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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미 Apr 18. 2024

아무튼 나는 다시 배우가 됐다.

10년 만의 복귀

 


복귀


2023년 7월.

10년 만에 다시 연극무대에 복귀했다. 아이는 아홉 살, 나는 마흔 살이 된 해였다.

2008년도에 데뷔 후 그 해에 공연했던 무대에서 복귀작을 올리려니 감회가 새롭고 감격스러웠다.

그러나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이 압도적이었다.


10년 만에 무언가를 다시 한다는 것은 홀로 냉동인간이 됐다가 깨어나 모든 것이 최첨단이 된 세계를 더듬거리면서 나아가는 것과 같았다.

무서움을 넘어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다시 연극을 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아이 없이, 나 혼자서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혜화역으로 연습하러 가는 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서둘러 나갈 채비를 하다가 언뜻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했다.

지하철 창문에 비친, 왠지 근심 어려 보이는 눈빛의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어딘가 숨고 싶어졌다.

혼돈과 혼란의 연습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쉼 없이 조잘거리는 아이의 투명한 눈을 들여다보면 새로운 변화에 겁먹고 허둥거리는 나 자신이 엄마로서 부끄럽고 미안했다.

한밤 중 무언가에 놀란 듯 잠에서 화들짝 깨어나 조여드는 가슴을 부여잡고 남편과 아이가 듣지 못하도록 숨죽여 끄윽끄윽 울기도 많이 울었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했다.


너 누구야?
네가 원하는 게 뭐야?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건 현재진행형이다.

아무튼 나는, 2023년, 눈물과 콧물과 피와 땀이 서린, 총 세 편의 크고 작은 공연을 올렸고,

다시 배우가 됐다.




적극적 기다림


현재 나는 기다리는 중이다. 다음의 작업과 인연을. 배우의 숙명은 기다림이라는 걸 깜박 잊고 있었다.

치열한 연습과 공연 이후, 다시 일상이 소강상태가 됐을 때, 이제 다시는 무대에 서지 못하는 것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마음 한편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다.

‘기다림’은 수동적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언제 나에게 관심을 가져줄지 모르는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무력감과 무능감을 동반한다.


그리하여 나는, ‘적극적으로’ 기다리기로 결심했다.

기다리고 있는 내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키우고 발전시키며 나의 때를 기다리리라. 이것은 오디션이나 다른 여타의 시도를 하면서,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것, 나를 성장시켜 주는 것, 마지막으로 내가 삶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가족)을 돌보는 작업까지를 포함한다.

물론 꾸준히 캐스팅 콜을 받고, 공연을 이어나가고 싶다. 하지만 그것만을 목 빠져라 기다리며 살진 않겠다.

삶의 여러 요소들을 적절히 균형적으로 조율하는 기술과 적당히 힘을 빼고 부드러운 긴장을 유지한 채 꾸준히 그릿(Grit)하는 능력은 10년 전 마주했던 ‘죽음’과 ‘엄마’라는 자리가 만들어준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앞으로의 글들은 내가 10년 만에 다시 배우로서 무대에 서기까지의 좌충우돌 스토리를 포함하여, 이후 다시 무대에 설 때까지 적극적으로 성장하면서 기다리는 시간에 대한 글이 될 것이다.


어쩌면 계속 무대에는 못 선 채 기다림의 글만이 이어질 수도 있겠다.

그래도 좋다! 하하하!



브런치북 [죽음을 명상하는 엄마 입니다]​​ 죽음이 알려준, 삶의 소중한 것들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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