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 이야기 :(4) 지나간 시간은 흘려보내라.
‘지금’ 내가 보는 진짜 모습이니까.
아이들은 자라면서 수 십 수백 번도 마음이 바뀌고 좋아하는 게 바뀐다. 하던 걸 안 하기도 하고, 안 하던걸 하기도 한다. 우리 아들은 고기만 먹으려던 시기도 있었고, 야채만 먹으려던 시기도 있었다. 어떤 아이에게나 그저 흘러가는 성장기 일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바로 ‘지금’ 내 아이의 모습이다. 과거의 모습도 미래의 모습도 사랑해주고 잘 살펴주어야 하지만 아이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건 바로 ‘지금’의 모습이다. 필자의 아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걸음을 걸었고, ‘코끼리 어딨어?’ 물으면 자기 방으로 쫓아가서 벽에 있는 코끼리 그림을 가리켰다(포인팅). 동요 노래를 불러주면 거기에 맞춰 율동을 하는 걸 좋아했고(모방), 짧은 팔을 머리 위로 올려 ‘사랑해요’를 표현하는 걸 즐겨했다(모방). 하지만 어느 날부터 모방이나 포인팅 같은 행동들이 줄었고, 언제부턴간 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자라면서 좋아하는 게 바뀌는 거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예전에 했으니까.. 또 언젠가 알아서 하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기다리기만 했었다. 그러다 나중에 아이가 또래 아이들보다 발달이 처진다는 것을 인지했고, 그때가 발달의 정체 및 퇴행을 보였던 시기라는 것을 알았다. 단순히 성장과정 중 표현하거나 소통하는 방식을 바꿔가는 거라면 문제가 안되지만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이 줄어들고 혼자만의 영역만 가지려고 할 때는 아이를 객관적으로 살펴보기를 권한다. 현재의 객관적인 판단은 조기개입의 필요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과거에 메어있다는 건, 지금이 아닌 과거에 살고 있다는 것
느린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의 카페를 가면 많은 엄마들이 ‘내가 미리 알아차렸다면 달라졌을까’, ‘내가 조금 더 세심하게 관찰했으면 달라졌을까’, 같은 후회의 글들을 적어 둔다. 필자 역시 일하는 엄마라 필요한 부분을 일찍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고, 다른 아이들보다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적어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죄책감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발달센터에서 만난 한 엄마는 오히려 나와 반대로 좀 더 일찍 기관에 보내주어서 또래와 어울리게 해주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라는 후회를 하고 있었다.
스펙트럼 장애(아이의 영유아기에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3) 편 참조) 가진 아이들은 유전의 영향인지 환경적인 영향인지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극한의 방치와 학대와 같은 양육상황이 아니라면 부모의 양육태도는 스펙트럼 장애에 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연분만/제왕절개, 모유수유/분유 수유, 가정보육/기관보육........ 아이를 키우다 보면 많은 순간 선택지가 찾아온다. 어떤 게 더 낫다는 확실한 근거도 없으며 많은 추측들만 있을 뿐이다. 하물며 아이들의 기질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다양하고, 각 가정에는 그들만 가지고 있는 상황이 있다.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많아지면, 결과를 예측하기도 더더욱 어렵다. 즉 어디에도 정답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엄마들은 자기가 한 선택들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더 나은 선택은 없었을까.. 후회를 한다.
지난 간 시간이 돌아오지 않는다. 인터넷 소설처럼 나도 모르게 타임슬립을 한다거나 원하는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지난 선택을 후회하는 게 무슨 소용일까. 아이의 시간은 하루 24시간으로 제한적이며 하루하루 눈코 뜰 새 없이 흘러가는데 그 시간을 후회하는 데 쓰는 게 더 아깝지 않을까? 내가 미래를 위한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거로 인한 후회가 아니라 과거를 발받침 삼아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오늘도 자라고 있는 우리 아이의 모습을 놓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