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sorry, sir?
다시 말해주세요.
둘째 녀석이 고2 겨울에 대학교에서 여는 여름 방학 캠프에 초대되었다. 다른 주에 있는 학교이고 8주를 기숙사에서 보내야 하는 조건이었다. 장학금 혜택을 받는다는 보장은 없고 그야말로 어마 무시한 목돈이 불쑥 필요해졌다. 나는 황급히 <알바> 자리를 찾아보았는데 한국 빵집에서 마침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는 황급히 찾아갔다.
여사장님은 사람 구하는 일이 급했던지, "인상이 참 좋아요. 다음 주부터 나오실 수 있어요?" 했다. 나는 묻고 싶은 말을 꿀꺽 삼키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마치고 얼떨떨해진 채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난 한국 빵집에 빵 사러 잘 안 갔다. 가격이 비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급한 건 캐시어 자리가 처음이라는 거였다. 매장에서 손님들을 만나 응대한다는 게 무엇인지 모른 채 첫 출근을 하게 된 것이다.
여사장님은 그야말로 산전수전 거기에 공중전까지 치러낸 노련함이 몸에서 풍겼다. 난 평소에는 아이들에게 목소리가 크다, 엄마가 화난 것 같다, 핀잔을 먹곤 했는데, 매장 POS 기계 앞으로 오고 가는 손님들에게 건네는 <인사>가 너무 작다고 이번엔 여사장님이 내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조앤 씨, 안 들려요. 더 크게 말해야 돼요." "아, 그래요? 아, 그렇구나."
한국 빵집은 한인 마트 안에 있었다. 손님들은 중국 사람, 베트남 사람, 인도 사람들이 한국 손님들보다 많았다. 생크림 케이크는 미국 마트에서 파는 버터케이크보다 달지 않고 부드러워 가격이 비쌌지만 인기가 좋았다. 특히 베트남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왜 그럴까 정말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다. 별 중요한 일은 아니었지만 정말 궁금했다.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 지배 영향 때문이라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한국 빵집은 프랑스식 제과점이니 그들에게 친숙할 것이고 거기에 한국의 문화도 좋아하니 다른 어떤 지역보다 인기가 많은 것이라고. 빵은 한국 사람이나 베트남 사람에게는 주식이 아니니까. 디저트는 문화를 타고 강물처럼 낮은 곳으로 흘러내려가지 않던가.
나는 염려했던 것보다 빵집에서 일하는 것에 빨리 적응했다. 아침에 신선한 빵을 만드는 과정도 볼 수 있고 한국 빵집은 프랜차이즈 가맹점이니 L.A. 본사에서 정기적으로 신상 출시에 맞추어 본사 직원들이 출장을 나와 교육을 할 때 내가 참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여사장님의 지적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의 의욕이 더해져 출근하는 차 안에서 큰소리로 인사하는 것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거울 앞에서 굳은 얼굴을 펴기 위해 '위-이 스키이, 위이- 스키이, 김치-이'를 뱉어내며 미소를 만드는 연습까지 더해졌다. 여사장님이 시켰다면 손사래를 쳤을 텐데 자발적인 '노력'을 했는데 놀라운 것은 나의 기분이 먼저 좋아졌다. 톤이 낮은 나의 목소리를 한 톤 높이고, '위스키'를 입술로 그리면 즐거운 마음과 밝은 얼굴로 바뀌었다. 신기했다. 이전의 내가 아니라 새로운 나를 차 안에서 갈아입고 신나게 빵집으로 출근을 했다.
여사장님은 영업의 여왕이었지만 빈틈이 많았다. 일을 벌이는 영업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말이 꼭 맞았다. 난 그<영업>이 잘 안 되는 사람임을 그때 분명히 알았다. 특히 <임기응변>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수도 없이 깨달았다. 미리 준비해야 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역으로 우리 둘은 금세 친해져 버렸다. 사실 여사장님과 나는 나이 차이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니었다. 여 사장님이 앞에서 펼쳐놓고 가버리면 난 뒤에서 줍고 정리했다. 이럴 때 우리는 <뒤치다꺼리>라고 하는데, 경영은 결국 뒤치다꺼리 아닐까. 그 위에 전략이 나오는 거다라고 생각했다. 전략만으로도 뒤치다꺼리만으로도 장사를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배웠다.
