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법
둘째를 낳고 육아휴직을 사용한 지 1년 만에 회사로 복귀했다. 혼자서 해외영업을 맡아 오던 내 자리는 그 사이 옮겨져 있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남자 직원과 타 부서에 있던 여자 후배가 내가 없는 동안 새로운 해외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은 탕비실 관리였다. 직원들의 당 충전을 위한 커피믹스와 주전부리를 주문해 선반에 채워 넣는 일이었다.
단합 체육대회 기획이라는 업무도 내려왔다. 하지만 장소와 프로그램은 이미 모두 정해져 있었고, 내 역할은 현장에서 사진을 찍는 일이 전부였다. 나는 어느 게임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카메라 화면 속 직원들은 한없이 즐거워 보였다. 나 역시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한 사람인 것처럼 웃으며 휴대폰 셔터를 눌렀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리에 있던 내가, 복직 후에는 그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동정의 눈빛조차 없었다. 오히려 각자의 일과 무관하다는 듯, 모두가 모른 체했다.
이 회사에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스스로를 설득했다. 버티는 자가 승자라는 말을 믿고 싶었다.
그리고 한 달여가 흘렀다. 내 휴대폰에는 미처 지우지 못한 체육대회 사진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복직 후 정확히 세 달이 되는 날, 퇴근 무렵 팀장은 나를 카페로 불러냈다. 그는 대표의 지시를 전달하러 나온 사람처럼, 짧은 말로 권고사직을 통보했다. 그 말을 남긴 채 자리를 떠났다.
나 역시 그 길로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더는 웃을 수 없었다. 가면 뒤에 숨겨 두었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가장 선명하게 남는 것은 그날의 말들이 아니다.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채 웃고 있던 얼굴, 부당함 앞에서 끝내 벗지 못했던 가면, ‘자기 일은 아니라는’ 동료들을 이해하려 애쓰던 마음이다. 모두 지나간 일이 되었지만, 그때의 나는 아직 그 자리에 남아 있다. 아무 일 없다는 얼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