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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미 Nov 05. 2022

사이비 종교 단체의 표적

사람이 할퀴고 간 자리


보통 때라면 탁구공 만하게 느껴졌을 감정들이,
아기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아주 커다란 눈덩이처럼 우르르 굴러와
순식간에 내 존재를 집어삼켜 버린다.
덕분에 어제는 참 많은 눈물을 쏟았다.
지금에야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 것 같다.
- 2016년 3월 4일


2016년 2월. 월요일 오전 10시경.

아기의 첫 낮잠을 재우고, 젖병을 설거지한 후, 빨래를 갰다. 일상이 된 수면 부족으로 머리가 띵하고 멍했다. 커피를 홀짝이며 소파에 앉아 잠시 숨을 돌렸다. 정신이 명료해지길 천천히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초인종이 울렸다.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구세요?”

“아기 엄만가보다.”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그쪽에서 인사를 건넸다.

“누구세요?”

다시 물었다.

아기 엄마들 모임이 있어서요.
다 같이 모여서 뜨개질도 하고, 식사도 하고, 차도 한 잔 하는 모임이에요.
같이 하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문 좀 열어주시겠어요?

나는 -더 묻고 따지지도 않고- 문을 열어줬다.

‘아기 엄마들 모임’이라는 말만 듣고 누군지도 모르면서 반가웠다. 목소리로 짐작컨대 나보다 먼저 엄마의 길을 걷고 있는 여자들인 것 같았다. 그즈음 나는 8개월짜리 아기와 집에서만 뱅뱅뱅 돌며 철저히 고립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 세상 여자는 ‘애 낳은 여자’와 ‘애 안 낳아 본 여자’ 이렇게 둘로 나뉜다고 생각했다. ‘애 낳은 여자’를 이해해줄 수 있는 건 오직 ‘애 낳아 본 여자’ 뿐이라고 확신했다. ‘아기 엄마들 모임’이 있다며 ‘같이’ 하자는 제안은 암흑 속에 내려오는 한 줄기 빛 같았다.


총 세 명이었다. 나이는 대략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단발 파마머리의 마른 여자와, 동그란 은테 안경을 쓴 참한 인상의 여자, 그리고 토실토실 푸근한 인상의 여자였다.

나는 왠지 신이 났다.  

“물이나 주스 좀 드릴까요?

단발 파마를 한 마른 여자가 말했다.

“집에 커피 향기가 너무 좋네요. 커피 마실 수 있을까요?”

커피를 대접하려면 내 커피를 내리기 위해 사용했던 도구들을 모두 헹군 후 물기를 닦고, 굉음을 내며 커피콩을 갈고, 물을 끓인 후 다시 핸드드립을 해야 했다. 생판 낯선이들을 거실에 앉혀 놓고 주방에서 핸드드립 준비를 한다는 게 좀 꺼림칙했지만, 그 '꺼림칙'은 무시하고 기꺼이 했다. 내친김에 사과도 깎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하리만치 신바람이 났다. 황무지에서 며칠을 홀로 헤매다 겨우 사람을 만난 기분이었다. 

커피와 사과를 거실로 가져갔다.

“고마워요.”

마른 여자가 말했다.

“아니에요, 헤헤.”

“집이 아기자기하고 예뻐요.”

안경 여자가 말했다.

“고맙습니다. 헤헤.”

나는 반죽 좋게 실없이 헤헤 거리며 대답했다.

토실토실한 여자는 아무 말 없이 계속 푸근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근데 어디서 오신 거예요?”

“아, 아기 엄마들끼리 모여서 모임을 하고 있거든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모여서 같이 뜨개질하고, 이런저런 손작업들을 하면서 대화도 나누고 그래요. 점심때 되면 식사도 같이 하고, 차도 마시고요. 이렇게 집에서 아기만 돌보고 있으면 너무 힘들잖아요. 거기 가면 아기 엄마들이 많아요. 아이도 물론 데리고 와도 돼요. 엄마들이 뜨개질하는 동안 아기를 봐주시는 분들도 있고, 아기들이 낮잠 잘 공간도 있어요.”

