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둘러싸인 조지아 스키장, 동화같은 마을을 잊을 수 없는 이유
아직도 조지아 여행을 떠올리면 신비로운 동화 속 눈 밭이 가득한 잔상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걸 보면 나는 꽤나 그 여행이 좋았던 것 같다. 무언가를 얻어 가야지, 이런 걸 저런 걸 해봐야지, 하는 기대없이 남편이 예약해놓은 대로 떠난 5박 6일 여행은, 돌아보니 또 내게 크게 두 가지 감상을 남겨 주었다.
하나는 아이의 성장이 나에게 더없이 큰 행복감을 준다는 것. 나는 아직도 내가 어리고 철없게 느껴지는데, 그리고 내가 어제보다 (정량적으로)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삶에서 중요한 사람이지만, 아이 앞에 서있으면 어떨 땐 뒷짐지고 자식의 여정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노인이 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내가 정식으로 스노우 보드를 배운 건 이번이 처음인데, 삼일 간 남편의 타이트한 지도 아래 겨우 서서 비틀거리며 그닥 가파르지도 않은 초보코스를 내려 갈랑말랑 하는 모습을 본 구남편 현강사의 최종 평, "내가 전 여친, 전전 여친 포함해서 친구, 후배까지 못 해도 열 명은 가르쳐 봤는데 그 중에 제일 못하는 사람이 내 아내라니!" 남편의 놀림 반 놀림 반의 평가는 타격감 제로다. 전 여친들 중에 너가 제일 못생겼어, 도 아니고 보드 제일 못 타, 라고 해봤자 삼일 간 즐기지도 못하고 하위 10프로의 여자를 가르치느라 고생한 그만 그저 안타까울 뿐. 그건 별로 상관없는데, 내가 답답했다. 아 나도 저 사람들처럼 촤르륵, 하고 멋지게 가고 싶은데, 한심한 몸뚱이야 왜 이렇게 뜻 대로 안 움직이니. 다시 한 번 눈바닥에 누워 있는 내 옆을 한 차례 다 촤르륵 쓸고 가는 어떠한 자태, 아니 근데 너무 자그마한 자태를 뽐내시네, 바로 내 딸이었다. 일부러 넘어져 있는 내 옆을 보란듯이 스쳐 지나가는 나의 딸. 그런데 그 모습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네. 엄마는 이번에도 마스터하지 못하고 가지만, 너는 다르구나. 장한 것. 앞으로도 나를 넘어서서 무럭무럭 자라다오, 싶은거다. 다른 이야기지만, 어른들의 습득력이 아이들만 못한 데는 꼭 흡수하는 능력이 좋아서라고 만은 할 수 없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에 못지 않게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어른들은 너무 생각이 많다. 잘 안되면 '하 내가 무슨 부귀영화 누리자고 이걸 하고 앉아 있지', 소위 현타를 느낀다. 어떤 대가를 치르면 (대가랄 것도 없으면서) 꼭 그에 대한 반대급부를 원하고야 마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냥 한다. 재밌어서 그냥 하고, 재미없어도 엄마가 시켜서 좀 더 해보고, 그러다가 재미를 느끼면 더 한다. 김연아님 짤 보셨죠? 그냥 하는 사람이 해냅니다(찔려서 하는 이야기 아님).
조지아 여행에 대한 나의 감상, 그 두번째이자 마지막. 아직도 내가 여행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곳으로의 여정을 통해서, 여전히도, 새로운 나를 발견해 간다는 것이다. 나의 취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같이 여행을 간 남편과 아이에 대한 색다른 생각도 머릿속에 몽글몽글 떠오르고, 한 곳에서만 머물 땐 미처 못한 새로운 다짐도 해보게 된다는 것이 여행은 역시 좋구나, 싶었다. 많은 것을 보고, 좋은 곳들도 가봤지만, 새로운 장소가 주는 생경하고도 새로운 느낌은 우주적 관점에서는 그야말로 소시민이지만 개인의 존재로는 더없이 소중한 내게 또 다른 영감을 주었다. 아무 배경 지식없이 온 조지아, 그 곳에서도 작은 스키마을인 구다우리 스키장에 붙어있는 레스토랑들의 정취와 음식들이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홈메이드 와인과 겉바속촉의 돼지고기가 소박하게 잘 어울리는 식당 창밖으로 눈놀이를 하는 남편과 아이를 바라 보는 이 상황이 송구하리만치 소중했다. 내가 십대, 이십대 때 꿈꿨던 소중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이거였구나, 싶은 생각이 새삼 들었다. 겁도 없이 들어간 어두침침한 조지아 로컬 젊은이들의 핫플로 추정되는 바 에서 우리는 표정없는 이들의 살가움도 전해 받았다. 그전까지는 이 나라 사람들이 동양인을 별로 안 좋아하나, 했다. 앞으로 여행갈 때는 표정이나 제스처만 단편적으로 보고 판단하고 불편해 할 일은 적어질 것 같다. 문화의 차이로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는 사실은, 해외 체류자나 여행객이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도와주는 매우 매력적인 점이다. 이 점을 이용한다면 당신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다양한 경험이 쌓일수록 감흥을 느낄 기회가 적어진다고들 하지만, 그래서 더 소중한 어떠한 순간들을 포착한다면 더욱 더 감동할 수 있도록 기회만 나면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