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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미 Nov 12. 2022

이유식 혁명, 아이 주도 이유식 ”엄마를 해방시켜라!”

이거 진짜 좋다니까요.

생후 6개월이 지나면서 이유식에 대한 압박감이 슬슬 시작됐다. 앞으로 최소 20년 동안 균형 잡힌 식단으로 매일매일 한 생명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저 멀리서부터 거대한 파도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시판 이유식을 주문해서 먹이고 싶진 않았다.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산 식재료를 손수 다지고, 끓여서 만든 음식을 먹이고 싶었다. 그 음식은 곧 내 새끼의 피와 살이 될 것이었다.

해보지 뭐. 인류 역사상 이유식 만들다 까무러쳤다는 엄마도, 엄마의 이유식을 먹고 불행해졌다는 아기도 없었으니까 괜찮겠지.


다행히 처음부터 복스럽게 잘 받아먹었다. 어미새의 심정이 이런 걸까? 밝은 표정으로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 한 입 더 떠서 넣어주길 기다리는 아기를 바라보는 내 가슴은 벅차올랐다. 아기는 새롭게 느끼는 맛에 미소 짓고, 그런 자신을 보며 환희에 부르르 떨고 있는 엄마를 보곤 깔깔깔 웃었다.


한 숟가락씩 떠서 입 안에 넣어줄 때마다 아기의 표정을 민감하게 살폈다. 가장 반응이 좋았던 건 시금치를 잘게 썰어 넣고 끓인 죽이었다. 양미간을 찌푸리고 퉤 뱉어버린 후 단호하게 거부한 음식은 단호박을 으깨어 만든 죽이었다. 이 모든 반응을 지켜보는 게 실로 재미있었다. 얼마 살지 않은 이 조그마한 생명체에게도 호불호라는 게 있구나.


응가를 체크하는 것도 큰 관심사 중 하나였다. 아주 커다랗고 반짝 거리는 황금색 똥을 확인했을 때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리고 그 똥을 사진 찍어서 친정부모님과 시부모님,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에게 전송했다. 그런 찬란한 똥과 만날 때마다 매 번, 몇 번이고 휴대폰으로 찍어 전송했다. 똥 사진 같은 건 그만 보내라는 말씀은 아무도 안 하셨다. 감사하다. 


3주 후 결국 나가떨어졌다. 이유식을 만드는 시간은 밤에 아기를 재우고 난 후였다. 보통은 밤 10시경이었다. 온몸의 세포가 비명을 질렀다. “무슨 짓이야! 쉬라고!”. 

전신 통증이 밀려왔다. 성인 네댓 명이 몰려와 나를 자근자근 짓밟는 것 같은 통증이었다. 빨래를 개다가 나도 모르게 고통의 신음 소리가 비집고 나왔다. 아기를 업고 청소기를 돌리는데 온몸이 달달달 떨렸다. 기저귀를 갈기 위해 앙증맞은 두 발을 왼손으로 움켜쥐고 엉덩이를 들어 올리는데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졌다. 아기를 씻기고 나니 온 몸이 가루로 바스러지는 것 같았다. 그날 밤 아기를 재우다 나도 깊이 잠들어 버렸다. 


번쩍 눈을 떴을 땐 밤 12시였다. 방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남편은 퇴근 후 TV를 보며 쉬고 있었다.


“나 왜 안 깨웠어!”

“응? 피곤해서 자나보다 했지. 계속 자지 왜 나왔어?”

“이유식 만들어야 한단 말이야! 깨우지! 깨우지!”

“내가 만들면 되지. 내가 만들게. 너는 그냥 자.”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내가 하려고 했단 말이야. 내가 하려고 했는데… 몸이 너무 아파. 진짜 너무 아파.”

“힘들어서 그렇지. 내가 할게. 뭐하면 되는데? 알려주고, 넌 들어가서 자.”


스스로에게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새끼를 위한 이유식도 제대로 못 먹이는 어미라니, 너무 무능한 것 같았다. 무능한 주제에 사서 먹이는 것도 싫고, 모든 재료를 한 번에 다 넣고 버튼만 누르면 완성된다는 신식 기계를 들이는 것도 싫은 내가 한심했다. 육아에 동참하기 어려운 요리사 남편이 이유식만은 만들어주겠다는데도, 기어이 내가 해내겠노라 큰소리쳤는데 한 달도 못 가 나가떨어진 꼴에 자존심이 상했다.