마른 여자가 말했다. 마른 여자가 대장인 것 같았다.

“근데 제가 여기 있는지 어떻게 알고 오신 거예요?”

이 질문은 의심스러워서 한 게 아니었다. 정말로 궁금했다. 어쩌면 내가 복이 많은 사람이라 이런 천사 같은 사람들이 우리 집에 방문한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대장 여자가 말했다.

“이 동네에 아기 엄마들이 많다고 들어서 일단 와봤어요. 근데 집집마다 돌아다닐 순 없고, 그냥 무작위로 올라와서 초인종을 눌러봤는데 마침 아기 엄마가 계셔서 오게 된 거예요.”

아름다운 인연이란 이런 식으로 맺어지는 건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근데 전 뜨개질을 못해요.”

“다 가르쳐드려요.”

“어디서 하는 건데요?”

“교회에서 건물을 빌려주셔서요, 거기서 밥도 먹고 차도 마셔요.”

“밥도 먹어요?"

“네네. 교회 식당에서 감사하게도 제공해주세요.”

"공짜로요?"

"네네. 감사한 마음에 소정의 금액을 헌금처럼 내시는 분들도 계시긴 해요.”


그때, 아기가 깼다. 절간 같이 조용했던 집에서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니 일찍 깬 것 같았다.

아기를 안고 나왔다. 낯가림 시기가 지난 아기는 울지 않고 눈만 껌뻑이며 세 아줌마들을 바라보다가 방긋 웃었다. 내 마음도 방긋 웃었다.

세 여자가 아기를 예뻐해 줬다. 토실토실한 여자가 처음으로 입을 뗐다.

“너무 귀엽다. 뽀얗네.”

“헤헤.”

내 새끼 칭찬만큼 듣기 좋은 게 없다.

안경 여자가 말했다.

“물 좀 한 잔 마실 수 있을까요?”

커피잔이 비어있었다. 나는 아기를 안고 있었다.

안경 여자가 다시 말했다.

“우리가 애기 보고 있을게요.”

“아, 네네.”

나는 그 여자들 앞 매트 위에 아기를 내려놓고 부엌으로 갔다.

자기들끼리 아기를 어르는 소리가 들렸다. 세 사람 모두에게 물을 대접했다.

마른 여자가 말했다.

“아기도 매일 엄마랑만 있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도 좀 만나고, 친구들도 만나면 더 좋아요.”

8개월짜리에게 친구라니 좀 우스웠지만 그래도 그 말이 맞을 거라 믿고 싶었다.

“그 교회가 어디 있는데요? 교회 이름이 뭐예요?"

내가 물었다.

“조오기 XX동에 있어요. 여기서 아마 차로 20분 정도 걸릴 거예요.”

아… 멀다. 내가 갈 수 없다. 절망적이었다. 차는 남편의 출퇴근용이었기에(그리고 난 운전을 못했기에) 그곳에 가려면 시내버스를 타야 했다. 엄동설한에 고작 8개월짜리 아기를 데리고, 젖병과 기저귀 등을 챙겨 왕복 한 시간 거리를 오고 갈 배짱이 나에겐 없었다. 허탈하고 슬펐다. 근데 왜 교회 이름은 빼고 말할까?

“저는 못 가겠네요. 차가 없어요. 얘를 데리고 버스는 무리고요.”

“아!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카풀해드릴 수 있어요! 이 근처에 사시는 분이 계시니까 여기에 들러서 오실 수 있어요.”

대장 여자는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카풀을 해주신다고요?(어떤 분이 그렇게 천사 같은 마음씨인 거예요? 기름값도 비싼데)”

난 벌써 이 모임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언제 모이는 거예요? 요일이 정해져 있나요?”