나는 빠르게 빵집 초짜 알 바티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더 좋았던 것은 영어로 응대해야 하는 부담감도 뒤로 미룰 수 있었다. 찾아오는 손님들 대부분이 나와 비슷한 영어 수준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나보다 못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나는 마음 편히 영어를 한국말처럼 구사했다. 내가 정말 열공한 것은 매장에 비치해 놓은 빵집 카탈로그를 읽은 것이었다. 집으로 가져가서 읽기도 했다. 빵의 이름들과 친해지고 주방에서 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날마다 새로 구워져 나오는 빵들을 포장하고 매장에 진열한 지 3개월이 지나자 나는 새로 들어오는 아르바이트생들을 교육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사실 케이크를 사러 오는 손님들은 정말 친절했다. 진상 손님이 있다는 말은 나와 거리가 멀었다. 기쁘고 좋은 날을 기념하기 위해 오는 손님들은 이미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매장에 오기 때문이었다. 서로 웃고 웃으며 생일과 기념일을 챙기고 챙겨주었다. 케이크를 만들어 파는 일은 정말 좋은 일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상 손님이 나를 알고 피해가지는 않은 법,
그날이 나에게도 왔다.
아침 일찍 커피 기계를 점검하고 커피를 내리는 것으로 아침 영업 준비를 시작했다. 이른 시간이었는데 멕시코 사람들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젊은이들이 매장에 들어섰다. 사실 중국 사람, 베트남 사람, 한국 사람들이 외려 구별이 안 되는 경우도 많았다. 케이크 진열대 앞에서 자기들끼리 이러쿵저러쿵하는 게 보였다. 일행 중 한 명의 생일인가 생각하며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 May I help you?" 그들 중 한 명이 케이크 진열대 앞으로 바짝 다가오며 가리켰다. 분명 생크림 케이크들을 진열하는 왼편 쪽이었다.
잠시, 우리는 이럴 때 어떻게 주문하나요?
그 사람은 주머니를 손에 넣고 <발>로 케이크를 가리키고 있었다!!
'헉, 뭐 이런.. 같으니'
'나보고 어쩌란 거지?'
" I'm SORRY, Sir?"
이 말은 내가 못 알아들었으니 다시 말해 달라는 말이었다. 미안하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쏘리의 끝을 올리면 된다. " 너, 지금 뭐라고 했니?"와 비슷하다. 그때 뜨거운 무언가가 명치 쪽에서 빠르게 치고 올라와 금세 얼굴이 붉어졌다. 숨이 가빠졌다. 그 옆 사람이 나의 당황함을 눈치챘는지, "I'd like to get a fresh greentea cake #2, please." 크지 않게 말해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알았다고 전한 뒤, 주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사장님이- 임, 저 오늘 케이크 주문 못 받아요! 사장님께서 나가주세요 제발."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
그날 난 집으로 바로 퇴근하고 싶었다. 내가 의욕적으로 일한다 한들 나는 알바였다. 내가 미소를 짓고 일하든 그렇지 않든 내가 받는 돈과 무관했다. 내가 재미있게 일하든 신나서 일하든 그와 반대로 일하든 나에게 돌아오는 이익과 상관이 없었다. 둘째 녀석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다. 남편과도 관련이 없었다. 내게 부탁한 일도 아니었다.
"조앤 씨, 내가 잘 처리할 테니 여기 앉아서 화 가라앉혀요."
내가 이 모욕을 참기 어렵다 느끼는 건 처음인 탓이 컸을 것이다. 이러니 산전수전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나는 산전도 못 가본 사람이었다. 그러니 공중전까지 치렀다고 말하는 여사장님과 나는 이 지점에서 분명 다른 태도를 보였다. 나는 종업원이었다. 내가 여사장님처럼 일한다 했지만.
사장님 왈,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크>는 팔아야 해요. 별별 사람 많아요. 케이크 사러 온 사람들 분명해요. 구경하고 갈 사람들 아니에요. 그러니 팔 수 있어요. 그리고 팔아야 해요. 내가 나갈게요.
* 그 날 이후 내가 빵집에서 만든 주문 케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