남편이 삼일 치 이유식을 휘리릭 만드는 동안 TV에 시선을 두고 멍하니 소파에 누워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분했다.


‘내가 해야 되는데. 내가 하고 싶었는데. 내가. 내가. 내가.’


내가 한 시간 반이 걸려 만드는 이유식을 남편은 30분 만에 해치웠다. 주방 싱크대도 깔끔했다.

남편이 얄미웠다. 얄미운 남편이 내 발치에 앉아 얄밉게 말했다.

“금방 끝냈지? 내가 이유식 만드는 게 왜 싫은 거야?”

“내가 하고 싶어.”

“근데 네가 힘들잖아. 내가 하면 더 빨리 끝낼 수 있고.”

“…….”

할 말이 없어서 더 얄미웠다.


통증은 다음 날까지 계속됐다. 온몸이 자근자근,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어떤 약도 들지 않는 이런 날엔 그저 이불속에서 마냥 앓고 버텨야 했다. 아기와 관련된 무엇이든 반드시 내 손을 거쳐서 돌보고 싶다는 고집도 드디어 항복했다.

남편은 생각보다 아기를 잘 돌봤다. 모르는 건 틈틈이 나에게 물어보며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먹이고, 전날 본인이 만들어 둔 이유식을 먹이고, 아기띠를 매고서 산책도 다녀왔다.

아, 별일 없네.


고통 안에서야 비로소 명료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나는 내가 또 무언가를 꽉 부여잡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한 치의 타협도 용납할 수 없다는 식의 마음가짐으로 하나의 가치를 완고하게, 고집스럽게 움켜쥐고 있었다.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통증 안에서 꼼짝 못 하고 웅크린 채 누워있을 때에야 비로소 그것을 스르르 놓아줄 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훌륭하게 잘’ 해내고 싶었다. 먼저 아기를 키운 내 친구들이나 올케 언니처럼 졸린 눈 비벼가면서라도 정성을 다해 직접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출산 후의 트라우마에서 회복되지 못한 내 몸은 21일간 지속되는 과로를 버티지 못했다. 아기를 향한 내 마음은 그들과 꼭 같았지만, 내 몸은 그들과 같지 않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며칠간은 남편이 이유식을 담당했다. 하지만 변수가 생겼다. 아기가 언젠가부터 냉동실에 얼렸다가 녹인 죽을 용케 알아차리고 거부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새벽 출근을 하는 남편이 퇴근 후 매일 밤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내는 것 또한 무리였다. 남편은 그렇게 하겠노라 말했지만 피곤에 절어서 까맣게 핼쑥해진 남편에게 퇴근 후의 잔업까지 맡기는 건 못할 짓이었다.

잠시 중단하고 다른 뾰족한 수를 찾아야 했다.


인터넷 서칭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과로 속에서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유식을 만들고 있었다. 반은 자신이 만들고, 반은 주문해서 먹이는 엄마들도 있었다. 좀 더 찾아보자. 뭔가 신박한 해결책이 있을 것만 같았다.

엄지 손가락을 까딱까딱 올리며 인스타그램의 사진들을 훑어 내리고 있을 때, 응? 엄지 손가락을 다시 까딱까딱 내려서 이전 사진 중 하나를 터치했다. 지민이보다 2~3개월 정도 빠른 아이의 식사 장면이었다.


동그란 접시에 손가락 크기만 한 채소와 과일이 썰려있었다. 앞머리를 내린 단발머리에 오동통한 볼살이 귀여운, 턱받이를 한 여자 아기가 그중 하나를 신중히 고른 후 입으로 가져갔다. 빨다가, 씹다가, 뱉었다가 다시 입에 넣어 씹다가 삼켰다. 이번엔 양손에 각각 다른 음식을 집은 후 번갈아 가며 맛을 봤다. 나는 아기의 표정에 주목했다. 아기는 엄마가 준비한 네댓 개의 음식에 완벽히 몰입해 있었다. 

곧장 그 엄마의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들어갔다. 게시물들 아래엔 모두 같은 해시태그가 반복적으로 적혀있었다.