“보통 수요일, 금요일 이렇게 모여요.”

줄곧 대장 여자만 말했다.

“그럼, 아직 일주일에 두 번씩은 무리고, 수요일만 갈게요.”

“네, 그렇게 하세요. 그럼 이쪽에 들를 수 있는 분께 이야기해 놓을게요.”

“네, 감사합니다.”

여자들이 다 같이 일어났다.

“그럼 내일모레 오실래요?”

진행이 빠르다. 얼떨결에 그러마고 대답했다.

“네. 그럼 수요일에 봬요.”

여자들이 아기에게도 인사를 하고 우르르 집을 나갔다.


다시, 집이 고요해졌다.

거실 바닥에 빈 컵과 사과 서너 쪽이 담긴 접시가 놓여있었다.

방금 뭐가 지나간 거지? 낯선 이들이 내 집에 두고 간 흔적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내일모레 누군가가 아기와 나를 데리러 온다고 했다. 아기와 그 차에 타고, 낯선 이들이 모인 낯선 장소에 가기로 했다. 이래도 되는 건가?

아기는 햇살 아래서 평화롭게 뒹굴거리고 있었다. 덜컥, 겁이 났다.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방금 어떤 여자 세 명이 왔다 갔어.
아기 엄마들 모임인데, 다 같이 뜨개질하고 식사도 한대.
얼떨결에 가겠다고 했는데 기분이 이상해.


전화가 왔다. 남편이다.

자초지종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음… 그거,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가고 싶어?”

“그 아줌마 이야기 들을 땐 혹했는데, 다들 가고 나니까 기분이 이상해. 내가 문을 왜 열어줬지?”

“응. 그것도 위험하긴 했는데, 좀 이상하잖아. 무작위로 집을 돌아다니다 우리 집에 왔더니 마침 애기 엄마더라, 하는 것도 이상하고, 어느 교회인진 모르겠지만, 거기서 밥을 준다는 것도 이상해. 그리고 카풀도. 세상에 공짜는 없어, 승미야. 난 그렇게 생각해. 그래도 혹시 내 생각이 틀렸을 수 있으니까 네 친구들한테도 한 번 얘기해보고 의견을 들어봐.”


정신이 멍해졌다. 마치 무엇엔가 홀렸던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매일 연락하는 고교 동창 친구들에게 단체 메시지를 보냈다.


아들 셋 : 승미야, 거기 가는 거 좀 아닌 것 같아.
현실주의자 : 그래. 이상하다. 안 가는 게 좋겠어.
커리어 우먼 :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그 사람들 이상해.


그 여자들이 왔을 때 내가 했던 행동 하나하나가 떠올랐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덜컥 집 안으로 들였다.

공연히 신나서 커피며 과일을 대접했고, 잠깐이었지만(그리고 다람쥐 굴만한 집이긴 하나) 아기를 맡기고 주방에 가기도 했다. 아찔했다. 80년대엔 그 틈을 타 아기를 유괴한 사건들이 왕왕 있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입 바른 칭찬에 실실 거리며 좋아하고, 공짜 밥, 공짜 커피, 그리고 당사자(누군지도 모르는)가 아직 허락도 안 한 카풀에 들떠 있었다. 걸리는 부분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그러다 한 순간, 머리칼이 쭈뼛 섰다.

다세대 주택 건물에 있는 우리 집의 현관문까지 오려면 비밀 번호가 설정되어 있는 건물 입구의 문을 먼저 거쳐야 한다. 그 여자들은 그곳을 어떻게 통과했을까?


아들 셋 친구가 무서운 이야기를 했다.


XX동이라고 했지?
거기에 OO교회라고 있는데
공공연한 이단, 사이비 종교 단체야.  
아무래도 거기에서 온 것 같다.
주로 아기 엄마들을 끌어들여서 뜨개질하고 차 마시며 환심부터 사고,
그 종교로 끌어들이는 수법이라고 조심하라는 이야기가
한 때 동네 맘 카페 게시글로 많이 올라왔었어.


