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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니 Aug 04. 2020

울고 웃고 싶소


감정이란 게 무엇인지 궁금한 적이 있었 단다. 우리는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종종 하잖아. 

그런데 마음이란 게 무엇인지, 마음이라는 장기는 없으니 마음은 결국 온통 뇌의 활동인 것인지,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끓어오르는 감정'이라던가 '냉철한 이성' 따위의 모호한 말을 쓰는건지, 

모든 류의 신비한 신화도 다정한 로맨스도 사실 뇌가 계획하고 구상한 시나리오일 뿐인지 

오랫동안 궁금해한 적이 있어. 어떤 감정들은 태어날 때부터 내 안에 내재되어 있어.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아기가, 배꼽의 딱지조차 떨어지지 않았고, 시력도 청력도 

축축한 양수 속 동굴에 익숙한 아기가 자신을 낳아준 몸의 목소리를 듣고 웃는 모습을 볼 때, 

뜻대로 되지 않는 불쾌감을 표현하기 위해 작은 얼굴을 찌푸려 악을 쓰고 우는 모습을 볼 때, 

그래. 어떤 감정들은 참 원초적이구나, 느낀 단다.  


하지만 서른 둘의 나는 그런 원초적인 감정이 그리울 정도로, 

매일 매일을 복잡스런 감정과 마주하고 살고 있어. 수치심, 죄책감, 열망과 허탈감, 자괴감 같은 것들 말야. 

일주일 전에 세상의 빛을 본 작고 순수한 동물는 마주할 필요가 없는 감정들 말야. 

때로는 이런 실타래같은 감정들을 내려놓고, 그저 울고 웃고 싶단다. 


슬퍼서 울고, 행복해서 웃고 싶어. 


하지만 너도 알지? 어른들의 세상에 그렇게나 깨끗한 눈물과 웃음은 드물다는 걸. 

그래서 사람들은 아기를 낳나봐. 자신은 더이상 그럴 수 없지만, 오롯이 투명한 슬픔과 기쁨만으로 

울고 웃는 존재의 신비를 목격하기 위해.  


감정이 그저 뇌의 작용이라면, 세상을 학습하느라 무거워진 어른들의 뇌는 

별 수 없이 복잡하고 아이러니한 감정들을 배출하는거겠지. 언젠가 네가 했던 말을 기억해. 

어른이 되버린 우리가 불쌍하다고, 내게 너무 복잡한 기분이 들때면 초콜렛을 잔뜩 먹고 

슬픈 영화를 보며 울어버리라고 했지. 너는 내게 원초적인 감정으로 치유할 것을 권했던 거야. 

무얼 치유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감정이란게 도통 무엇인지 알려고 애쓰지 않아. 

의사들이 TV에 나와서 그러더라고. 


-우리는 뇌에 대해 무궁무진하게 알아갈 것이 많습니다. 신비의 영역인 셈이죠.


우린 신비한 존재인거야. 다들 엄청난 미스테리를 두개골 안에 꽁꽁 숨겨놓은 채로 

또다른 신비의 샘을 찾아 깊은 바닷속에 촉수를 빛내는 물고기에 이름을 붙이고, 

위성보다 더 멀리에 있는 행성에서 생명의 흔적을 찾기 위해 애쓰는거지.


너를 못 본지 많은 해가 지났어. 너만큼 나의 감정의 심연을 뒤흔드는 사람들 만나본 적이 없네. 

너에 대한 감정은 사랑보단 절망에 가까웠고, 그 절망은 본능처럼 느껴졌지. 

어디서든 잘 지내길. 초콜렛을 잔뜩 먹고 영화를 보며 우는 나날들이 나보다 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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