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의 잠 못 이루는 밤

단 하루라도 푹 자고 싶은 고백론

by 찰라

밤은 모든 생명이 안식을 찾는 시간이지만, 요양병원의 24시간은 멈추지 않는 시계추처럼 돌아간다. 1시간 간격으로 깨어나는 아내를 부축하며 비몽사몽간에 몸을 일으킬 때, 인간의 정신은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초월의 영역에 들어선다.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난치병과 싸워온 아내 곁을 지키며, 이제는 2년째 좁은 간이침대에서 밤을 지새우는 한 남자의 고백은 '잠'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욕망조차 '소원'이 되어버린 지독한 역설을 보여준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야말로 윤리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아내의 고통 섞인 부름에 응답하는 나의 행위는 단순한 '돌봄'을 넘어,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지극한 존재론적 응답이다.


하지만 인간의 육체는 무한하지 않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소망하는 '단 한 번의 깊은 잠'은 이기심의 발로가 아니라,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 영혼이 보내는 마지막 구조 신호와 같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뜨거운 감정이라 말하지만, 사실 사랑의 완성은 '인내'와 '반복'에 있다. 1시간마다 반복되는 부축의 행위는 아내의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밧줄이다. 그러나 밧줄을 잡고 있는 사람의 손목이 끊어진다면 밧줄은 더 이상 기능을 할 수 없다.


철학적으로 볼 때, 간병은 '나'와 '너'가 하나가 되는 과정이지만, 그 과정에서 '나'라는 존재가 완전히 소멸해 버린다면 그것은 돌봄이 아니라 함께 침몰하는 배가 되고 만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역설적이게도 '거룩한 거리 두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아내를 사랑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아내로부터 잠시 눈을 떼는 용기가 필요하다.


잠은 단순히 육체의 휴식이 아니라, 내일을 견디게 하는 정신의 재무장이다. 잠을 청하는 시간은 아내를 외면하는 시간이 아니라, 더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아내의 손을 잡기 위한 '사랑의 예비 시간'이다.


전문적인 간병 서비스나 주변의 도움을 잠시라도 빌리는 것을 '부족함'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아내 곁을 지키고 있다. 내가 어리석은 것일까.


하지만 타인의 손길을 빌려 내가 잠시 쉼표를 찍는 것은 긴 마라톤에서 숨을 고르는 지혜로운 주자의 선택일 수도 있다.


지난 30년 헌신은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우주를 지키는 사랑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 우주를 계속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 자신에게 '잠'이라는 작은 안식처를 허락해야 한다.


병실의 창밖으로 먼동이 틀 때, 비몽사몽간에 마주한 아내의 얼굴에서 우리는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책임감을 본다.


하지만 그 책임감이 빛나기 위해서는 그 주체인 내 생명력이 마르지 않아야 한다. 오늘 밤은 부디, 아내와 나의 고단한 영혼이 짧게라도 깊은 어둠 속에서 평온한 잠의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림은 AI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