#아이주도이유식

#blw

#baby_led_weaning


이거다! 원하던 걸 찾은 느낌이었다. 당장 검색에 들어갔다. <아이주도 이유식> 이라는 제목의 책도 있었다. 당장 주문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관련 서적을 사서 이론부터 독파한 후 주저하지 않고 실천에 옮기는 건 나의 최대 강점이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책 속엔 내가 궁금해하고, 걱정하고, 의심했던 부분에 대한 모든 답이 있었다.

지민아! 엄마가 해냈어!


*


아이 주도 이유식은 말 그대로 아이가 주도해서 먹는 식사로, 엄마가 음식을 죽 형태로 만들어 숟가락으로 떠 먹여주는 수동적 식사와 다른 개념이다. 개월 수에 따라 먹을 수 있는 모든 음식을 손가락 크기로 제공하면 아기가 직접 음식을 선택해 스스로 집어 먹도록 한다.

영아 시기는 전신이 감각 기관이라고 할 정도로 감각에 민감하며, 감각을 통해 세상을 접하고 배운다. 그리고 다양한 감각 발달은 곧 뇌 발달로 이어진다.

아이는 엄마가 제공한 음식을 먼저 눈으로 보고 각기 다른 색깔과 형태를 관찰한다. 그다음 손을 뻗어 음식의 질감을 느끼고, 꽉 쥐고, 짓이기고, 비비는 실험(?)을 통해 그것의 촉감과 강도를 느낀다. 그러다 음식이 식판에 떨어지면 다시 그것을 집기 위해 시선을 옮기고, 앙증맞은 손을 꼬물거려 음식을 집은 후 안전하게 입으로 가져갈 수 있는 조작법을 스스로 터득한다. 이 시기의 아기를 관찰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음식을 손으로 집어 정확히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는 행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드디어 입 속으로 들어간 음식을 혀로 요리조리 굴리다 삼키고, 뱉기도 한다.

작가는 아기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영양소를 가진 음식과, 몸에 받지 않는 음식을 구별해낼 줄 아는 능력을 이미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도록 유도할 수는 있지만 먹고 싶어 하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이지는 말라고 충고했다. 


덩어리째 주는 음식을 치아가 부족한 아기가 잘 소화시킬 수 있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잇몸의 힘은 의외로 강했다. 삶은 애호박이나 고구마 등은 잇몸과 혀로 충분히 으깨어 삼킬 수 있었으며, 심지어 사과같이 딱딱한 음식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기는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자신이 삼키기에 무리가 없는 크기로 -새싹 같은 앞니와 잇몸을 사용하여- 잘라 섭취하고 있었다. 아이의 소화기관에 전혀 무리가 없다는 건 매일매일의 응가가 증명해줬다.


수년간 유아식과 아동발달을 연구한 작가의 말에 의하면 아이 주도 이유식은 죽 형태의 이유식보다 훨씬 더 풍부한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원인은 조리법에 있었다. 죽으로 만들기 위해 채소를 잘게 다지고 장시간 끓이는 동안 대부분의 영양소가 파괴되는 것에 비해, 굵게 썰어 짧은 시간 찌거나 데치는 방식의 조리법은 그 식재료의 영양소를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에 같은 양을 섭취해도 더 많은 영양소를 섭취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밖에 아이 주도 이유식의 장점으론, 아이들이 편식할 확률이 줄어들고, 스스로 먹는 양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게 된다는 점 등이 있었다.


그럼 엄마인 나에겐 무엇이 좋을까? 아무리 아기에게 좋은 방법이라고 해도, 엄마인 내가 고생스러웠다면 이번에도 얼마 못가 드러누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이 주도 이유식을 끝까지 완주했다.

애초에 이건 나를 위한 것이었다.

아이 주도 이유식은 사실 ‘엄마 해방 이유식’이다!


첫 번째 이점은 조리 시간이 혁신적으로 단축된다는 것이다. 식재료를 다질 필요 없이 길쭉길쭉 시원스럽게 썰어서 찜기에 다 같이 넣고 찌기만 하면 끝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찌면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기 전에 모두 뭉개지므로, 물이 끓고 10분 이상 넘어가지 않도록 했다. 더 이상 좀비 같은 몰골로 주방에 들어가 졸린 눈을 비벼가며 죽을 끓이지 않아도 됐다. 냉동실에서 나온 것이 아닌, 당일 조리한 신선한 음식을 제공해줄 수 있어 기뻤다. 그렇게 완성된 음식 중 일부는 엄마의 반찬이 될 수도 있었다. 바로 이것이 두 번째 장점이다.


