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밴드2에 참가한 녹두. 처음보자마자 녹두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제야 쓰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다른 참가자에 대해 우선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녹두에 대한 글이 후순위로 밀리게 된 것인데요. 그 뒤로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글을 못 쓰다가 이제야 작심하고 쓰게 된 것입니다.
녹두에 대한 첫 인상을 여과되지 않은 상태의 날것 그대로 말씀드린다면 ‘재능, 클래식, 천재...’ 이런 류의 것으로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머릿속에 스쳤던 생각을 잠시 꺼낸 것이니 혹시라도 너무 지나친 과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8월 30일의 무대에서는 전부 클래식 연주자들로만 팀을 구성해서 노래와 연주를 들려주었는지라 클래식이라는 말이 생소하게 들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첫 무대와 두 번째 무대에서는 결코 클래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때의 무대에서 클래식을 느꼈다는 것은 나름 특별한 감각이었다고 해도 되겠는데요.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녹두가 밴드를 구성하고 밴드를 통해 노래와 음악을 들려주지만 그 안에, 정확하게 말하면 그 편곡에서 클래식 바탕의 기본기와 향기가 어우러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녹두가 대중음악을 못한다는 말이 아니고 편곡 실력이 아주 뛰어나다는 뜻에서 말씀드린 겁니다.
더군다나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는 타악기 마림바를 이용한 편곡은 녹두의 예술성까지도 내다보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니 이 대목에서 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혹시, 천재 아니야?’라는 내용이었다는 것을 편하게 꺼내 놓습니다. 녹두 안에 내재되어 있는 음악적 예술적 속성에서 그런 끼가 있었고 또 느껴졌다는 말이니까요.
그래서 즉시로 들었던 생각은 ‘녹두를 대중음악 울타리 안에만 가둬 놓기는 아깝다’는 것이었습니다. 비범한 편곡 실력을 넘어서 독창성이 가득한 예술성까지를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더욱 갈고 닦아서 넓고 큰 무대로 더 넓은 영역으로 무한히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대중음악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 같은 실력, 뭔가 음악 아닌 다른 장르에도 엄청난 재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사라지지 않았었는데요. 이것은 어디까지나 저의 상상이 아니고 녹두 안에 내재되어 있는 잠재성의 능력에 의해 발생되고 파생된 것임을 말씀드립니다.
그런 녹두가 30일 방송에서 대니구, 윤현상, 김솔다니엘과 함께 팀을 꾸려 라디오헤드의 No Surprises를 클래식 연주로 들려주었네요. 이 무대를 보면서 제 예감이 틀리지 않았구나 싶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녹두는 꽉 찬 음악도 구사할 줄 알지만 이렇게 비어 있는 음악, 비워버리는 음악도 할줄 아는군나 싶어서 더없이 좋았습니다.
열정과 냉정 그 분야나 감정을 다 이미지화 하거나 청각적으로 구사하면서 구현해내는 일은 그리 만만한 작업이 아닙니다. 그런데 녹두는 진한 열정의 그림같은 노래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과시하더니 이렇게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또는 냉정을 유지하면서 과장을 버리고 순수한 음을 다루는 노래에서도 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주었습니다.
녹두팀이 부른 라디오헤드의 No Surprises를 보고 들으면서 아쉬웠던 것은 조별 순위에서 1위를 하지 못해 결국 김솔다니엘이 탈락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1위를 했다면 첼로를 하는 김솔다니엘도 올라가게 되어 그 웅숭 깊은 첼로 소리를 계속 들을 수 있었을 텐데요. 그 점이 못내 아쉽습니다.
심사위원의 평가도 썩 좋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심사위원 사이에 엇갈리기도 했었구요. 그런데 심사와 관련해서 대부분 동의를 해왔지만, 이번에는 좀 다른 의견을 내고 싶습니다. 보는 시선의 각도 차이라고 할까요? 또는 방송에 예속되어 있느냐, 아니면 방송 밖에 있느냐의 차이이기도 하겠습니다.
녹두팀의 No Surprises 무대는 나무만 보면 안 되고 숲을 함께 봐야 하는 무대였습니다. 나무만 보는 식으로 No Surprises 무대를 보면 ‘잘했는데 웬지 허전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또는 어떤 심사위원은 약하다고 하는데 어떤 심사위원은 아주 좋다고 하는 식의 취향 심사로 첨예하게 갈릴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그런 현상을 종종 보기도 했습니다.
숲을 보는 식으로 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은 당연히 녹두의 이전 무대들의 연장선 위에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렇게 잘하는 무대가 있었는데 이런 것도 할 줄 아네? 이런 정도의 표현이나 감정인 것이죠. 그렇게 되면 녹두팀의 No Surprises 무대는 장점이 더 부각될 겁니다. 녹두의 스펙트럼 안에서 조명이 될 게 당연하니까요.
실제로도 그렇게 보는 것이 맞습니다. 녹두의 음악이나 편곡은 모든 곡이 다 결이 다릅니다. 언제나 똑같은 스타일로 하지 않습니다. 식상함은 녹두에게 먼 개념입니다. 그래서 녹두가 만들어서 보여주는 그 다른 결을 다른 결대로 섬세하게 봐줘야 합니다. 그것들을 다 같은 입장에서 보게 되면 No Surprises 무대가 좀 싱겁게 보이게 되는 것과 같이 이치라고 할까요.
녹두팀이 부른 라디오헤드의 No Surprises 무대는 여백과 여운으로 충만한 무대였습니다. 마치 여백과 여운을 편곡했다고 해도 될까요. 또한 화성의 무대라기보다는 선율의 무대였습니다. 찐득한 유화가 아닌, 섬세하게 그려낸 맑고 투명한 수채화처럼 담백한 무대였습니다.
녹두의 또 다른 영역에 대한 관심과 재능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무대가 끝났는데요. 녹두의 미래는 어떨까요? 분명 아주 유능하고 뛰어난 뮤지션이 되어 있을 겁니다. 녹두의 미래는 녹두의 현재가 증명해주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