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 이야기:(5) 무엇보다 행복하게.
아이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다. 여자든 남자든, 가난하든 부자든, 아프든 아프지 않든, 혹여나 앞을 보지 못하거나 다리가 한쪽 없더라도 그건 그 아이의 탓이 아니며, 아이의 의지대로 태어난 게 아니기에. 생명의 탄생은 위대하며 아이는 숭고하다. 많은 부모들은 갓 태어난 아이를 안는 순간 그걸 느낀다. 이 위대하고 숭고한 존재를 행복하게 키워줘야겠다.. 그러다 아이가 자라면서 한글도 빨리 떼주면 좋겠고, 공부도 잘했으면 좋겠고, 체육도 잘했으면 좋겠고.. 하나씩 아이에게 바라는 것이 생긴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고민에 빠진다. 나는 아이를 ‘훌륭한 어른’으로 키우려는 걸까 ‘행복한 사람’으로 키우려는 걸까.
둘째가 태어나 육아휴직을 시작한 지 3달쯤 됐을 때,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는 날이었다. 큰 아이는 유치원을 등원시키려 장화를 신기고 가방을 메어주고 우비를 입히고 작은 우산을 들게 하였다. 늘 일을 해온 나는 등 하원을 항상 차로 시켰기 때문에 비가 오는 날 우비를 입고 외출하는 경험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였다. 내 기대감에 비해 아이에겐 엄청나게 어려운 경험이라는 것이다. 불편한 우비를 입고 우산을 들고 가는 아이는 팔에 힘이 없을뿐더러 청각자극에 예민해 우산에 비 떨어지는 소리까지 정말 힘들었을 텐데.. 엄마인 나는 ‘우산 제대로 들어요~. ‘손 내밀면 옷 젖어요~’ 같은 잔소리만 늘어놓고 있었다. 겨우겨우 유치원을 데려다주고 돌아오는데 ‘아.. 아이에겐 오늘인 최악의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겠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엄마의 기대치가 아이의 모습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엄마의 실망감은 커지고, 그 감정은 그대로 아이에게 전달된다. ‘엄마가 이 만큼 노력하는데 넌 왜 그 모양이니’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미 아이와의 소통은 끝난 것이다. 아이가 바라는 건 그런 노력이 아니라 함께 느끼고 즐기는 것이 아닐까.
자기 아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엄마들은 골든타임을 놓치기 전에 정상발달로 끌어올리고 문제행동을 중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달린다. 아이를 위해 열심히 달리는 건 무엇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 엄마의 모성이다. 하지만 그렇게 달리다 보면 어느새 과정과 목표가 주객전도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느린 아이를 중재하는 이유는 아이가 자라나 사회의 일원으로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행복을 찾아주기 위함이다.. ‘정상발달’이라는 그 자체가 목표로 옮겨가게 되면 아이를 ‘정상’이냐 ‘자폐’냐에 초점을 맞추어 아이의 행동을 부정하고 수정에만 연연하게 된다. 자신을 부정당하는 아이가 과연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까?. 느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말을 하지 않던 아이가 간단한 단어를 얘기하기 시작하고, 눈을 마주치기 시작했을 때 더 많은 것을 알려주기 위해 그림카드를 꺼내 들며 아이들을 쫓아다니는 것이다. 정작 그 아이는 이제야 입을 떼는 방법을 알았는데 말이다.
아이가 4살, 5살, 6살,,,, 학령기가 되면, 부모들은 초조해진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하는데 도움반을 보내야 할까 일반학급을 보내야 할까. 아니면 특수학교를 보내야 할까. 그러려면 지금 착석부터 가르쳐야 하나? 느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숙제가 정말 많다. 하지만 그 숙제도 아이에게 최대한 맞추어야 하기에 부담감과 압박감은 배가 된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아이들은 보통 아이들보다 불안도가 높아 환경이나 상황 변화에 예민하고 스트레스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 불안도가 심해지면 보통은 이해하기 어려운 상동 행동을 보이거나 강박 또는 집착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아이가 힘들까 봐 중재를 포기할 수도 없기에 더욱더 막막하다.
결국은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어떤 치료도 놀이도 아이의 행복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조금은 더딜 수도 있지만 탄탄하게 행복하게. 견고하게 쌓은 성은 무너지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의 정서도 믿음과 지지 속에서 좀 더 견고해질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조급함에 지지 않는 엄마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의 영유아기에 알았다면 좋았던 것들’이란 글을 5편으로 나누어 쓰면서, 마지막 5편을 완성하기까지 1년이 걸렸다. 물론 체력이 부족해 글쓰기를 놔버린 이유도 있지만, 정작 제목을 ‘무엇보다 행복하게’로 정해놓고 ‘내가 정말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고 있는 가’에 대해 답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15개월에 가까운 휴직을 하며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아이는 존재만으로도 사랑받아야 하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7살이 된 우리 아들은 앞으로 더 행복한 날만 있길 바라고 다른 엄마들이 조금 더 행복에 다가가길 기도하며 이 시리즈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나는 앞으로 우리 집 남자 셋(남편+아들 둘)과 행복하게 살 방법에만 집중해 조급함과 초조함을 무찌르는 힘을 모을 예정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