아기의 음식과 엄마의 음식이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아기가 먹는 것을 엄마도 먹을 수 있었다. 어른의 입맛엔 찌기만 한 채소가 싱거울 수 있으므로 소금이나 간장을 조금씩 찍어서 밥반찬으로 먹으면 된다. 누구와 함께? 아기와 함께! 이것이 세 번째 장점이다.


아기가 식사할 때 엄마도 식사할 수 있다. 그것도 천천히, 든든하게, 우아하게! 죽 형태의 이유식을 먹일 땐 엄마와 아기의 식사가 철저히 분리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이주도 이유식>의 작가는 “아기가 먹을 때 엄마도 먹어라!”라고 재차 강조했다.

식생활이라는 것은 단순히 생존에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에 한하지 않는다. 식구가 다 같이 밥상에 둘러앉아 품위 있게 음식을 즐기며, 그 안에서 오고 가는 다정한 대화 속에서 가족 간의 사랑이 움튼다. 밥상머리에서의 단란한 분위기가 한 인간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성장시키는 것이다.

엄마는 아기의 식사 장면을 섬세하게 관찰하다가 말을 건다. 밥상머리에서도 계속되는 아기와의 교감 또한 아이 주도 이유식의 이점이다.


그건 당근이야. 당.근. 당.근. 주황색이 예쁘다, 그치?
무슨 맛이 날까? 냠냠냠, 냠냠냠, 먹어볼까요?
지민이 눈을 환하게 만들어줘서 세상을 더 잘 볼 수 있게 도와줄 거야!


뭐라는지 정확히 알아들을 순 없지만 아무튼 먹어보라고 권하는 것 같다고 느낀 아기는 그것을 입에 가져가 제 손톱 보다도 짧게 자란 앞니로 깨물어 본다.

야금야금. 질겅질겅. 쪽쪽. 짭짭.

음식에 따라 아기의 표정이 시시각각 바뀐다. 엄마는 아기가 좋아하는 음식과 거북해하는 음식을 정확하게 간파할 수 있다. 좋아하지 않는 음식은 후에 조리법을 다르게 해서 주면 먹기도 했다.


아구, 잘 먹네! 울 애기 맛이쪄?
뇸뇸뇸뇸. 무슨 맛이에요?
고소하지? 아이, 고소해!
그건 무슨 맛이야? 달콤해요? 새콤달콤?
아, 맛있다! 엄마도 맛있다!
지민이랑 같이 맘마 먹으니까 정말 맛있네!

   

자신의 동작 하나하나에 웃으며 반응하는 엄마를 보며 아기는 식사란 즐거운 것임을 깨닫는다.


나에게도 식사 시간이 휴식 시간처럼 느껴졌다. 이것이 다섯 번째 장점이다. (최고의 장점이다!) 아기는 한 시간이 훌쩍 넘어가도록 지루해하는 법 없이 식사에 집중했다. 두 시간 가까이 식사를 할 때도 있었다. 그동안 나는 느긋하고 천천히 꼭꼭 씹어 끼니를 즐기며 에너지를 충전했다. 눈앞의 아기가 음식을 가지고 여러 실험과 시도를 하며 즐기는 모습을 바라보는 건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여섯째, 내 식사가 끝나면 바로 설거지를 할 수 있었다.  아이 주도 이유식을 시작한 후부턴 아기가 잠든 후에야 피곤한 육신을 짊어지고 설거지를 하는 일은 없어졌다. 내 밥그릇을 비운 이후에도 한 참 동안 진지하게 몰입하고 있는 아기를 방해하지 않고 일어나 뒷정리를 하며 아기와 대화를 나눴다. 덕분에 아기가 밤잠에 드는 동시에 나도 퇴근할 수 있었다!


마지막 일곱 번째 장점은 친정을 가거나 시댁에 갈 때에도 이유식을 따로 싸가지고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무엇이든 냉장고 속 채소 몇 가지를 썰어서 찐 후, 흰쌀밥을 들기름에 무쳐 미니 주먹밥으로 만들어 접시에 놓아주면 훌륭한 한 끼가 금세 완성됐다.


