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안 되는데, 커뮤니티를 왜 해?’에 대한 대답
얼마 전,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십수 개의 마론 인형을 가지런히 침대에 앉혀놓고 혼자 학교 놀이를 하던 장면. 기억하기로는 중학생일 때까지 이렇게 놀기를 즐겼던 것 같다. 아주 오랜만에 떠올린 장면이었는데 그와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사실.... 친구가 별로 없는 애였나?
친구가 아주 많지는 않았지만, 없는 편도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큰 무리에 끼는 편은 아니었어도 제일 친한 친구 그룹은 언제나 있었고, 친구가 없어서 외롭거나 심심하다는 감각을 느껴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저 장면이 떠오르자마자, 혹시 이 기억이 왜곡된 건 아닐까 하는 섬뜩함이 들었던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어린 시절과, 실제 나의 어린 시절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불안함. 뒤이어 나까지 세 명으로 구성된 친한 친구 그룹에서 나를 뺀 나머지 두 친구만 함께 놀았다는 걸 알게 되어 다음날까지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일과, 같은 반 친구 중 누군가의 생일 파티가 있는 날이면 초대장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로 가슴이 두근거렸던 일 같은 것들이 우르르 밀려들었다. 결정적으로, 내게는 초중고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 중 지금까지 연락하거나 만나는 애들이 거의 없다. 역시 나... 친구가 별로 없는 애였나? 그런 건가?
40대에 가까워진 지금도 친구가 많다고 할 수는 없다. 아주 친한 친구들이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있고, 그들과는 모두 일을 하며 만난 사이다. 다니던 회사의 선배였거나, 그 회사의 외부 필자였거나, 일로 만난 친구의 친구였거나, 일하며 기획자와 강연자로 만나 친해졌다거나 하는 식이다. '어떻게 일로 만난 사람이랑 친구가 돼요?'라고 물어보는 이들도 있지만, 10년을 훌쩍 넘긴 경력을 감안하면 또 그렇게 신기한 경우는 아닌 것 같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 내가 가장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고 그 때문에 반강제적으로라도 소속감을 느끼기 쉬운 집단은 회사, 또는 특정한 일터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회사 때문에 20대 후반이 되어 부산에서 서울로 사는 곳을 옮기고, 회사 안에서도 밖에서도 거의 회사 사람들만 만났다. 같이 회의를 하고, 마감을 하고, 퇴근을 하고 나면 회사 사람들과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고, 주말의 빈 시간을 같이 보냈다. 거주지를 옮기는 바람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회사 사람들만으로도 충분했다. 안전한 감각을 느꼈고 말이 잘 통했고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회사 바깥의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고, 하지도 않았다. 운 좋게도 그때 다녔던 회사의 사람들은 일과 일을 뺀 일상을 모두 나눌 수 있는 소중한 동료이자 친구들이었다.
인간관계가 너무 좁았다는 걸 깨달은 건 회사를 그만둔 이후였다. 회사를 그만두며 동료들과는 이전만큼 자주 만나지 않게 되었는데, 그러니 같이 커피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거나 가끔 도움을 주고받거나 안부를 묻거나 할 사람들이 정말로 없어도 너무 없었다. 큰일 났네. 나 친구가 너무 없네? 인생 길다는데, 앞으로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주변을 둘러보니 어릴 때부터 친했던 친구들과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부러웠다. 관계를 이어가는 것도 마음과 에너지가 드는 일인데. 저 사람은 친구들을 위해 자기 것을 기꺼이 쓸 줄 아는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내향인인 데다 사람도 별로 안 좋아하니까', 이렇게 쭉 살아도 어쩔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는 것. 처음 누군가를 만나는 자리에서 마음을 열기보다 일단 거리를 두고 보는 것. 나와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속으로 판별하고, 그에 따라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 부끄럽게도, 한때는 사람을 사귀는 데 다소 까다롭다는 나의 성향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은근히 자랑스럽게 여겼다. '아무나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차갑고 어려운 사람인 나'에 이상한 자부심을 느꼈달까. 세상이 나를 따돌리는 게 아니라, 내가 세상을 따돌린다는 듯한….