즉시 인터넷에 OO교회를 검색해 봤다. 정확히 ‘사이비 종교’라고 나무 위키에 적혀있었다. 다수의 여자들이 한 카페에 의심스럽다며 게시글을 올렸다. 골자는 이랬다.


‘두세 명이 한 조가 되어 아기가 있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뜨개질이나 수제 양초를 만드는 작업을 하는 모임에 나오라고 합니다. 밥과 차를 제공한다고 하네요. 장소는 OO교회라고 하길래 알아봤더니 좀 이상한 곳인 것 같아서요. 여기 사이비 종교단체 맞죠?’


댓글이 달렸다.


‘아주 유명한 사이비 종교 단체입니다. 말도 섞지 마세요.’

'거기 유명하죠.ㅋ'


아기가 뒹굴거리며 치발기를 씹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까르륵 웃는다. 

아가, 내가 계속 네 엄마를 해도 괜찮겠니?


아들 셋 : 최승~ 네가 많이 고달프고 외로웠나 보다. 내가 좀 더 신경 써줄걸.
현실주의자 : 그렇지. 한창 힘들 때야. 조만간 놀러 가야겠다.
커리어 우먼 : 그러게 얼마나 힘들었으면 생판 모르는 사람을 쫓아간다고 했을까. 주말에 놀러 갈게. 그리고 거긴 절대 가지 마! 알았지?


육아를 하면서 가장 힘든 건 바로 지독한 고립감 속에서 무성하게 자라나는 외로움이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새벽부터 나갔다가 밤 열 한시가 되어 돌아오는 남편은 일터와 가정 양 쪽에서 이미 본인이 할 수 있는 120%를 해내고 있었다. 친정 부모님께서 종종 방문하시거나 내가 친정 집에 갈 때도 있었지만 그것으로 고립감이 해결되진 않았다. 친정 부모님이 오시면 친정 부모님과 함께 고립되는 느낌이었고, 내가 친정으로 가면 아무래도 내 집이 아니기에 또 다른 곳에 고립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사회적 관계’가 그리웠다.

더불어 도저히 능숙해지지 않는 육아로 매 순간을 허덕이는 동안 자존감도 바닥을 쳤다. 날뛰는 호르몬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틀 후 그들이 다시 찾아왔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현관문을 열지 않고 문 앞에 서서 말했다.

“저 그 모임에 가지 않으려고요. 연락처를 몰라서 미리 연락 못 드렸어요. 죄송합니다.”

“어머! 왜요?”

“음… 마음이 바뀌었어요. 나가지 않겠습니다.”

“문 좀 열어 보세요.”

“아니에요. 가지 않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잠깐 문 좀 열어 보세요!”

갑자기 현관문을 쾅쾅쾅 두드렸다. 내 심장도 쾅쾅쾅 뛰었다. 엄마야, 이 사람들 진짜 정상 아니야.

"아기가 자고 있어요. 문 두드리지 마세요. 가지 않습니다. 돌아가세요."

"잠깐만 이야기 나눠요. 네?"

급기야 문고리를 철컥철컥 돌리는 소리까지 났다. 소름 끼쳤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무서웠다. 112에 신고라도 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자기들끼리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30분이 넘도록 현관문 앞에서 통사정하듯 나를 설득하고, 문을 두드리고, 문고리를 돌리다 돌아갔다. 직감이 옳았다. 남편과 친구들이 옳았다.


*


사이비 3인조가 방문하기 5개월 전 가을, 

옆 집에 한 가족이 이사를 왔다. 택배 기사 아빠와 가정 주부 엄마, 그리고 초등학교 3학년 딸이었다.

이사 온 다음 날 저녁 시간에 초인종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새로 이사 왔는데, 인사할 겸 반찬 좀 만들어 왔어요.”