삶의 질이 급상승했다. 신여성과 저자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물론 이 모습을 보고 걱정하는 시선들도 있었다. 그리고 아이 주도 이유식을 시도하다가 원래 방법으로 돌아갔다는 엄마들의 질문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덩어리가 입 속으로 들어가면 아이가 구역질을 하는데,
그때마다 겁나고 무서워요.
씹지 못하는 아기에게 정말 안전한 거예요?


작가의 말에 따르면, 보통 성인의 구역 반사가 일어나는 부위는 목젖과 가까운 혀의 안쪽 부분인데 비해, 아기의 구역 반사 지점은 혀의 바깥쪽에 위치해 있다고 했다. 이것은 아기의 안전을 위한 자연의 섭리이며, 아기가 점점 성장할수록 그 지점이 점점 목구멍 쪽으로 이동한다고 했다. 즉, 아기가 구역질을 하더라도 어른의 경우처럼 목구멍에 음식이 걸려 위험한 상황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또한 다양한 질감의 식재료를 적당한 크기와 양으로 잘라 입에 넣어 먹는 방법을 터득해나가는 과정에서 구역질을 하는 빈도도 점점 줄어든다고 했다. 그러나 향후 육아의 여정에서 기도에 음식물이 걸릴 수 있는 상황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으니 꼭 하임리히법을 익혀놓으라는 조언을 해줬다. 또한 아기가 식사를 하는 동안엔 반드시 아기의 곁을 떠나지 말라고 경고했다.

지민이도 아이 주도 이유식을 시작한 초반엔 종종 구역질을 했다. 처음엔 가슴이 철렁했지만 그때마다 스스로 음식물을 잘 처리하는 과정을 보고 안심했다. 한두 번 정도, 많은 양을 한꺼번에 입 안 깊숙이 밀어 넣고 켁켁거린 적이 있었다. 얼굴이 빨개질 때쯤 신속히 아기를 들어 안아 얼굴이 바닥을 향하도록 가슴을 받힌 후 날개뼈 사이를 탕탕 두드리자 곧바로 음식이 빠져나왔다. 심장이 뛰었다. 나는 아기가 처음 겪은 위급 상황에 울음을 터뜨리고 식사를 거부할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호흡이 편안해진 아기는 곧바로 손을 뻗어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기는 경험을 통해 스스로 배워나갔다. 한 번에 많은 음식을 입에 넣으려다 멈칫하고 음식을 나누어 조절했다. 그런 다음엔 꼭 내 얼굴을 살폈다.

 ‘엄마, 나 잘한 거지?‘

나 또한 아기가 무리 없이 식사할 수 있는 크기와 질감을 찾아나갔다. 내 아이에게 맞는 음식을 내가 가장 잘 알고, 내가 가장 잘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자부심으로 피어올랐다. 엄마로서 부족함 투성이인 것 같아 훌쩍이던 시간을 뒤로하고, 당당하게 일어설 수 있었다.


식사 후 난장판이 되는 건 어떡하나요?
먹는 양보다 버리는 양이 더 많지 않나요?


솔직히 난장판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어른도 흘리지 않는가? 자신의 손가락 조작법도 익숙지 않은 아기가 음식을 흘리는 건 당연하며, 깔끔하게 먹는 방법을 배우기까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이소에서 빨간색 체크무늬 식탁보를 구입해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아기 의자를 올려놨다. 아기는 식사 중 음식을 놓쳐서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시험 삼아 던져보기도 한다. 천에 떨어진 멀쩡한 음식은 다시 주워서 식판에 올려놓지만, 완전히 뭉개진 경우 그대로 두었다가 식사가 끝나면 싱크대로 가져가 탈탈 털고, 주기적으로 세탁 했다. (지금은 이 천을 미술 놀이를 할 때 바닥에 까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음식을 탐색하다 실수로 떨어뜨리는 건 괜찮았지만, 일부러 떨어뜨리는 건 안된다고 가르쳐 줬다. 당연히 듣지 않는다. 반복해서 이야기하거나, 때로는 그 음식은 식판에서 치워버렸다. 아기는 엄마의 태도를 읽고, 음식을 던지는 행동을 서서히 줄여나갔다.


