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부르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

by 박윤희

다이어리를 펼치면 가장 먼저 적어 내려가는 것은 그날 먹은 음식들이다.
가끔 다이어리를 쓰지 못하고 지나간 날이 있으면, 이튿날 한참을 고민하는 것도 역시 전날 먹은 음식들이다. 왜 이렇게 생각이 나지 않는 걸까.


아이에게 물어본다.
“우리 어제 점심 먹기 전에 뭐 먹었더라?”
아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 아들이 기억이 안 난다고 말하는 것은, 방금 본 것이라도 자기 마음에 없으면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엄마가 진짜 기억이 안 나서 그래.”
“그걸 왜 기억하고, 다이어리에 왜 적어요?”


하루 중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내가 어디에 가장 오래 머무르는지 생각해 본다. 나는 주로 주방, 싱크대 앞에 서 있다. 하루의 3분의 1쯤을 먹기 위해 수반되는 행동들에 쓴다. 먹고사는 일은 당연하지만, 먹기 위해 준비하고 먹은 뒤 정리하는 일은 꽤 고달프다. 정작 먹는 시간은 30분 남짓인데, 그를 위해 쓰이는 시간은 두 시간이 훌쩍 넘는다.


“잘 먹겠습니다.”라는 감사 인사로 시작되는 차려진 음식은 인정을 받는다. 하지만 수저가 휩쓸고 간 자리를 정리하고, 다음 음식을 위해 다시 준비하는 이는 투명인간이 된다. 무엇을 먹을지는 오래 고민하지만, 다채로운 음식 뒤에는 반복되는 행동만 남는다. 음식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을 위해 수반되었던 행동들의 의미 또한 희미해진다는 뜻이다. 이름이란 그런 것이었다.


기억나지 않는 이름들이 서글프기 시작했다. 특별할 것 없는 백반 한 상이라도, 각각의 음식에 이름을 붙여 기억해 보려고 한다. 내가 만든 요리의 이름에는 반드시 재료의 이름을 하나 이상 넣는다. 날것 그대로의 재료 하나에도, 분명한 의미가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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