문을 열자 둥글둥글한 인상의 안경 쓴 엄마가 반찬통을 들고 서 있었다. 옆엔 10살짜리 딸이 내 품에 안겨있는 아기를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아, 고맙습니다!” 밑반찬은 소중하다.

“까꿍! 아유, 토실토실 이쁘다.”

내 새끼를 칭찬해주는 사람에겐 어쩜 그리 가슴이 활짝 열리는지 푼수가 따로 없다.

그 후로 우린 종종 왕래하며 반찬을 나누고, 마음을 터놨다. 먼저 아기를 키워본 엄마로서 도움이 되는 조언과 공감을 아낌없이 건네줬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남편의 퇴근이 늦다며 함께 저녁을 먹자고 해서 아기와 옆 집으로 건너가 정성스레 차려진 음식을 느긋하고 배불리 먹기도 했다. 숨통이 트였다. 아기가 유독 보채고, 힘들 때에도 내 맘을 알아주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설령 실제 도움을 요청하진 않더라도- 지근거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든든했다. 

종종 우리 집으로 초대해 함께 차와 과일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고, 다정한 열 살 소녀는 아기와 곧잘 놀아줬다. 지민이가 자라서 옆 집 언니와 노는 장면을 상상하면 몹시 흐뭇했다. 그 해 겨울은 따뜻했다.


새해를 맞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비보가 날아들었다. 옆 집의 이사 날짜가 잡혔다는 것이었다. 서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멀리 가는 건 아니었다. 걸어서 20분가량 소요되는 동네였다. 하지만 육아와 집안일을 하는 틈틈이 들리는 옆 집의 달그락거리는 생활 소음과 음식 냄새는 내게 큰 위안이었기에 그것들이 모두 사라질 거라 생각하니 상실감마저 들었다. 다시 혼자가 되는 기분이었다.

떠나기 전, 두 모녀가 인사를 하기 위해 찾아왔다.

“지민 엄마, 저희 가요. 정리 좀 되면 집으로 초대할게요. 지민이랑 꼭 놀러 와요.”

“그동안 정말 감사했어요. 연락 주시면 놀러 갈게요.”

진심을 담아 어른스럽게 대답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이 떠난 후 조금 울었던 것 같다.


그 후 오래지 않아 사이비 3인조 소동이 있었던 것이다. 의지했던 이웃이 떠난 상실감을 채워줄 사람이 필요했던 걸까?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옆 집 엄마가 더더욱 그리웠다.


그로부터 2주 정도가 지난 후, 이사 갔던 옆 집 엄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지민 엄마, 잘 지내요?
이제야 집이 좀 정리가 돼서 연락해요.
이번 주 수요일 점심때 시간 어때요?
괜찮으시면 지민이랑 오셔서 같이 식사해요. ^^
딸아이도 지민이 보고 싶어 해요.


지금 가면 안 돼요? 하고 당장에 달려가고 싶었다.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두 달 사이 더 똘똘하고 튼실해진 딸을 얼른 보여주고 싶었다.

수요일 아침부터 분주하게 준비했다. 밤 새 푹 자고 일어난 아기의 컨디션도 좋았다. 제일 예쁜 원피스를 꺼내 입혔다. 삔도 꽂았다. 아기띠를 하고, 미리 사뒀던 두루마리 휴지를 들고나갔다. 아기를 낳고 처음으로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지민 엄마, 지금 오고 있어요?”

“네네, 방금 버스 탔어요.”

“네, 근데 몇 사람이 더 같이 식사를 할 것 같은데 괜찮아요?”

“아... 네네.”

“네, 알겠어요. 조심히 와요.”


전화를 끊었다.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몇 사람이 더 함께 식사를 할 건데 괜찮냐는 질문에, “아니요, 괜찮지 않은데요. 그럼 안 갈래요.” 하는 사람도 있나? 왜 미리 얘기하지 않았지? 갑자기 정해졌을까?