식사 시간은 오감 놀이, 촉감 놀이의 시간이기도 했다. 나에겐 난장판이 된 식탁 밑을 치우는 수고보다, 아기가 두 시간 가까이 음식을 탐색하며 놀고, 먹는 걸 바라보는 기쁨이 훨씬 더 컸기에 단 한 번도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음식을 버리는 양은 적을 때도 있고, 많을 때도 있었다. 전혀 없을 때도 있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주도 이유식을 할 때 버려지는 음식의 양이 많아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죽 형태로 이유식을 만드는 경우가
음식을 낭비하고 버리는 양이 훨씬 많답니다.
단지 잘게 다져져서 그렇게 보이지 않을 뿐이죠.
아기가 먹는 양을 생각해보세요.
어른이 버리는 양의 1/10도 안될 겁니다.

아기는 매일매일 성장하며 배운다. 아기가 자랄수록 버려지는 음식의 양이 점점 줄어드는 걸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은 생각보다 빨리 온다.

아기에겐 즐기면서 연습하고, 실수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난 어딜 가든 아기가 집에서처럼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외식도 맘 편히 할 수 있었다. 어른들이 천천히 담소를 나누며 편안한 식사를 즐기는 동안 아기는 자신의 음식을 먹었다. 어른들의 식사를 물끄러미 관찰하다가 흉내를 내보기도 하고, 돌이 지난 후부턴 서로의 음식을 나누어 먹기도 했다.

아기를 먹이기 위해 누군가가 희생하는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았다. 나의 육아는 한결 우아해졌다.

아기와 나는 밥상머리에서 그 어느 때보다 길게 눈을 마주쳤고, 많이 웃었다. 하루 중 가장 여유롭고, 뿌듯한 시간이었다.

아기는 건강하고, 튼실하게 자라났다.


*


첫 이유식 때 건강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몰랐을 세계였다.

꼭 아이 주도 이유식을 할 필요는 없다. 구역질을 하는 아기를 보는 것이 겁이 나고 공포스러운 엄마에게, 혹은 식탁 밑이 더러워지는 걸 지켜보는 게 더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엄마에게 내 방법이 옳다며 강요할 순 없다. 나 또한 처음 시작할 땐 전통적이지 않은 방식에 우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곤 했다. 하지만 나의 경우, 내가 (우선) 살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 아이 주도 이유식이었고, 결과적으론 아기를 포함하여 식사하는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꼭 알맞은 방법이 있고, 그건 엄마가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덧붙이는 말,

이유식을 시작하는 엄마들이여,

이거 진짜 좋다니까요.







 2016년 07월 19일

맨 먼저 브로콜리부터 단호하게 제쳐놨다.

그리고 계란말이를 맛있게 냠냠거리며 먹고,

두부, 토마토, 밥을 골고루 먹기 시작.

주먹밥 몇 알을 남기고 다 먹었다.

행복한 식사.





2016년 07월 20일

최근 들어 지민이는 엄마 껌딱지가 되어 아침시간엔 유독 꼼짝도 못 하게 한다.

그런 처자식을 위해 남편은 졸린 몸을 일으켜 밑준비를 해주고 출근했다.

육아는 팀워크다.




2016년 07년 26일

핑계를 대자면 어제는 더위와 싸우며 병원을 돌아다니고 지민이 예방 접종까지 맞추느라 장을 봐야겠다는 생각조차 아예 없었다.

친정에서 돌아와 냉장고를 열어보니 지민이 줄 반찬과 과일이 거의 떨어진;;

아침도 과일 잔치로 줬는데 점심도 그럴 순 없어서 그나마 영양가를 맞춘다고 애쓴 식사.



2016년 08월 03일

결혼 전엔 부엌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싫었다.

구슬땀 흘려 요리하는 엄마의 모습이 마냥 고생스러워 보여서. 그래서 할 줄 아는 요리가 거의 없다.

그런데 엄마는 나중에 말씀하셨다.

요리는 늘 재미있었다고.

결국 나는 쓸데없이 부엌을 싫어했다가 지금껏 할 줄 아는 요리도 없게 된 것이다.


엄마가 된 나는 이제 돌이 지난 지민이에게 새로운 음식들을 맛보게 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

욕심부리지 말고 하나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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