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르고, 너는 피어난다.
낯선 나라의
수많은 사람들 틈을 헤치며
걷고, 걷고, 걷다가
비로소 깨달았었다.
‘내’ 삶이 결코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내’ 성격이, ‘내’ 재능이, ‘내’ 아픔이
이들과 함께 평범하다는 것을.
여기 무수히 스치는 사람 모두
각자 하나의 별이기에
그저 다 같이 빛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그러니,
자의식에 사로잡혀
‘나’를 연기하는 삶은
이제 그만
집어치워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자 꽤 평온해졌다.
오래지 않아
다시 우쭐거릴 수 있는 통로를 찾아
스멀스멀 기어들어갔지만.
여하튼 먼 길을 돌아
다시 평온한 상태로 왔다.
옆 집 이웃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나,
평온하여 온전한 지금.
그곳의 공기를 다시 한번 맡아보고 싶다.
2016년 1월 6일
아기를 낳고 외양이 변했다.
차갑고 전투적으로 보였던 인상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혹시라도
아기의 순결한 피부에 묻을까 하여
화장을 하지 않는다.
앞머리가 휑하니 빠졌다.
정수리에 서리가 내린 듯
새치가 제법 올라왔다.
잘록하고, 매끈하고, 탄력 있던 배는
늘어진 채 쭈글거린다.
그런데도
그 어느 시기보다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2016년 1월 9일
삶이란,
“나는 ~는 절.대.로 하지 않을 거야!”
라고 다짐했던 것들이
하나하나 무너지는 순간을 맞닥뜨리고,
그것을 순순히 인정해 나가는 과정인 것 같다.
몇 번이고,
내 맘대로 흘러가지 않는 날들에 항복하고
비로소 다른 길도 있었음을,
그 길도 충분히 찬란하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 말이다.
여여하게
지금의 할 일을 기꺼이 하자.
2016년 2월 8일
설거지 빨래 청소 요리 각 종 육아 관련 노동
매일, 똑같이
자질구레함이 반복되는 일상.
남편도, 아기도 알지 못하는
나만 아는 하루들이
묵묵히,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의외로
그 자질구레함이
행복과 평화는 결코
돈이나 쇼핑이나 해외여행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매 순간 확인하게 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존재하는 곳에서 평화로울 수 없다면
그 어디에서도 평화로울 수 없다.
매일매일의 자질구레함에 감사하며.
2016년 2월 15일
오늘은 나에게
“너 참 별로야.”
라며 앙칼지게 쏘아붙이고 싶은 날.
하지만,
다시 보니 좀 가엾기도 해서
“진상아, 쯧쯧쯧” 하며
라면 한 대접 끓여주고 싶기도 한 날.
2016년 2월 23일
육아는,
정말,
힘겹다.
육체적 고단함은 뒤로 하고,
종일을 혼자서
보채고 짜증 내는 아기를 돌보다 보면,
과거에 해결하지 못하고 지나쳐버렸던
온갖 부정적 감정들과
수없이 직면한다.
느닷없이 눈물이 흐르고,
터져 나오는 울분에
소리를 지르고 싶어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랑은 결코 그만둘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조건 없이 무작정,
무한하게 퍼붓는 사랑.
아기의 조그만 미소에
나는 목젖까지 내보일 기세로 웃을 수밖에 없다.
2016년 2월 24일
보통 때라면
탁구공만 하게 느껴졌을 감정들이,
아기를 낳고 돌보는 동안엔
아주 커다란 눈덩이처럼 우르르 굴러와서
순식간에 내 존재를 집어삼켜버린다.
덕분에 어제는 참 많은 눈물을 쏟았다.
지금에야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 것 같다.
2016년 3월 4일
생후 256일. 8개월
이미 18개월 언니 오빠들과
같은 치수의 옷을 입는다.
잘 먹고,
많이 웃고,
푹 잔다.
삼 일 전부터
혼자서 앉을 수 있게 됐고,
무언가를 잡고
꽤 오랜 시간 서 있을 수 있다.
어제
아래 잇몸에
하얀 점이 찍혔다.
곧 새싹처럼 돋아나겠지.
보고 또 봐도 감사하고,
과분한 아이.
2016년 3월 21일
세인들이란 어떤 대상을
자기 스스로 음미하고 판단하기보다는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의 관심사만을 따를 뿐이다.
루소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중
아, 찔린다…
2016년 3월 23일
어리석게도
몸이 지독히 아파야만
죽음과 마주하며
깊이 깨달았던 것들이
기억난다.
모든 시련으로부터
무엇이든 배울 수 있다.
너 때문에 쓰러졌다가
너 때문에 다시 일어나 웃는구나.
2016년 4월 25일
네가 나에게 온 순간부터
마음이 온통 꽃밭이야!
고마워, 내 사랑.
2016년 5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