2019년, 어쩌다 처음으로 커뮤니티 만드는 일을 하게 됐을 때까지도 그런 태도를 버리지 못했다. 우리가 만드는 프로그램이나 행사에 오는 사람들을 환대하기는커녕, 그들과 눈이 마주칠까 봐 안절부절못했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참여자들과 스몰토크를 하며 자연스럽게 그 시간을 마무리하기보다, 입을 꾹 다물고 칼같이 현장을 정리하며 '어서 이곳에서 퇴장해 주세요'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온몸으로 뿜어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너무 피곤해서 눈이 잘 떠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에너지가 바닥난 상태로 침대에 누워 '역시 난 사람이 싫어'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다음에는 꼭 사람과 직접 마주해야 하는 일을 선택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나 2023년, 나는 여전히 커뮤니티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주요 업무고, '사람들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를 주로 고민한다. 뉴그라운드에서는 온라인 도구(슬랙)를 사용해 서로 연결된다. 퇴근길에도 일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면, 슬랙에 '퇴근길 일기'를 남기고 다른 멤버들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그들에게서 응원을 받는다. 매주 일요일 저녁에는 한 주의 회고를 함께 나누며 일에서 느끼는 기쁨과 슬픔을 공유한다. 가끔 오프라인으로 만나 점심이나 저녁을 함께 먹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것들이 특별하지 않은 활동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런 건 어디서나 할 수 있지 않나요? 그러나 원래 서로 몰랐던 사람들 사이에서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연결감과 안전감이 피어오르는 분위기를 나뿐만 아니라 멤버들이 다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 그 분위기를 바탕으로 일과 일 바깥의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장이 마련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여성 커뮤니티에 관한 책 <뛰어놀며 운동장의 기울기를 바꾸기>에서 ‘테크페미’를 운영하는 옥지혜 님은 '커뮤니티에서 인간됨을 배웠다'라고 말한다. 이 자리가 낯선 사람들을 기꺼이 환대하기. 도움을 잘 주기도, 받기도 하기. 힘든 것은 힘들다고 말하기. 누군가의 힘들다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무조건적인 응원과 지지를 보내기. 관계를 맺어나가는 데는 에너지가 들지만, 반대로 그 관계에서 에너지를 받을 수도 있음을 이해하기. 커뮤니티 만드는 일을 하는 동안 내가 알게 된 것들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오랫동안 고민했는데, 저 '인간됨'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확할 것 같다.
요즘 나는 어색한 표정으로 쭈뼛쭈뼛 현장에 들어서는 사람들을 웃는 얼굴로 맞이한다. 이름을 묻고, 말을 걸고, 내 소개를 먼저 한다. ‘여기에 기꺼이 시간을 써줘서 고맙다’고 인사한다. 멤버들 앞에서 어쩌다 실수를 해도 허둥지둥하지 않고 실수했다는 걸 바로 알린 다음 문제를 해결한다. 멤버들에게 먼저 만남을 제안하고, 만나서는 열심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과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는 거의 반드시 기분이 좋아진다. 이제 나는 ‘역시 난 사람이 싫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좋고, 그들과 만나며 자주 달라진다. 만남과 대화가 없다면 삶이 얼마나 빈약할까, 생각한다.
“커뮤니티로 돈 벌 생각은 내려놨어요.”
커뮤니티가 돈이 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답변을 돌려주고는 한다. 이 말은 대체로 진실이지만… 부분적으로는 거짓이기도 하다. 이왕이면 커뮤니티 만드는 일이 돈이 됐으면 좋겠다. 엄청난 수익은 아니더라도 이 일을 지속할 동력이 될 정도의, 운영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벌고 싶다.
그렇지만 이 일로 돈만큼 중요한 것을 벌고 있다는 걸 안다. 친구가 별로 없는 내가 커뮤니티를 통해 관계 맺기 시작한 사람들이다. 아주 가깝거나 사적인 생활을 많이 공유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서로에게 좋은 회사 밖 동료가 되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이. 조금 멀리서 서로의 성장과 성취와 좌절과 지침 같은 것들을 봐주고 응원해 주고 기다려주는 사이.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이 중 누군가는 아주 오래오래 내 인생에 친구로 남을지도 모른다. 혹시 그렇지 않다 해도 이 사람들을 알고 만난 모든 시간은 내게 의미 있게 새겨질 것이다. 멀리 내다보면, 나는 지금 커뮤니티에서 어마어마한 것들을 얻고 있다.
인생은 길다. 그 사실이 힘이 된다.