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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0] 무발화 센터를 가다.

진정한 재활치료의 시작

by 느리나이

Prologue. 육아휴직 시작의 2개월 전.


2019.10 (만 47개월)


엄마 : '뭐 먹고 싶어요?'
몽이 : ‘쩨’
엄마 : 젤리
몽이 : ‘쩨’
엄마 : 쩨?
몽이 : ‘리’


묻는 말에 곧 잘 대답하긴 하지만 여전히 한 음절로만 얘기해준다. 젤리를 알고 '제', '리' 도 말할 줄 아는데 왜 여전히 한 음절로 만 얘기하는 걸까... 3번째 언어 치료 선생님과 6개월째 제자리걸음 하는 기분이다. 할 줄 아는 발음이나 수용 언어는 늘고 있다고 하는데 어째서 여전히 단어를 얘기하지 못할까.


언어 발달 검사 결과지를 본 모 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님은 아이가 느리지만 언어발달이 늘고 있으니, 굳이 언어치료를 늘리지 말고 또래 자극을 주기 위해 놀이터를 많이 다녀주라며, 아이가 잘 노는 걸 보니 문제가 없다고 하셨다.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몽이가 말해주길 기다리는 어느 날 지인의 추천으로 '무발화 센터'를 방문했다. '엄마', '아빠'를 할 줄 알고, 한 음절이지만 소통이 되는 아이라 무발화센터를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답답한 찰나에 변화를 주는 게 좋을 거라 생각했다. 상담을 마치고 수업을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그 센터는 꽤나 입소문이 난 곳이었고, 그곳에서는 몽이가 말할 때 호흡을 조절하는 걸 가르치며 음절수를 늘려주는 수업을 시작했다.

(언어 센터를 무발화센터로 옮기면서, 주1회 하던 수업을 주2회로 늘렸고, 추후에 주3회까지 늘렸다.)



그로부터 3주 뒤,


언어치료 선생님 : 어머니, 몽이가 ‘선생님’이라고 너무 예쁘게 말하네요.
엄마 : 네? ‘선생님’을 말한다고요?
언어치료 선생님 : 네 어머니. 직접 보여드릴게요.


선생님은 몽이를 데리고 같이 ‘선생님’이라고 말하셨고, 몽이는 선생님과 동시에 ‘선생님’이라고 말하였다.. 이럴 수가.. 비록 선생님과 동시에 얘기해야만 말을 하지만 단어를 말하다니... 나에겐 기적 같은 순간이었다. 너무 기분이 좋아 집에 와서 남편에게 보여주고, 남편도 아이와 같이 동물 이름을 말하며 기적 같은 순간을 맞이했다.


일반 언어치료실에서는 화용 언어, 즉 아이가 말을 할 때 사용하는 단어의 수를 늘려주는 곳이라면, 무발화센터는 호흡, 조음, 발성과 같은 기능적인 부분을 가르쳐 주는 곳이다. 히가시다씨가 쓴 책을 보면서 다시 한번 느꼈지만 자폐스펙트럼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말로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머릿속에는 수만 가지 생각이 떠다니고 사람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만, 입을 직접 움직여 말소리로 내뱉는 게 어려운 경우가 많다. 몽이는 화용 언어를 늘려주기 전에 일반적인 사람들처럼 말을 할 때 어떻게 숨을 쉬어야 하는지, 입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알려줘야 했던 것이다. 단순히 대답도 하고, 10개도 안되지만, 말하는 단어도 있다는 사실에 ‘무발화 센터’가 뭔지도 모르면서 갈 생각을 해보지 못했던 사실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 당시를 생각해보면 몽이는 두 음절을 연속해서 말할 만큼 호흡이 길지 못했다. 촛불을 끌 때도 길게 불어서 끄는 걸 어려워했다. 그리고 엄마나, 다른 사람이 동시에 얘기해줘야만 말을 하는 건 입모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어려웠을 거라고 추측된다.


언어센터를 옮기며 아이가 단어부터 노래도 따라 부르기 시작하였기에(누군가 같이 불러주면) 옳은 선택이었다고 안도 한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몽이의 치료 개입이 얼마나 늦었는 지를 깨달은 것이었다. 그 사람이 의사든, 아이를 많이 키워 본 어른이든 판단은 엄마인 내가 하는 건데.. 막연한 기대만 가지고 아까운 골든타임을 다 놓쳐버린 것이 너무 한스러웠다. 어쩌면 나는 현 상황을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일이 너무 바쁘니까, 임신 중이니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하지만 난 이 날을 계기고 앞으로 주어 질 시간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보기 시작했고, 아이에게 필요한 모든 걸 해주리라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



목소리도 너무 예쁜 아들아, 엄마가 늦었지만 최선을 다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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