집에 도착하고 얼굴을 보자 미심쩍은 마음은 온데간데 없고 반갑기만 했다. 잠시 후 초인종이 울렸다. 왜소한 체구에 단발 생머리를 하고 안경을 낀 여자가 먼저 들어왔고, 뒤이어 긴 파마머리를 한 통통한 여자가 들어왔다. 모두 절친한 사이인지 반말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옆 집 엄마가 나를 소개해줬다. 곧 상이 차려졌고, 함께 식사를 했다. 역시, 요리 솜씨가 좋았다.  파마머리 여자가 아기와 놀아주는 동안 오롯이 식사에 집중해서 배 터지게 먹었다.


육아 이야기, 교육 이야기, 부동산 이야기, 동네 이야기 등이 오고 갔다. 오후 서너 시쯤 되자 졸음이 몰려온 아기가 칭얼대기 시작했고, 나는 아기띠를 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 자주 봐요. 저도 이 동네 살아서 여기 자주 올 거예요.”

단발 생머리 여자가 말했다.

“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처럼 나에게도 동네의 친한 언니들이 생기는 건가, 잠시 설레었다.


일주일 후, 다시 연락이 왔다.

“지난번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불편했죠?”

“아니에요. 괜찮았어요. 아기도 봐주셔서 편하게 있다 왔어요.”

“다행이에요. 이번 주 목요일 저녁때 같이 식사할래요? 너무 늦으면 지민이 힘드니까, 다섯 시에서 여섯 시쯤 이른 저녁 식사 어때요?”

“어휴, 저야 감사하죠. 근데 매번 이렇게 얻어먹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저는 지금 뭘 해드릴 여력이 안되는데…….”

“아니에요, 무슨 말씀을. 지민이 옷만 따뜻하게 입혀서 맘 편히 놀러 오세요.”

아, 이 아줌마는 천사다.


목요일 오후 세 시경, 낮잠을 자고 일어난 아기를 데리고 집을 나왔다. 버스를 탔을 때, 메시지가 왔다.

지민 엄마, 오고 있죠?
사람들이 더 있는데 괜찮아요?

아, 또.

괜찮다고 답을 보냈다. 기분이 이상했다.

도착하니 와글와글 했다. 이전에 만났던 멤버들이 모두 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도 와 있었다. 모두들 지민이에게 몰려와 귀여워해 줬다. 지민이는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까르륵까르륵 잘도 웃었다.

다 같이 저녁 식사를 하려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권사님 오셨나 보다.”

문이 열리고, 호리호리한 50대 여성이 들어왔다. 평범한 외모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 함께 식사를 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늦어져 식사 후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단발 생머리 여자가 말했다.

“제 차로 집까지 태워 드릴 테니 과일 먹고 같이 나가요.”

봄이 시작되고 있었지만 해가 지면 어둡고 쌀쌀했기에 얼른 다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대화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그들은 같은 모임에 있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거실 매트에서 아기를 돌보며 그들의 대화를 건성으로 듣고 있었다.

그러다 ‘성경’ 이야기가 나왔다. 누군가 나를 자세히 지켜보고 있었다면 내 귀가 쫑긋 서는 걸 포착했으리라. 교회 모임인가? 이 세상에 기독교인은 수두룩 하고, 나 또한 임신 때부터 집 앞 성당에 매일 다니다 세례를 받았기에 ‘성경’은 익숙한 단어였다. 그런데 그날따라 내 의식은 이상스러울만치 ‘성경’이라는 단어에서 멈칫했다. 내가 왜 이러지? 성경 모임 할 수도 있지, 뭐. 그때, ‘권사님’이라고 불리는 엄숙한 분위기의 여자가 내게 말했다.


“지민 엄마도 저희 모임에 나오실래요? 성경 공부하는 모임이에요.”

“아, 네! 저도 성당에 다녀요. 성경 공부 좋죠.”


