다. 링 위에 올라서 싸운다. 상대의 이름은 불안이다. 쉽지 않은 상대다. 많이 맞았다. 눈이 부었다. 포기하지 않는다. 상대의 주먹을 피하고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턱에 꽂았다. 불안이 비명을 지른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레프트 훅으로 안면을 강타했다. 그대로 고꾸라졌다. 링 바닥에 무너졌다. 다운이다. 카운트를 센다. 땡땡땡. 공이 울리고 승리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바로 다음 라운드를 시작한다. 불안은 처음과 같은 분노에 찬 표정으로 거기 서 있다. 언제 맞았냐는 듯, 팔팔하다. 나의 상처는 그대로다. 눈이 부었고, 입술이 터졌다. 또 쓰러뜨리고, 눕혀도 다음 라운드에 멀쩡하게 선다. 왜냐하면 내가 서 있기 때문이다. 내가 완전히 주저앉거나 죽을 때까지, 불안은 쌩쌩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다.
상상하는 대로 모습을 바꿨다. 어쩔 때는 상대할 수 없는 거대한 괴물 같다가, 또 어쩔 때는 만만한 파이터처럼 보이기도 했다가, 도망 다니거나 혹은 싸우며 보냈다. 인생 전체가 늘 불안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슬픔의 강도 기쁨의 꽃밭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불안의 숲에 있었다.
나만 그렇지는 않았다. 호흡을 가다듬고,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그랬다. 아침 지하철 출근하는 사람들도,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도, 도서관에 앉아 공부하거나 책을 읽는 사람들도 불안의 숲에서 도망 다니거나, 싸우거나 그리고 있었다. 다들 불안의 숲에서 그렇게 살고 있었다.
지금까지, 연구해 본 결과 불안은 없앨 수 없다.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싸움의 대상도 아니다. 싸운다고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요새 드는 생각은 불안이 셰이프 시프터라면, 상상하는 대로 바뀌는 녀석이라면, 차라리 귀엽고 말랑말랑한 녀석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어차피 없애지 못할 거라면, 무해한 존재로 뿅 하고 만들어 버리면 어떨까.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왜 그럴까 이해하자고 생각한다. 그래, 이 녀석은 괴물도 아니고, 싸움꾼도 아니다. 볼을 쭈욱 당겨본다. 인절미처럼 쭈욱 늘어난다. 늘어나는 볼때기가 너무 귀엽다. 화난 표정으로 쳐다봐도, 덜 자란 이로 손가락을 물어도 그저 귀엽다. 귀엽다고 생각하니까, 이 아이가 옆에 있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머리가 좋은 어린 아이다. 머리가 너무 좋아서 내가 모르는 것도 알고 있는 것이다. 아이 입장에서는 걱정되는 거다. 답답한 거다. 자기가 생각했을 땐, 위험하고, 위협적인 것들이 있으니까, 얼른 해결했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못하는 걸 보니, 화가 나는 거다. 떼를 쓰고, 울고, 물어대는 거다. 불안이 없다면, 우리는 위기에 빠르게 대처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불안은 나쁜 아이가 아니다.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아이다.
다만, 아이가 화가 나고 떼를 쓴다고 바로 해결해 줄 수 없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가만히 바라봐주고, 토닥여 주는 것뿐. 불안이란 아이는 한참 울다, 잠이 들었다. 새근새근 작은 숨소리가 들린다. 조용하고 감사한 평화가 찾아온다. 이 아이와 싸울 이유는 없다. 이 아이를 피해 다닐 이유도, 죽이거나 없앨 필요도 없다.
그저 가만히 잠이 들 때까지 지켜봐 주는 것도 방법이다.
물론, 불안은 갑자기 다른 형태와 목소리로 나타날지 모른다. 나도 모르게 나쁜 상상을 하고, 불안은 그 상상을 먹고, 감당할 수 없는 어떤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
늘 아이처럼 대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살아있는 한 애써 본다. 불안의 숲에 탈출구는 없을지도 모른다. 평생을 길을 찾아 헤매는 대신, 이 안에서 어떻게 살지 생각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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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숲에 사는 동지들이여, 그대들의 불안은 오늘 어떤 모습인가요?
피할 건가요? 도망갈 건가요? 아니면, 어떻게든 같이 살아 볼 텐가요.
같이 고민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