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돌아보니) 이 글은 다시 봐도 공감합니다. 제 상식은 이 글에서 변한 게 없다는 뜻 같아요. 사람을 만날 때 직업이나 학벌을 안 볼 수는 없겠죠. 그런데 저런 게 인품을 설명해 주지 않는 다는 건 진리 중 진리입니다. 어쨌든 돈이나 명예가 있으면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기에, 이런 사실 쯤은 눈 한 번 질끈 감고 넘어갈 수 있어요. 하지만 대가는 치르게 된다는 것도 눈 감아서는 피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대가는 다양하겠지요. 가장 큰 대가는 스스로 행복하지 않으면서 주변에 '난 행복하다!'고 계속 말을 해야 살 수 있는 괴로움이 아닐까요.
(2017.6.17)
"직장인으로서는 훌륭하지만, 인간으로서는 나태하다!"
얼마 전에 친구와 카톡으로 나눈 이야기입니다. 굉장히 철학적인 멘트처럼 보이지만 잡담하다가 나온 얘기예요. 이 친구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고급 어휘를 뱉는 습관이 있어요.
어쨌든 기사로는 쓸 일 없는 ‘나태하다’는 어휘가 좋아서 계속 기억나는 줄 알았는데, 사실 저 짧은 말에는 굉장히 많은 내용이 함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우리 모두 어릴 때부터 ‘좋은 대학’ ‘돈 잘 버는 직업’ ‘명예로운 직장’을 강조하며 살았지만 ‘좋은 사람’은 강조한 적이 없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 부작용은 성인이 되면 정말 여실히 드러나더라고요.
기자라는 직업이 주는 장점 중 하나는 짧은 기간에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그것도 아주 다양한 사람들을요. 그러면서 깨달은 점이 있어요. ‘좋은 사람’은 겉으로 주는 직업과 학벌, 외모가 아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들러 말하길 "우리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말 주변이 없더라도 상대방의 관심사에 귀기울여주고, 아는 게 없더라도 콤플렉스가 아닌 질문을 던진다는 건 의외로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또한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면 나의 관심사만을 쏟아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세계에 대해 궁금해 하고 알아가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 정말 만나면 너무나 반가울 정도로 가뭄에 콩 나듯이 있었습니다… ㅠㅠ
어쩌면 제 문제일수도 있습니다. 매일 무슨 질문을 할까 고민하다 보니 이제는 좀 나를 궁금해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 외에 다른 것들에 대해 집중하고 ‘뭘 캐낼까~~~~~~~~~~~’ 머리를 굴리다 보니, 이제는 남이 좀 나를 살펴줬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자기 얘기만 하는 분들이 유독 더 갑갑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런 것들은 어릴 때부터 ‘국영수’가 아닌, 독서와 인간관계만을 통해 훈련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릴 때 친구와 진탕 싸우고 절교도 해보고, 사랑도 진흙탕처럼 해서 밤마다 술 먹고 전화하고 진상부리고. 이런 경험이 없으면 어떻게 성장할 수 있겠어요. 하, 대학교 때 도서관에서 토익 공부만 한 제 자신이, 정말, 너, 왜, 그랬냐…
가끔씩 질투와 샘 같은 못난 마음이 솟아날 때는, 제가 부족하다는 것을 그냥 인정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다시 다독여야죠. ‘나는 좀 부족하지만 착한아이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잘나갈 수 있을까’가 아닌,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정말 당장, 지금부터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건 우리들 자신만을 탓할 것은 아닙니다. 자책할 일만은 아니예요. 사회 현상을 볼까요?
광운대가 몇 년 전 국문학과를 없앴죠. 그리고 철학과를 유지하는 대학이 몇 개나 될까요. 그 부작용은 고스란히 ‘우리들’이 지게 될 겁니다. 지금이라도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고민, 우리를 위한 것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더 암울한 현실을 맞닥뜨리게 될 것 같아요. 직업과 대학은 아주 일시적인 ‘백’입니다.
아들러의 심리학을 다룬 책 ‘미움받을 용기’에서는 이런 내용을 강조합니다. 최종 목표는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니고 ‘우리를 위한 것’을 고민해야 한다고요. 이 말 뜻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