멈칫했던 내 직감과 상관없이 대답이 제 맘대로 튀어나왔다. 응? 내가 뭐라고 한 거지? 딱히 가고 싶진 않은데.

이어서 질문까지 술술 나왔다.

“근데 어디서 하는 거예요?”

단발 생머리 여자가 대답했다.


“XX동에 있는 교회예요. 제 차로 같이 다녀요.”


일순간 몸에 한기가 돌았다.


집에 돌아와 아기를 재우고 소파에 앉았다. 지난달 우리 집에 방문했던 사이비 3인조를 떠올렸다. 확실한 건 없었다. XX동에 있는 교회가 OO교회만은 아닐 것이었다. 교회 이름을 물어보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그렇게 한 데에도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길 꺼리고 있었다. 사이비 3인조가 “XX동에 있는 교회예요.”라고 대답했을 때와 똑같이.


남편이 퇴근했다. 

“오늘 재밌었어?”

“여보, 내가 괜히 의심하거나 착각하는 걸 수도 있는데, 들어봐.”

남편에게 그들끼리 나눴던 대화와 내게 했던 성경 모임 제안, 그리고 내가 우려하는 바에 대해 이야기했다.

남편이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거기네. 맞네.”

남편이 이번엔 무자비한 형사의 얼굴로 말했다.

"우리 건물 현관 비밀 번호, 그 아줌마가 알려준 거 아니야?"

온몸의 털이란 털이 곤두섰다.

“서, 서, 설마아…….“

사이비 3인조 사건에서 풀리지 않는 단 하나의 의문이었다. 비밀 번호를 눌러야만 들어올 수 있는 건물을 대체 어떻게 통과했을까? 당시 우리가 살던 다세대 주택 건물엔 학원 선생님인 독신녀 한 가구, 아이를 어린이집 종일반에 맡기는 맞벌이 부부 가족, 그리고 우리까지 단 세 가구만 살고 있었기 때문에 출근 시간 이후부터 저녁 시간 사이에 찾아온 외부인은 내가 문을 열어주지 않는 한 아무도 들어올 수가 없었다.

“그런 것 같아? 아닐 수도 있잖아. 일단, 그 모임에 한 번만 나가보고 결정할까?"

그때까지도 바짝 서있던 내 털들은 나를 둘러싼 불경한 기운을 제발 좀 알아차리라며 분명히 경고하고 있었지만 내 입술은 다른 말을 내뱉었다.

남편이 진지하게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성경 모임을 갖기로 한 날까지 사흘이 남아있었다. 밤 사이 많은 생각과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한창 외롭고 고된 시간을 보낼 때 시간과 정성을 나누어준 그 사람이 나를 대하는 매 순간 전도하려는 의도를 품고 있진 않았을 것이라 믿고 싶었다. 그럼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그 교회에 가게 되면 그들이 얻게 되는 건 무엇일까? 그런데 정말 확실한 걸까? 반무당 같은 남편의 직감과 일제히 노려보던 털들을 믿어야 하는 걸까? 나는 왜, 이와중에도, 한 번 정도는 그 모임에 가볼까, 미련을 내비쳤을까. 아- 싫다.


다음 날 오전, 옆 집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저 아무래도 성경 모임에 나가기 힘들 것 같아요.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답이 왔다.

어머, 무슨 일 있어요?
지민이 때문에 힘든 거면 걱정 말아요. 다 같이 돌보면 되니까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혹시 OO교회예요?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답이 빨리 오지 않았다. 아니라고 해요. 아니라고 해요. 사람 잘 못 봤다고 화를 내든지, 그런 교회는 처음 들어본다고 해요.

아, 저희 교회 아시는구나. ^^

오 마이 갓.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현기증이 났다.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했다.

혹시, 저 여기 사는 거 교회 분한테 이야기하셨나요?

답이 빨리 오지 않았다. 아니라고 해요. 아니라고 해요. 제발.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다. 내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릴 것이 분명했다. 

또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다.

우리 통화해요. 제가 다 말씀드릴게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저희 교회 이상하지 않아요.
지민 엄마 또래의 젊은 엄마들도 무척 많아요. 같이 시간 보내면 정말 좋을 거예요.
예배드리러 한 번만 같이 가볼래요? 혼자서 아기만 돌보고 있으면 힘들잖아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충분했다.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그들의 표적이 될 정도로 외로움을 질질 흘리고 다니는 중이었는지 미처 몰랐다.

아니요. 이제 연락하지 말아 주세요.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전화가 왔다. 두 번, 세 번. 모두 받지 않았다.

미안해요, 지민 엄마. 많이 불편했구나. 그럼 모임에 나오기로 한 건 없던 일로 해요.

그날 또,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잠시나마 '응답하라, 1988'을 꿈꿨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고, 완연한 봄기운은 사이비 소동에서 받았던 상처들을 상당 부분 치유해줬다. 지난 시간에 집착하기엔 내 눈앞의 아기가 너무나도 빨리 자라나고 있었다.

유모차에 제법 익숙해진 아기와 산책을 끝내고 집으로 들어가던 어느 날 오후, 건물 앞에 눈에 익은 두 명의 그림자가 기웃거리고 있었다. 옆 집 엄마와 단발 생머리 여자였다. 다시 만나면 화가 날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조금, 반가웠다. 어느덧 미움과 분노는 사라지고, 좋았던 추억만 남아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의 예배에 함께 가고 싶은 건 결코 아니었다.) 나를 먼저 발견한 단발 생머리 여자가 옆 집 엄마에게 내가 왔음을 알렸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먼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지민 엄마, 잘 지냈어요?"

여전히 친절하고 다정한 목소리. 들깨 무나물을 전해줬을 때의 그 미소. 그리움이 흐릿하게 피어올랐다.

"네. 잘 지내셨죠?"

"응응. (그 새 많이 자란, 유모차의 아기를 보고) 어머, 많이 자랐네. 정말 많이 자랐다. 지민아, 이모 기억해? 나 왜 눈물이 나려고 하지?"

옆 집 엄마의 눈시울이 빨개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나 또한 눈물이 차올랐다. 이놈의 눈물은 언제부턴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비집고 나온다.

옆 집 엄마가 이어서 말했다.

"뭐 좀 전해주고 싶은 게 있어서 왔어요.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크게 기대 안 했는데 이렇게 만났네."

하얀색의 두터운 서류 봉투를 건넸다.

"이게 뭐예요?"

"집에 들어가서 찬찬히 잘 읽어봐요.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고. 우린 애들 데리러 갈 시간이라 가볼게요."


집에 들어와 봉투를 열었다.

나는 기함(氣陷)했다.

봉투 안에는 50페이지에 달하는 종교 홍보 유인물이 들어있었다.

그리움도 추억도 훠이훠이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훠이훠이~


*


직감이 수 없이 빨간 신호를 깜빡이는데도 애써 모른 척했다. 모른 척하고 싶었다.  

비단 고립감과 외로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엄마가 되고 나니 부족함 투성이인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져 울적할 때가 많았다. 마음이 튼튼하지 못했던 것이다. 

초라하지 않은 것을 초라하다고 해석해 스스로를 병들게 했기에 그들은 그 병든 냄새를 맡고 다가왔다. 그리곤 친절한 미소와 다정한 말씨로 살살, 부드럽게 잘도 어루만져줬다. 


내면을 단단히 세워두지 못하고 혼잡한 말에 그대로 현혹된 내 탓이다.

사람이 할퀴고 간 자리는 참 쓰라리다.

그래도 들깨 무나물의 맛은 굉장했다.


160315

“에미야, 너 그래서야 되겠니?”





(사이비의 추억까지 포함하여 내 삶은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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